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는 중생의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는 부처가 될 수 있는 본성을 불성(佛性)이라고 한다. 따라서 마음을 잘 닦아서 미혹(迷惑)에서 깨어나면 곧 부처가 됨을 가르치고 있다.
교종(敎宗)에서는 이 마음 닦는 방법을 계(戒)·정(定)·혜(慧)의 3학(三學), 또는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 등 6바라밀(六波羅蜜)의 교리와 실천행을 제시하였다.
선종에서는 복잡한 교리나 단계를 밟는 수행법보다는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이므로 곧바로 본성을 보아서 부처를 이루는 것[見性成佛]’을 종지로 삼고 있다. 즉, 선법(禪法)으로서 마음을 직관(直觀)하고 정신을 통일하여 마음의 본바탕을 발견하면 부처가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선종에서는 견성을 가장 근본적인 과제로 삼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중국의 남종선(南宗禪)이 전래되어 선문구산(禪門九山)이 형성된 신라 말기부터 견성을 위한 갖가지 수행이 계속되었다. 특히, 이 시기의 수행은 마음을 통일시켜 조용히 자기를 관조하는 방법을 취하거나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상태에 이르러서 본성이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무심선(無心禪)의 방법을 취하였다.
그리고 고려 중기에 지눌(知訥)이 송나라의 고승인 대혜(大慧)의 영향을 받아 간화선법(看話禪法)을 주창하자 그 이후에는 간화선법에 의한 견성이 그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즉, ‘개에게 불성이 없다[狗子無佛性]’,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 등과 같이 상식을 벗어난 화두(話頭)를 깊이 의심하여 그 의심을 타파함과 동시에 견성하게 되는 수행법을 취하였다. 이 전통은 현재까지 그대로 전승되어 오늘날 참선 수행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 방법을 따르고 있다.
또한, 고려 말의 백운화상(白雲和尙) 등은 무심선법에 힘을 기울였고, 무심선에 의한 견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조선 중종 이후 선종과 교종의 종파가 사라지고 휴정(休靜) 등의 고승들에 의해 선(禪)이 우리 나라 불교의 중심을 이루게 됨에 따라서 견성수행법은 교학·염불로써는 도달할 수 없는 성불의 유일한 방편처럼 되었으며, 휴정이 간화선을 강조함에 따라 그 전통을 이은 문도들에 의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수행자들이 참선을 하게 되면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닌’ 경지에 이르렀다가 다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경지에 이르게 되는데, 이를 견성의 경지라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