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위는 육자배기토리권 무속음악에서 사용되는 허튼가락의 기악곡이다. 본래 신라 향가, 즉 사뇌가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나, 조선 중기의 심방곡은 초기 가곡을 의미해 오늘날의 무속 시나위와는 성격이 다르다. 조선 후기 무당·광대가 지역 음악을 기반으로 굿의 기악합주 음악을 만들며 시나위가 정착했고, 일제강점기 음반과 무대 공연을 통해 독립 예술로 발전했다. 시나위는 육자배기토리를 바탕으로 즉흥성과 다성성이 특징이다. 지역에 따라 남도·경기·내포제 등 다양한 형태로 전승되고, 편성도 삼현육각 중심에서 다양한 악기로 확장되었다.
시나위는 그 명칭이 신라의 향가(鄕歌), 즉 사뇌가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향가는 신라의 노래라는 뜻이지만 성악과 기악을 포함하는 종합적인 예술 형태로 볼 수 있다. 오늘날 시나위를 심방곡(心方曲)이라고도 부르는데, 심방곡은 무당인 ‘심방’의 곡, 즉 무가(巫歌)라는 뜻이다.
하지만 조선 중기 양덕수(梁德壽)가 편찬한 『양금신보(梁琴新譜)』에 나타난 심방곡은 초기 가곡(歌曲)의 하나로 중대엽(中大葉)이며,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 보이는 심방곡은 만중삭대엽(慢中數大葉), 즉 가곡 자체를 말하는 것이었다. 『양금신보』의 중대엽의 가사가 무속신앙과 연결되기는 하나 시나위의 무속적인 성격과는 음악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다.
이후 조선 후기에 이르면 천인 계급에 속했던 신청(神廳) 출신 무당이나 광대들이 무업(巫業)을 이어나가며 자신들의 기반이 되는 지역의 음악을 바탕으로 무악(巫樂)을 구성했는데, 굿에서 기악 합주로 연주되는 음악을 시나위나 심방곡으로 일컫게 되었다. 반면 함화진(咸和鎭)은 『조선음악통론(朝鮮音樂通論)』에서 심방곡을 변작하여 산조(散調)가 형성되었다고 하였기에 심방곡이라는 명칭은 산조의 토대가 되는 원초산조(原初散調) 형태의 독주곡을 뜻하기도 하였다.
시나위가 본격적으로 기록에 등장하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서이다. 1920년대 중반 나팔통식 녹음으로 음반을 발매하던 제비표 조선레코드나 일축조선소리판과 같은 유성기음반에 가야금 명인 심정순(沈正淳)의 자진 신와위(神臥爲)나 대금, 해금, 피리 합주로 신아위(神我位)가 취입되기도 하였다. 또한 1930년대는 빅타 레코드나 콜럼비아, 리갈 유성기음반에 거문고 백낙준(白樂俊), 가야금 심상건(沈相健), 피리 한성준이 참여하는 합주 심방곡(神方曲)이나 한성준이 참여한 콜럼비아고악단이나 리갈고악단의 신와위, 신아우가 발매되기도 하였다.
시나위는 무속음악으로 계속 연주되고 있으나, ‘ 내포제(內浦制)’ 혹은 ‘충청제’ 시나위는 자취를 감추었다. 일제강점기 근대 무대의 발전과 유성기음반의 등장, 방송의 시작은 무속음악 시나위를 독립적인 예술로 정착시키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독주 및 합주 시나위가 무대에서 연주되었으며, 삼현육각(三絃六角) 편성의 악기뿐만 아니라 다른 악기들의 시나위 또한 본격적으로 연주되었다. 독립 예술로 발전한 시나위는 무대 음악으로서 뿐만 아니라 살풀이춤의 반주 음악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시나위는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고, 예능보유자는 지영희(池瑛熙)였으나, 그가 이민을 가면서 1975년 5월 30일 보유자에서 해제되었다.
오늘날 전승되는 시나위는 경기도 남부, 충청도 서부, 전라도, 경상도 서남부 지역의 무가 반주 음악에서 사용되거나, 무대에서 독주 또는 합주로 연주되곤 한다. 무가 반주 음악으로 사용되는 시나위는 주로 육자배기토리를 사용한다. 무당이 육자배기토리로 된 무가를 부르면 피리, 대금, 해금 연주자는 저마다 대선율(對旋律)에 해당하는 주1을 연주한다.
보편적으로 시나위는 기본적으로 피리2, 대금1, 해금1, 장고1, 북1의 삼현육각 편성으로 연주되었다고 하였는데, 일제강점기 빅타 유성기음반에는 가야금, 거문고가 피리와 함께 합주로 시나위가 녹음된 것을 보면 악기의 구성이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에 무속 현장에서는 아쟁이 많이 연주되곤 한다.
육자배기토리권의 시나위를 지역적으로 다시 살펴보면 전라도 지역의 남도시나위, 한강 이남 경기도 지역의 경기시나위, 충청도 지역의 ‘내포제’ 혹은 ‘충청제’ 시나위를 들 수 있다.
남도시나위는 3소박 4박자의 살풀이 장단이 중심이 되어 중모리 · 중중모리 · 굿거리 등 장단이 사용된다. 이 지역 육자배기토리는 미, (솔), 라, 도, 레 등의 음을 사용하는데, ‘미’음은 떠는 음으로, ‘도’는 꺾는 음으로 ‘시’음으로 꺾어 준다.
경기시나위는 2소박 6박자의 도살풀이 장단을 중심으로 모리 · 발버드레 · 가래조 등의 장단을 사용한다. 이 지역 육자배기토리를 남도시나위 것과 비교하면 ‘미’와 ‘라’ 음 사이의 음정 간격이 조금 넓어진다고 한다.
‘내포제’ 혹은 ‘충청제’ 시나위는 일제강점기 한성준이 남긴 피리 살풀이 또는 신아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성준이 남긴 시나위는 빠른 중모리와 자진모리장단을 쓰는데, 일반적으로 충청권 무악에서는 살풀이, 중모리, 중중모리, 덩덕궁이, 안진반, 시님, 외장구 등의 장단을 쓴다고 한다. 한성준은 경토리와 메나리토리가 섞인 토리나 육자배기와 메나리의 섞인 토리를 많이 사용하였다. 이는 충청도 지역의 위치가 위로 경기도, 아래로 경상도와 접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으로 보인다.
연주 시 시나위는 즉흥성을 특징으로 보여준다. 무가(巫歌)나 무무(巫舞)의 반주에 있어 여러 악기 연주자들끼리 즉흥적으로 화답하여 연주하여, 다성적(多聲的)인 음악적 특징도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여러 선율이 번갈아 나오거나 서로 물리거나 겹치거나 함께 동시에 등장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