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라는 명칭에 대해 ≪삼국사기≫에는 “그 때에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 이로 인해 그 이름을 현학금이라 하였고, 뒤에 현금이라 하였다”라고 전하나 믿기 어렵다. 국문학자 이탁(李鐸)은 거문고를 고구려의 금, 즉 감고(거뭇고, 가뭇고)의 음변(音變)이라고 논증하고 있다.
또한, 가얏고[伽倻琴]는 뒤에 신라에 전해지기는 하였으나, 처음 가야국(伽倻國)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얏고라 칭한 것이 분명하다. 즉, 고[琴] 앞에 국명을 붙이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거문고의 명칭은 현학래무(玄鶴來舞)에서 온 것이 아니라 ‘감고’ 또는 ‘검고’가 변하여 거문고로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거문고는 5세기 이전에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현악기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처음에 진나라 사람이 칠현금(七絃琴)을 고구려에 보내 왔다. 고구려 사람들이 그 악기의 형태는 알 수 있으나, 그 소리와 연주하는 법을 알지 못하므로, 고구려 사람으로서 능히 그 소리를 알고 아울러 이것을 잘 탈 줄 아는 사람이 있으면 후하게 상을 주기로 하였다. 그 때 제이상(第二相) 왕산악(王山岳)이 그 본모양을 그대로 둔 채 크게 그 제도를 바꾸어 만들고, 겸하여 백여 곡을 작곡하여 이를 연주하였다”라는 기록이 전해 온다.
그런데 고구려의 옛 도읍이 있던 집안현(輯安縣) 퉁구(通溝)의 고분 가운데 무용총(舞踊塚)과, 17호분에 거문고의 원형으로 보이는 4현 17괘의 현악기가 있으며, 1949년에 안악(安岳)에서 발굴된 제3호분(第三號墳) 후실(後室) 동벽(東壁)의 무악도(舞樂圖)에도 거문고의 원형으로 보이는 것을 연주하는 그림이 있는데, 이들이 왼손으로 줄 누르는 법과 오른손으로 술대[匙]잡는 법이 현재의 거문고와 비슷하다.
즉, 고구려 벽화의 악기는 원형의 거문고이고, 현재의 거문고는 중간에 그것이 개작되어 오늘에 이른 것으로 생각된다.
거문고의 전래과정에 대하여 ≪삼국사기≫에는 “신라 사람으로 사찬(沙飡)이라는 벼슬자리에 있던 공영(恭永)의 아들 옥보고(玉寶高)가 지리산 운상원에 들어가서 거문고를 50년 동안 공부하면서 새로 30곡을 작곡하여 속명득(續命得)에게 전수하고, 속명득은 이를 귀금(貴金)에게 전하였다.
그런데 귀금이 또한 지리산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으므로 신라의 임금이 금도(琴道)의 단절을 염려하여 이찬(伊飡) 윤흥(允興)으로 하여금 그 음악을 전수하도록 하기 위해 남원공사를 시켰다. 윤흥이 도임(到任)하여 총명한 소년 안장(安長)과 청장(淸長)을 가려 지리산에 들어가 전수받도록 하여 <표풍 飄風> 등 3곡을 배웠다.
그 뒤 안장은 그의 아들 극상(克相)과 극종(克宗)에게 전했고, 극종이 또 7곡을 작곡했는데, 이로부터 거문고로써 업을 삼는 이가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고구려에서 들어온 거문고가 신라 효소왕 때 월성(月城) 천존고(天尊庫)에 그저 신기(神器)로 보존되어 오다가 경문왕 때 이르러 겨우 일반 신라인에게 알려졌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으로도 능히 짐작이 된다.
그 뒤 고려 인종 때 사신으로 왔던 서긍(徐兢)의 ≪고려도경≫ 악률조(樂律條)에 있는 기록과 ≪동국통감≫에 정서(鄭敍) · 이곤(李混) · 학선(翯仙) 등이 모두 거문고를 잘 연주했다고 기록한 사실 등으로 그 경위를 헤아릴 수 있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많은 문헌에 그 기록이 보이고 있다.
공명통은 아쟁이나 대쟁과 같이 상자식(箱子式)으로 짜서 만든다. 최근에는 작게 만드는 경향이 있으나, 전체 길이가 5척 이상은 되어야 한다. 현은 전부 6줄로, 셋째 줄인 대현이 가장 굵고, 첫째 줄 문현, 여섯째 줄 무현, 넷째 줄 괘상청, 다섯째 줄 괘하청, 둘째 줄 유현의 순으로 가늘어진다. 괘(棵)는 전부 16개로, 첫째 괘에서 16째 괘로 가면서 점차 작고 얇아진다.
대모(玳瑁)는 술대를 사용할 때 나는 잡음을 방지하기 위하여 가죽을 앞면에 댄다. 귀루(鬼淚)는 첫째 괘의 줄 닿는 면에 붙이며, 농현(弄絃)할 때 줄의 흔들림으로 인한 잡음을 방지한다.
학슬(鶴膝)은 현재 6줄에 모두 두나, 예전에는 괘 위에 올려져 있는 유현 · 대현 · 괘상청 세 줄에만 있었다. 운족(雲足)은 공명판이 바닥에 닿지 않게 하기 위해 나무쪽[木片]을 댄다.
앞면은 오동나무를 쓰는데, 특히 돌 사이에서 오랫동안 자란 석상동(石上桐)을 으뜸으로 치며, 같은 석상동이라도 땅에서 7∼8척 높이의 무늬와 옹이가 없는 곧고 높은 가지를 사용한다. 뒷면은 밤나무와 같은 단단한 나무를 사용한다.
장식(粧飾)인 좌단(坐團) · 담괘(擔棵) · 진괘(軫棵) · 안족 · 운족 · 봉미(鳳尾) 등은 화리(華梨) · 철양(鐵楊) · 산유자(山柚子)와 같은 단단한 나무를 사용한다. 괘는 회양목이나 종목(棕木)을 사용한다. 학슬은 청형(靑荊: 속칭 靑멸애)을 쓴다. 염미(染尾)는 각색 진사(眞絲)나 푸른 물을 들인 목면사(木綿絲)를 꼬아서 만든다.
대모는 소가죽을 사용하며, 누런 색이나 흰색의 부드럽고 두꺼운 것을 으뜸으로 친다. 줄은 가는 명주실을 꼬아서 쓰며, 춘잠(春蠶) · 하잠(夏蠶) · 추잠(秋蠶) 중에서 추잠을 제일로 친다. 귀루는 홍록색의 진사를 사용한다. 술대는 단단하고 가는 해죽(海竹)이 좋다. 근래에는 화리나무나 흑단(黑檀)나무도 사용한다.
우리나라 악기 중에서 가장 넓은 음역을 가지고 있어서 정악(正樂)에서나 산조(散調)에서나 다 같이 3옥타브에 이른다. 거문고의 음역에서 실제 사용되는 음과 사용되지 않는 음을 구분하여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거문고의 줄 고르는 법에는 정악과 산조의 두 가지가 있다.
(1) 정악
줄을 고르는 순서는 괘하청 · 괘상청 · 유현 · 대현 · 문현 · 무현의 순으로 하는 것이 정법이다. 먼저 맑고 청아한 괘하청을 임종(林鐘:Bb)으로 맞춘 다음, 괘상청을 괘하청과 같은 음으로 맞춘다. 거문고에서 이 두 줄을 가리켜 청현이라 하며, 줄 고를 때 기본으로 삼는 줄이다.
유현은 둘째 괘를 장지(長指)로 가볍게 누른 다음, 오른손으로는 유현의 진괘를 조절하여 괘상청과 같은 음이 되게 맞춘다. 대현은 제6괘를 장지로 누르고 식지(食指)로 괘상청, 무지(拇指:엄지손가락)로 대현을 동시에 퉁기면서 오른손으로는 대현의 진괘를 조절하여 괘상청과 같은 음으로 맞춘다.
문현은 대현의 제2괘의 음[黃鐘:Eb]에 맞춘다. 즉, 대현 제2괘를 장지로 누른 다음 소지(小指)로 문현을 퉁기고 무지로는 대현을 퉁기며 같은 음으로 맞춘다. 무현은 괘하청보다 8도(度) 아래 음으로 맞춘다.
(2) 산조
줄을 고르는 법은 청현 음고(音高)를 정악[林鐘:Bb]보다 장2도 높인 남려[南呂:C] 정도로 고정시킬 뿐, 정악의 줄 고르는 법과 동일하다. 다만 산조에서는 문현을 대현 셋째 괘[姑洗:G]에 맞추는 점이 정악과 다를 뿐이다.
연주법을 ‘탄법(彈法)’이라고도 한다.
(1) 연주자세
오른발이 왼쪽 다리 밑으로 들어가게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다. 그리고 대모 끝의 둥글게 팬 부분을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려 놓고 왼쪽 무릎으로 거문고의 뒷면[腹板]을 받쳐 비스듬히 세운다. 허리를 곧게 펴고 시선은 왼손을 응시하는 것이 일반적인 연주자세이다.
(2) 술대법[匙法]
술대 잡는 법[右手執匙法]은 두 가지이다.
한 가지는 ≪악학궤범≫과 ≪삼죽금보 三竹琴譜≫의 방법으로, 술대를 오른손 식지와 장지 사이에 끼우고, 식지를 구부려 술대를 휘어잡는 동시에 무지로 힘껏 버티며 나머지 세 손가락(長指 · 無名指 · 小指)의 끝에서 둘째 마디를 약간 구부려 손모양을 ‘自’자 모양으로 잡는 방법이고, 또 다른 방법은 ≪양금신보 梁琴新譜≫와 ≪학보금보 學圃琴譜≫의 방법으로 앞의 방법과 유사하나, 장지 · 무명지 · 소지를 완전히 구부려 주먹을 쥐는 방법이다.
이 두 가지 방법 중, 현재 즐겨 쓰이는 방법은 ≪악학궤범≫의 방법이다. 술대 쓰는 법[運匙法]은 팔 전체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이 정법이다. 거문고 음악에서 다양한 강약과 특이한 음색은 이 술대의 쓰임에 있다.
술대로 줄을 튕길 때는 담괘(擔棵:줄을 거는 턱)로부터 대모의 중심을 향해 5㎝ 정도가 맑고 좋은 소리를 구할 수 있는 위치이다.
술대의 쓰임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먼저, 순획(順劃)은 술대로 줄을 앞으로 내어 튕기는 기법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대점(大點) · 중점(中點) · 소점(小點) 등의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역획(逆劃)은 순획의 반대 기법인데, 술대로 줄을 안으로 뜯는 것으로 이 술대법을 가리켜 ‘뜰법’이라고 한다.
(3) 왼손 짚는 법[左手按絃法]
손모양[手勢]은 무명지와 장지, 그리고 소지를 곧게 편 다음 이 세 손가락을 나란하게 한데 붙인다. 이렇게 붙인 세 손가락을 눌러야 할 줄과 병행이 되게 가져다 놓고, 무명지는 유현, 장지는 대현을 밀어 누르면서 손 전체를 45°각도로 세운다.
이 때, 세 손가락의 끝은 무현 쪽으로, 손목은 문현 쪽으로 향하게 되는데, 한번 이와 같이 눌렀을 때 손 전체의 모양은 줄을 누르고 있는 손가락과 손등과의 중간에 위치하는 관절을 약간 구부려야 하고, 손목은 내려야 하는 것이 정법이다.
팔꿈치는 낮은 괘, 즉 2괘 이상 7괘 이하를 누를 때는 약간 구부린 상태에서 왼쪽 옆구리에 가까운 거리에 두며, 높은 괘, 즉 8괘 이상의 괘를 누를 때는 구부린 상태로 왼쪽 옆구리에 가볍게 붙이는 것이 좋다.
소지는 줄을 누르지 않으며, 다만 다섯 손가락 중에서 힘이 약한 무명지를 받쳐 주어 부족한 힘을 보충시키는 구실을 한다. 식지는 무명지와 장지로 줄을 누를 때 장지와 나란하게 하나, 장지에 붙이지는 않으며, 곧게 펴든 가볍게 구부리든 연주자의 임의대로 한다. 무지는 구부리는 것보다 곧게 펴는 것이 좋다.
다만, 무지가 손바닥 밑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줄 누르는 법은 유현의 경우 무명지로, 대현의 경우는 장지로 한번 눌러 놓은 다음, 식지 · 무지의 순으로 짚어 나가야 한다. 대현을 사용하여 연주할 때 유현은 쉬고 있는데, 이 때에도 유현의 중심 손가락인 무명지는 구부린 상태로 유현에 걸쳐 놓는 것이 좋다.
그러나 대현만을 계속 연타할 때는 유현에서 무명지를 떼어도 무방하다. 이 기법은 곡의 빠르고 느림에도 관계가 있다.
문현은 ‘쌀갱법’과 ‘싸랭법’, 그리고 ‘슬기둥법’에 사용되는데, 이는 문현과 유현 또는 문현과 대현의 현을 각각 연속적으로 튕기는 기법으로, 이 경우에는 항상 문현을 먼저 튕긴 뒤에 유현이나 대현을 튕긴다. 이렇게 튕길 때는 시차가 생기나, 한 번 튕긴 뒤에는 두 줄이 같은 시간에 진동한다.
우리나라 음악이 그렇듯이, 거문고는 가락악기이지 화음악기는 아니므로 두 음이 같이 울리는 것을 일반적으로 금한다. 따라서 ‘쌀갱법’과 ‘싸랭법’, 그리고 ‘슬기둥법’을 연주할 때는 언제나 먼저 울린 문현의 진동을 왼손으로 정지시켜야 한다.
거문고 소리를 입으로 흉내낸 것을 거문고 구음법이라 하며, 구음법은 옛 법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인 것은 변동이 없다. 현행 구음법을 보면 〈표〉와 같다.
현 | 구음 | 연주법 |
---|---|---|
대현 | 덩 | 대현을 장지로 누르고 내는 소리 |
둥 | 대현을 식지로 누르고 내는 소리 | |
등 | 대현을 모지로 누르고 내는 소리 | |
유현 | 당 | 유현을 무명지로 누르고 내는 소리 |
동 | 유현을 식지로 누르고 내는 소리 | |
징 | 유현을 모지로 누르고 내는 소리 | |
문현과 유현을 연타 | 쌀갱 | 문현을 거쳐 유현의 어느 음을 느리게 이어탈 때 나는 소리 |
싸랭 | 문현을 거쳐 유현의 어느 음을 빠르게 이어탈 때 나는 소리 | |
문현과 대현을 연타 | 슬기덩 | 문현을 거쳐 장지로 누른 대현을 이어탈 때 나는 소리 |
슬기둥 | 문현을 거쳐 식지로 누른 대현을 이어탈 때 나는 소리 | |
슬기등 | 문현을 거쳐 모지로 누른 대현을 이어탈 때 나는 소리 | |
모든 줄 | 뜰 | 술대로 역획할 때 나는 소리 |
〈표〉 구음법 |
이 밖에 술대로 튕기지 않고 왼손 식지나 무지로 줄을 뜯거나 쳐서 내는 경우를 자출성(自出聲)이라고 하며, 이 때는 러(덩) · 루(둥) · 르(등) · 라(당) · 로(동) · 리(징)로 구음한다. 이상의 구음법은 괘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
현재 거문고로 연주되고 있는 곡은 <여민락 與民樂> 전 10장 중 1∼7장까지로, <보허사 步虛詞> · <밑도드리 尾還入> · <윗도드리 細還入> · <계면가락도드리 界面加樂還入> · <양청도드리 兩淸還入> · <우조가락도드리 羽調加樂還入> · <영산회상 靈山會相>(거문고회상) · <평조회상 平調會相> · <취타 吹打> · <가곡 歌曲> 등의 정악과 <거문고산조> 등의 민속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