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원당암 ( )

목차
관련 정보
합천 해인사 원당암
합천 해인사 원당암
불교
유적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伽倻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왕실 원찰이었던 암자. 해인사.
이칭
이칭
봉서사(鳳棲寺)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伽倻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왕실 원찰이었던 암자. 해인사.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부속암자이다. 신라 왕실의 원찰(願刹)이었다고 하여 원당암이라 하였다. 802년(애장왕 3) 해인사 창건을 위한 기초 작업장으로 창건하여 봉서사(鳳棲寺)라 하였으며, 애장왕이 이곳에 머물면서 공사와 정사를 함께 돌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조선 세조 때에는 학조(學祖)가 오래 머물렀으며, 1501년(연산군 7)에는 『고봉화상선요(高峰和尙禪要)』를 판각, 간행하였다. 이때까지는 봉서사라고 불렀던 독립된 사찰이었다. 그 뒤 원당암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852년(철종 3)에 우룡(雨龍)이 중수하였고, 1874년(고종 11)에 비구니 성주(性主)가 크게 중수하였으며, 조선시대 말기에 주지 해운(海雲)이 일신 중창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광전(普光殿)과 요사채 3동이 있다. 국가유산으로는 1970년 보물로 지정된 합천 해인사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을 비롯하여, 석등 · 금당(金堂)의 축대석 등이 있다. 이 중 다층석탑은 신라 말기에 조성된 소탑의 하나로 11층의 매우 희귀한 것이다. 이 탑과 높이 1.8m의 석등, 배례석(拜禮石) 등은 모두 9세기 후반 진성여왕대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참고문헌

『해인사사적(海印寺事蹟)』
『한국의 사찰』7 해인사(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5)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