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선종(禪宗)은 태조의 옹호를 받아 그 세력을 떨쳤으나, 현종 이후에는 화엄종·법상종(法相宗) 등의 교종이 세력을 얻어 선종에 대항하였으며, 서로의 장점을 주장하면서 타종을 배척하기에 이르렀다.
의천은 원효(元曉)의 화쟁사상(和諍思想)과 송나라 고승 정원(淨源)과 징관(澄觀)의 천태지관(天台止觀)에 영향을 받아 학문에 있어서의 편견을 경계하고 종파의 대립을 개탄하였다.
≪법화경≫의 회삼귀일(會三歸一)을 국가의 통화와 민족적 이념에 합치시켰으며, 이론적으로는 화엄종의 일승(一乘)과 천태종의 일승이 우주와 개인, 전체와 개체를 따로 보지 않는 점에서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고 하였다. 그는 여기에 선사상(禪思想)까지를 귀납시켜 종합적인 일승을 제창하고 교관겸수의 사상을 주창하였다.
이때 의천은 천태와 화엄의 양종을 통한 종합적인 불교관을 세워 교와 관을 함께 닦는 것이 불교수행의 바른 길이라고 하였다. 교만 닦고 선을 없애거나 선만 주장하고 교를 버리는 것은 완전한 불교가 못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와 같이 선종과 교종이 자기의 것만을 주장하는 폐단을 타파하고 모든 종파가 대동단결할 수 있는 이론적 체계를 담은 것이 교관겸수사상이다. 그 뒤 교관겸수사상은 고려천태종을 중심으로 실천되었으며, 지눌(知訥)의 정혜쌍수(定慧雙修)와 함께 우리 나라 불교의 뚜렷한 전통이 되어 전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