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금강반야바라밀경은 덕운사에서 『금강경』을 주해한 원판본을 저본으로 1357년에 간행한 주석서이다. 금강경은 2세기 무렵 인도에서 결집된 이후 동아시아에 널리 유포되어 대승사상을 크게 현양한 경전이다. 1357년(공민왕 6)에 육조 혜능의 주해본 중 원나라 판본을 저본으로 전라도 전주의 덕운사에서 지선(志禪)이 복각 간행한 금강경 주해본이다. 목판본 1권으로 현재 삼성출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198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경문의 본문과 육조의 주해문, 주요 용어에 대한 해설을 첨가한 형식으로 독송하는 사람이 경문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정의
덕운사에서 『금강경』을 주해한 원판본을 저본으로 1357년에 간행한 주석서. 불교서.
개설
금강경은 2세기 무렵에 인도에서 결집된 이후 동아시아에 널리 유포되어 대승사상을 크게 현양한 경전이다. 결집 당시에 인도에서는 반야운동이 점차 확산되어 지혜의 사상을 결집한 금강경이 성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불자 사이에는 금강경을 매일 수지독송(受持讀誦)하게 되면, 누구나 동일한 공덕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이 충만해 있었다. 그리하여 이 경전을 항상 수지하여 독송하고자 하는 수행의식이 강조되어 대중들에 의해 널리 독송되었다. 금강경의 범어는 바즈라체디카 프라즈냐파라미타 수트라(Vajracchedika-parajnaparamita-sutra)이다. 인도에서 성립된 금강경은 그 후 중국에 전래되어, 402년에 구마라집(鳩摩羅什)의 한역(漢譯)으로부터 시작하여 703년에 의정(義淨)의 역출(譯出)에 이르기까지 300년 사이에 이른바 6종의 번역본이 완성되었다.
현재 금강경의 6역본 중에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유통되고 있는 번역본은 바로 구마라집에 의해 처음으로 한역된 것이다. 중국에서 한역 금강경이 유포된 이후 양나라 소명태자가 32과분으로 분장(分章)하였고, 당나라 육조 혜능(慧能) 등에 의해 주해가 끊이지 않고 찬술되었다.
편찬/발간 경위
서지적 사항
내용
먼저 석가가 말씀한 사실과 이를 후에 아난의 결집, 후진 구마라집의 한역(漢譯), 양나라 소명태자의 분장(分章), 육조 혜능의 해의(解義), 그리고 택천(澤泉)거사의 편집 등의 일련의 과정이 기재되어 있다.
저자사항에 이어 <법회인유(法會因由)> 제1분으로부터 <응화비진(應化非眞)> 제32분까지 모두 32분으로 구분하여 경문의 본문과 육조의 주해문, 그리고 주요 불교용어에 대한 한문식 해설을 첨가한 형식으로 편집되어 있다.
이러한 편찬 방식은 권말의 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독송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문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성 방식이다.
권말에는 진언과 게송 등을 비롯하여 불교의식과 관련 내용이 차례로 수록되어 있으며, 맨 끝에 발문과 간기가 보이고 있다. 간기는 막연히 ‘전주개판(全州開板)’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발문의 내용으로 보아 전주의 덕운사(德雲寺)에서 간행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본래 권자본(卷子本) 형식으로 간행되었던 송원판본을 저본으로 복각(覆刻)하여 선장 형태로 장책(粧冊)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전후의 표지는 원래의 표지로 볼 수 없으며, 근래에 새롭게 비단으로 장정하고 제첨을 부친 것이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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