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고려 권신인 이인임(李仁任)의 아들이라는 잘못된 종계 정보가 명나라 『태조실록(太祖實錄)』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수록되었다. 조선에서는 초기부터 이러한 오류를 수정하려는 노력을 시도하였는데, 이를 ‘종계변무(宗系辨誣)’라고 한다.
종계변무는 조선 전기 대명 외교의 핵심 과제였다. 이에 조선은 명나라에 종계의 수정을 지속적으로 요청함에 따라 1588년(선조 21)에 『대명회전』의 관련 기록이 정정 간행되어 그 이듬해 만력 기축년[1589년]에 수정본이 국내에 전달되었다. 이해에 조정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증광시(增廣試)를 시행하였는데, 이를 ‘만력 기축년 개종계 증광시(萬曆己丑年改宗系增廣試)’라 한다. 그리고 과거시험에 입격한 합격자 명부를 재주 갑인자(再鑄甲寅字)로 인쇄하여 반포하였다. 당시 반사한 갑인자본은 유일본으로, 성균관대학교 존경각에 보관되어 있다. 이 방목은 당시 간행된 활자본을 망실하여 후대에 박동량(朴東亮, 1569~1635)의 후손 박태만(朴泰萬, 1642∼1689)이 다시 필사한 전사본(轉寫本)이다. 전사한 시기는 박동량의 「호성공신교서」를 1680년(숙종 6)에 재발급 받은 사실로 보아, 이때 같이 재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방목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박동량에게 반사한 원본이 망실되어 후대에 다시 정서(淨書)하여 만든 전사본 1책이다. 표지의 왼편에는 대자로 ‘만력기축 사마방목(萬曆己丑司馬榜目)’이란 제목이 묵서되었고. 오른쪽 위쪽에는 소자 2행으로 ‘개(改)/종계 증광(宗系增廣)’이 묵서되었으며, 장황은 백사(白絲)로 5침으로 편철한 선장본이다. 합격자 명부는 반엽에 9행 16자로 구성하고 1인에 3행씩 할당하여 반쪽 면에 3인을 수록하였다.
이 방목은 비록 원본을 다시 정서한 전사본이지만, 조선 중기의 과거 합격자 1백여 명에 대한 전기 자료를 수록하고 있어서 그 당시 인물들의 가계를 살피는데 참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