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반야바라밀경 ()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바라밀경
불교
문헌
국가유산
송나라 승려 천로가 『금강경』을 주해한 판본을 저본으로 1387년에 간행한 주석서. 불교서.
이칭
이칭
금강경천노해(金剛經川老解)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금강반야바라밀경(1988)(金剛般若波羅蜜經(1988))
분류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사찰본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88년 12월 28일 지정)
소재지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55, 서울역사박물관 (신문로2가,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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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송나라 승려 천로가 『금강경』을 주해한 판본을 저본으로 1387년에 간행한 주석서. 불교서.
개설

송나라의 천로(川老)가 금강경에 주해한 판본을 저본으로 1387년(우왕 13)에 유구와 강인부 등이 발원하여 간행한 금강경 주해본의 일종이다. 금강경은 2세기 무렵에 인도에서 결집된 이후 동아시아에 널리 유포되어 대승사상을 크게 현양한 경전이다. 결집 당시에 인도에서는 반야운동이 점차 확산되어 지혜의 사상을 결집한 금강경이 성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불자 사이에는 금강경을 매일 수지독송(受持讀誦)하게 되면, 누구나 동일한 공덕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이 충만해 있었다. 그리하여 이 경전을 항상 수지하여 독송하고자 하는 수행의식이 강조되어 대중들에 의해 널리 독송되었다. 금강경의 범어는 바즈라체디카 프라즈냐파라미타 수트라(Vajracchedika-parajnaparamita-sutra)이다. 인도에서 성립된 금강경은 그 후 중국에 전래되어, 402년에 구마라집(鳩摩羅什)의 한역(漢譯)으로부터 시작하여 703년에 의정(義淨)의 역출(譯出)에 이르기까지 300년 사이에 이른바 6종의 번역본이 완성되었다.

현재 금강경의 6역본 중에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유통되고 있는 번역본은 바로 구마라집에 의해 처음으로 한역된 것이다. 중국에서 한역 금강경이 유포된 이후 육조 혜능의 해의(解義)를 비롯하여 수많은 주해본이 찬술되었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은 송나라 천노(川老) 스님이 금강경에 대해 주해하고 송(頌)을 붙인 것이다. 권말의 이색(李穡)이 쓴 발문에 의하면 고려시대 진원군 유구(柳玽)와 진천군 강인부(姜仁富)가 우왕(禑王)의 왕비에게 청하여 1387년(우왕 13)에 간행한 것이다. 송본을 저본으로 복각한 것인데 화주로는 지성(志成)과 각호(覺豪)가 참여하고 각지(角之)가 판각본을 필사하여 지담(志淡)이 중간하였다.

서지적 사항

목판본 1책. 판식(板式)의 형태적 특징을 살펴보면, 변란은 좌우쌍변(左右單邊)이고 반엽은 10행으로 한 행은 21자씩 배자되어 있다. 판면에 계선은 없고, 반곽의 크기는 19㎝×12.5㎝이다. 중앙에는 판심이 있으며, 어미는 마치 초승달처럼 가늘게 보이며, 그 아래로 ‘川老’라는 판심제가 보인다. 지질(紙質)은 가느다란 발문이 보이는 매우 얇게 뜬 저지로 보아 고려 후기로부터 조선 초기 불교 전적에서 많이 사용한 종이다.

그런데 이 책과 같은 해에 간행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엄경행원품별행소』(보물, 1992년 지정)의 간행 사실에 의하면, 동일한 공덕의 목적으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말미의 ‘판유경도금사사(板留京都金沙寺)’란 기록으로 보아 경판은 개성의 금사사에서 판각, 보관했던 사실이 확인된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이 책 또한 금사사에서 함께 개판되었을 것이다.

내용

이 책은 우리나라에 가장 널리 유통되고 있는 구마라집(鳩摩羅什) 번역본을 바탕으로 송나라 천로가 협주한 송본을 저본으로 1387년에 고려에서 복각, 간행한 것이다. 표지는 감지로 장책하고 표제는 ‘금강경천노해(金剛經川老解)’를 금니로 쓰여 있다.

권수에는 순희(淳熙) 기해(己亥)(1179)에 송나라 혜장 무진(慧藏 無盡)이 쓴 서문이 실려 있고, 서문이 끝나는 다음 행으로부터 개경게(開經偈)가 시작된다. 게송이 끝나고 이어서 다음 행에 비로소 서명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서명 아래로 ‘○’이 표시되어 있을 뿐 역자나 주해자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나타나 있지 않다. 다음 행에 서명에 보이는 ‘금강(金剛)’에 대한 협주로부터 천로의 주해가 나타나고 있으며, 이어 본문의 ‘여시(如是)’에 대한 주해가 시작되어 ‘신수봉행(信受奉行)’에까지 이르고 있다.

본문의 주해가 끝난 다음 장에는 1161년(紹興 辛巳)에 태주 숭도관(崇道觀) 정진(鄭震)이 쓴 후기가 수록되어 있고, 이어 선월암(禪月庵) 산인 천연(天演)이 쓴 발문이 보이고 있다. 발문의 다음 행 아래로 ‘동량도인 유천지(棟梁道人 惟遷誌)’와 ‘도인 정안각(道人正安刻)’라는 기록이 새겨져 있다.

이 책의 저본이 된 송판은 1161년에 천로의 주해본이 완성되자 1179년에 혜장 무진의 서문을 수록하여 유천의 주관으로 정안이 판각하여 송나라에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송나라 원간본의 간행 사실에 이어 고려에서 복각, 간행된 사실을 담고 있는 이색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이 책은 남송 때 간행된 판본을 지담이 그대로 복각하였는데, 다만 복각본인 까닭에 ‘발문만은 각지가 쓴(書跋)’ 것을 한 판에 새겨서 맨 뒤에 끼워 넣었던 것이다. 따라서 본문과 발문의 자체는 서로 확연히 다르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송나라 천로가 금강경에 대해 주해하고 송(頌)을 부친 송판을 저본으로 고려의 유구와 강인부가 우왕 비(妃)에게 계청하여 1387년에 왕실에서 간행한 주해본이다. 이와 동일한 판본이 이미 보물로 지정되어 있어 불교학 및 서지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송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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