무기는 외부의 현상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작용의 하나로서, 선과 악의 분별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불교에서는 한 개인이 외부 환경의 대상을 인식할 때 그 개인의 내면에서 대상에 대한 선악을 취사선택한다고 여긴다. 선과 악의 구별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렇지 않게 스쳐지나가거나 그 개인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 것에 대해 무기라고 하여 '기록되지 않는다'는 의미의 작용을 둔다. 이러한 인식에 대한 분류는 '아비달마구사론'에서 크게 발달되었고, 그것이 발달하여 미세한 감정과 작용에 대한 관찰에까지 이르게 된다.
불교에서는 한 개인이 외부에 있는 인식대상을 주1인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으로 분류하고, 그것을 인식하는 기관을 오근(五根)인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으로 나타낸다. 그리고 오경과 오근이 접촉하면 거기에 반응을 일으켜 인식이 생긴다고 본다. 이때 인식되는 그 자체를 '심(心)'이라 하고, 그때 인식된 정보에 대해 그 개인의 좋고 나쁨 등의 상태가 반영되는 것을 '심소(心所)'라고 한다.
심・심소에는 '선, 악, 무기'의 3종류의 상태가 있는데, 이중 선, 악의 개념이 세속적 선악과 깨달음을 추구하는 고차원의 선이라는 2중구조로 되어 있다. 그리고 '선으로도 악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무기의 심・심소가 존재한다.
무기는 뉴트럴, 즉 선도 악도 아닌 중성이기에 '특별한 것을 생각지 않고 담담히 보내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어, 지하철을 타며 표를 내거나 교통카드를 찍을 때 등은 선도 악도 아니기에 심・심소가
『아비달마구사론』주2에서는 무기를 다시금 두 개로 나누어 생각한다. '악에 가까운 무기'와 '정진정명(正真正銘)의 무기'이다. 무기라고 하면 중성인데 '악에 가까운 무기'라는 건 다소 이상하다. '악에 가까운'이라면 악은 아닌 것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심・심소 중에는 업을 만들어 윤회를 하게 할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지만, 주3의 선심이 생기는 것을 방해하여 불도 수행을 훼방하는 아주 약한 번뇌라는 것이 존재한다. 전형적인 예가 "나의 아(我)는 실재한다"라는 잘못된 견해이다. 이것을 '유신견(有身見)'이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나라는 존재는 틀림없이 실재한다"라는 유신견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그것은 결코 '나쁜 심・심소'는 아니지만 '무아(無我)'를 설하는 불교의 가르침에 역행하는 잘못된 생각이다. 이 견해에 사로잡혀 있는 한 '무아'라는 진리는 보이지 않기에, 불도수행의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악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불도수행에 있어 반드시 지우지 않으면 안 되는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의 법을 같은 무기에서도 '유부무기(有覆無記)'라고 한다. 이것이 '악에 가까운 무기'이다. '번뇌의 덮개가 씌어진 무기'라는 의미로서, ‘자신에게 고집하여 일을 생각하는’ 상태가 되어 있을 때의 명칭이다. 그리고 유신견 상태에 빠지면 그때의 심・심소는 전체적으로 '유부무기의 심・심소'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에 비해 단지 순수하게 뉴트럴 상태로 지내는 심・심소는 '무부무기(無覆無記)'라고 불린다. 유신견과 같은 잘못된 견해를 지니지 않은 사람이 평범하게 걷거나 이야기하거나 하는 때의 심・심소는 '무부무기'이다.
즉, 유부무기는 '심소 속에 희미한 번뇌가 생겨 다소 악에 가까운 뉴트럴 상태'이고, 무부무기는 '완전한 뉴트럴 상태'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유부무기의 '희미한 번뇌'는 결코 '약한 번뇌'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반대로 희미한 번뇌인 만큼 불도수행에 있어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누가 보아도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의 나쁜 번뇌라면 힘껏 노력해 제거할 수 있겠으나,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유연한 번뇌여서 파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불도 수행에서는 악한 번뇌보다도 유부무기의 번뇌가 나중에까지 남기 때문에 그것을 지워야 비로소 진정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