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이다. 칠불선원(七佛禪院) 또는 칠불사라고도 한다. 이 절의 창건에는 몇 가지 설화가 전하고 있다.
연담(蓮潭)의 「칠불암상량문」에 의하면, 신라 신문왕 때 지리산 옥부선인(玉浮仙人)이 부는 옥적(玉笛)의 소리를 들은 일곱 명의 왕자가 입산하여 6년 만에 도를 깨닫고 이 암자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세전(世傳)에는 옥보선사(玉寶禪師)를 따라 출가한 가락국 수로왕의 7왕자가 지리산에 운상원(雲上院)을 짓고 수행하여 6년 만인 103년(파사왕 24) 8월 보름에 성불했기 때문에 칠불암으로 고쳤다고 한다.
또 진응(震應)의 『지리산지』에 의하면 지리산은 칠불조사(七佛祖師)인 문수보살이 머무는 곳이기 때문에 칠불암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중 가락국 7왕자의 성불 및 창건설이 가장 많이 채택되고 있다. 또, 신라의 옥보고(玉寶高)는 이 절의 운상원에서 50년 동안 거문고를 공부하고 30곡을 지어 세상에 전했다고 하는데, 칠불암이 신라 음악의 중요한 요람지였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창건 이후 이 절은 수도승들의 참선도량으로서 그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1568년(선조 1)에는 부휴(浮休)가 중창하였고, 1830년(순조 30)에는 금담(金潭)과 그 제자 대은(大隱)이 각각 중창하였으며, 1907년에는 토비의 난으로 승려들이 흩어졌다가 1910년에 다시 선사(禪社)를 크게 열었는데, 이때 서기룡(徐起龍)은 이 절의 당우를 수리하였다. 그러나 1948년 여순반란사건으로 완전히 소실되었다.
김선신(金善臣)의 『두류전지(頭流全誌)』에 의하면, 당시 비로법전 · 고승당 · 약사석불 · 부휴조사치아탑 · 조능의 부도 등이 있었다고 하며, 11동의 건물이 잇따라 있어서 비를 맞지 않고도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제월당(霽月堂) 통광(通光)이 1978년부터 1995년까지 칠불사 중창불사를 수행하여, 1978년 문수전을 시작으로 대웅전・설선당・요사채를 차례로 복원하고, 1983년 아자방을 복원하였으며, 1989년 운상선원을 복원하였고, 1995년 칠불사 사적비(寺蹟碑)를 건립하여 중창불사 사적을 남겼다. 이후 2009년에 선다원(禪茶院) 건립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문수전・설선당・운상선원・아자방(亞字房)・원음각・보설루・선다원 등이 있다. 이중 아자방은 1976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곳으로서 신라 효공왕 때 구들도사로 불리던 담공화상(曇空和尙)이 아자형으로 축조하여 만든 것으로,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고치지 않았지만 한번 불을 때면 49일 동안 따뜻하였다고 한다.
한번 불을 때면 일곱 짐이나 되는 나무를 세 개의 아궁이에 넣어 한꺼번에 땐다고 하며, 화도(火道)가 막히지 않고, 높고 낮은 곳이 고루 따뜻하였다고 한다. 이중 아자방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이 절 150m 아래에는 영지(影池)가 있는데, 허왕후가 7왕자의 성불한 모습을 보았다는 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