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망경·금강반야바라밀경 합본은 1387년, 진원군 유구와 진천군 강인부가 왕비에게 청하여 판각한 불경이다. 정식명칭은 '범망경 및 금강반야바라밀경'으로 후진의 구마라즙이 한역한 두 경전을 한 책으로 묶은 것이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은 경전의 원문에 천로가 지은 게송이 첨부되어 있고, 말미에 기록된 발문에 의거해 1387년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범망경에는 어떠한 간행 기록이나 발문도 없어 상세한 확인이 어렵지만 두 경전이 한 책으로 묶여있고, 같은 닥종이의 질감을 지니고 있어 같은 시대에 인경한 것으로 보인다.
범망경 · 금강반야바라밀경 합본은 1987년 7월 16일에 보물 제919호로 지정된 1책의 경전이다. 정식 명칭은 ' 범망경 및 금강반야바라밀경'이며, 고려시대의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사찰본으로 분류되어, 현재 재단법인 현담문고가 소유와 관리를 하고 있다.
두 경전이 어떠한 이유에서 한 권의 책으로 함께 묶이게 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두 경전의 저자가 후진의 구마라즙이라는 공통점, 합본된 두 경전이 동아시아 대승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금강반야바라밀경[이하 금강경]과 더불어 대승보살의 보살계를 설한 범망경이기에, 대승불교 가르침의 정수를 한 권에 담기 위해 합본으로 제작한 것인 듯하다.
본 합본은 가로 15.2㎝, 세로 24.5㎝의 목판에 새겨 닥종이에 인경한 책이다. 금강경은 원문의 앞부분에 천로(川老)가 지은 게송이 첨부되어 있으며, 경문의 말미에 주1이 기록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금강경은 1387년(고려 우왕 13) 진원군 유구와 진천군 강인부가 왕비에게 청하여 판각한 것으로, 지담(志淡)이 판을 새기고, 발문은 이색(李穡)이, 글씨는 각지(角之)가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범망경에는 간행기록이나 발문이 남겨져 있지 않아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지만, 두 경전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있고, 인경된 종이의 질이 같은 것으로 보아 국가유산청에서도 같은 시대에 찍어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범망경은 화엄경의 결경으로도 불리며, 대승불교가 추구하는 보살의 모습과 마땅히 지켜야 할 보살계의 내용을 담고 있다. 10중 48경계라는 총 58개의 계목[보살계의 항목]을 통해 보살이 자신의 계행과 더불어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보살행을 지키며, 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실천하도록 설한다. 이는 신심만으로 대승의 수행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2와 주3을 통해 대승불교인으로서의 자격을 갖게 하는 중요한 덕목이다. 또한 범망경은 출가자만의 주4과는 다르게, 보살이라는 인물상을 통해 출가자와 재가자가 함께 수계하고 지키는 보살계이기도 하다.
이러한 대승 수행자로서의 자격과 더불어 금강경은 그 수행자가 마땅히 닦아야 하고 추구해야 하는 가르침을 설한다. 대승불교의 대표 경전이며, 현재 대한불교조계종의 소의경전이기도 한 금강경은 대승불교의 정수인 공(空)의 가르침을 통해 중생이 개념과 관념을 떠나 현상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보도록 가르친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발달한 선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의 가르침을 통해 마음이라는 것에도 다시 집착하지 않는 올바른 수행을 설하고 있다.
이러한 범망경과 금강경은 현재까지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불교권에서 주요한 경전으로,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가르침과 보살계로 여겨진다. 그렇기에 이 두 경전이 한 권의 책 속에 담겨있는 것을 통해 고려 당시에도 대승불교가 주를 이루었고, 그 중심에 범망경 및 금강경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범망경이 금강경과 합본으로 있다는 것은 당시의 불교가 출가자 중심만이 아니라 출가와 재가가 더불어 불교를 신봉하고 수행하였다는 것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