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함평 출생. 여류명창 임유앵(林柳鶯)의 남편이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문공부를 하다가 16세 때 김창환(金昌煥) 밑에서 판소리공부를 시작하였다.
재주도 평범하였고 음성도 곱지 못하였으며 성량(聲量)도 부족하였으나, 김창환에게 2년간 배운 뒤 깊은 산의 여러 절을 찾아다니며 5년여의 수련으로 좋은 목청을 얻어 일가를 이루었다. 1930년에 서울에 올라와 당대의 명창 이동백(李東伯)에게 다시 판소리 수업을 시작하였다.
1933년의 명창대회에 참가하여 첫 무대에서 「적벽가(赤壁歌)」중 ‘삼고초려(三顧草廬)’를 불러 이름을 떨쳤다. 그는 판소리의 법통을 고수한 사람이었으나, 창극공연에도 참가하여 전국에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광복 이후에는 판소리에만 전념하였다.
1951년부터 국립국악원 예술사로 임명되어 후계자 전수에 주력하였다. 특히 「흥부가」와 「적벽가」를 잘 불렀고, 「적벽가」중의 ‘삼고초려’는 압권이었다. 김연수(金演洙)·임방울(林芳蔚)과 함께 3명창으로 꼽히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