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성이 곧 깨달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달리 부처를 본다는 견불(見佛), 자기의 본성을 본다는 견자본성(見自本性), 불성을 본다는 견불성(見佛性), 본성을 본다는 견본성(見本性) 등과 상통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따라서 주3의 『혈맥론(血脈論)』에서는 “만약 견성하지 못하면 선지식이라고 말할 수 없다”, “견성하지 못하면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만약 부처를 찾고자 할진대 모름지기 견성해야 하는데, 성(性)이 바로 불(佛)이다. 부처는 곧 자재한 사람이고 번뇌가 없고 번뇌를 짓지 않는 사람이다. 만약 견성하지 못하면 종일토록 밖을 향해 부처를 찾아도 구할 수가 없다.”고 말한 것은 견성이 바로 깨달음과 동일한 의미로 취급되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한편 주4에서 견성은 견본성(見本性) 내지 견자본성(見自本性)의 줄임말로 활용되고 있는데, 이 경우에 견은 주체적인 체험인 정견(正見)이고, 그 수행이 좌선의 행위에 의하여 성취되는 일행삼매(一行三昧)에 해당한다. 따라서 『단경』에서는 견은 곧 성이고, 성은 곧 본래청정심(本來淸淨心)에 통한다. 그래서 주5에게 견성은 견불성이고 견자성이라는 말로 이미 깨달은 자기라는 뜻으로 활용되었다.
견성은 선종의 역사에서 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인 깨달음의 의미로 전개되어 감으로써 송대에는 불립문자(不立文字) 주6 직지인심(直指人心) 주7이라는 구절로서 선의 주8를 표현하는 어구로 활용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