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남원 태생. 만년에는 부산에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대금 시나위를 잘 불었는데, 여러 창극단에서 대금을 불었다. 대금산조를 먼저 짰다는 박종기(朴鍾基)와 교분이 있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대금산조를 짰다.
그의 산조는 진양 · 중모리 · 중중모리 · 잦은모리장단으로 조성되고, 우조와 계면조로 짜되 계면이 주가 되어 대금 시나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스스로 ‘시나위더늠’이라 부르고 있다.
이것은 박종기 대금산조가 우조 · 설렁제(드렁조)와 같은 판소리조를 구사하고 선율이 판소리형에 가까운 것과 대조적이다.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대금산조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았고, 이수자로 김동표(金東表) · 송부억쇠(宋富憶釗) · 이엽(李葉) 등 세명을 길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