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존도(李存道, 1659~1745)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이고 자는 문백(文伯) 호는 망와(忘窩)이며, 오리 이원익(李元翼)의 4대손이다. 그는 선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풍을 후손에게 남겨 주기 위해 그가 75세이던 1734년(영조 10)에 종손 이언수(李彦秀)에게 유훈을 글로 작성하여 남긴 이후 3년에 걸쳐 추가 보완하여 유서(遺書)를 완성하였다. 2010년 3월 23일에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경기도 광명시 소재 충현박물관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이원익이 작성한 유서 1점도 함께 보관되어 있어 집안의 유훈 내용을 살필 수 있다.
이존도는 고조 이원익 이후 여러 대에 걸쳐 관록이 있어 크게 곤궁하지는 않았으나 자기 대에 이르러 집안이 갑자기 궁핍하게 되자 제사마저 제대로 드리지 못할 형편이었다. 그리하여 1730년(영조 6) 겨울에 그는 가례에 관한 문헌을 참작하여 제사 비용을 절감하는 내용을 적은 유서 2점을 작성하고, 제사를 마련하는 집안의 부녀자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언문(諺文)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이후 유서가 모두 망실되자, 그는 1734년(영조 10)에 다시 작성하여 1737년(영조 13)에 완성하였다.
작성 당시에 유서는 추기한 내용을 포함하여 모두 5점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망실하지 않도록 모두 한 축으로 장황(裝潢)하여 보존하였다. 이 유서의 크기는 53×166㎝이다.
유서는 1734년(영조 10) 2월 6일과 12일에 종손 이언수에게 써 준 2점과 이듬해 1735년(영조 11) 4월에 보완하여 작성한 1점, 그리고 1736년(영조 12)과 1737년(영조 13)에 앞서 작성한 유서에 추기한 2점 등 모두 5점이다. 이존도가 작성한 유서 5점의 간략한 내용과 작성 사실은 다음과 같다.
① 1734년(영조 10) 작성 유서
이 유서는 “주상 10년 갑인(영조 10, 1734) 2월 초6일 종손 이언수에게 글을 써서 준다”는 머리글로 시작하여 집안이 갑자기 곤궁해져 예전처럼 제사 지낼 형편이 되지 못하므로 절약하여 간소하게 차리라는 내용이다. 유서 중에는 자신이 평소에 싫어했던 약반과 밤 등은 제수로 쓰지 말라는 재미난 내용도 보인다. 유서는 주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7품에서 9품까지 「시향찬품도(時享饌品圖)」과 『가례(家禮)』의 「시제설찬도(家禮時祭設饌圖)」등을 참작하고 집안 선대로부터 전해오는 가례를 반영하여 작성하였다.
② 1735년(영조 11) 보완 작성
1734년(영조 10)에 작성한 유서에 『오례의』 「대부사서인시향(五禮儀大夫士庶人時享)」에 따라 기일에 소찬(素饌)을 쓰고, 속절 · 정조 · 단오 · 추석에 제 철의 찬으로 적절하게 마련할 것을 당부한 내용이다. 말미에 1735년(영조 11) 4월 기유일(己酉日)에 보완한 사실을 밝혔다.
③ 1734년(영조 11) 추가 작성 유서
이 유서는 “주상 10년(1734) 갑인 2월 12일 종손 이언수에게 글을 써서 준다”는 머리글로 시작하여 집안의 형편 때문에 여러 선위(先位)를 이어서 윤행(輪行)하지 못하고 묘사(墓祀)는 전에 따라 윤행하였다는 내용이다. 이에 지금은 예의 합설을 따르고 국제(國制)의 간략함을 따르면, 군색하고 행하기 어려운 폐단이 없을 것이니 이를 유념하고 준행하여 쇠하지 말 것을 자자손손에게 당부하였다.
④ 1736년(영조 12) 추기
앞의 두 유서에서 대략적으로 대의를 거론하고 다시 이를 참작하여 절목(節目)을 정하였으니, 이를 따라 준행하는 것이 마땅할 것을 7월에 추가한 내용이다.
⑤ 1737년(영조 13) 추기
1737년(영조 13) 5월에 자신이 죽은 후 후손들이 사묘(祠廟)를 보전하지 못하고 동서남북으로 떠돌아 안착할 곳이 없을 것을 근심하면서 자신으로 말미암아 가문이 망하지 않기 위해 사향(祀享)에 대해 절약해야 하는 이유를 밝혔다.
유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① 조상에 대한 기제와 천신(薦新)과 시향(時享)의 제수와 진설에 관한 당부, ② 제사때 진설할 제수의 진설 방식과 시향에 대한 당부, ③ 묘사와 기제의 윤행에 관한 당부, ④ 수대에 걸쳐 검소한 생활을 미덕으로 지켜온 집안임을 강조하고 자신이 죽더라도 제사를 간소하게 지내라고 당부한 것이다.
이 유서는 오리 이원익의 현손인 이존도가 1734년(영조 10)∼1737년(영조 13)에 이르는 4년에 걸쳐 집안의 가례와 국가의 『오례의』를 참작하여 종손인 이언수에게 작성해 준 글로, 조선시대 중부지역 사대부 집안의 가풍으로 전해오는 가례 전통의 일면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