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전기 제7대 왕 세조가 세종의 「월인천강지곡」과 자신이 지은『석보상절』을 합편하여 1459년에 간행한 불교서.
개설
내용
편찬동기는 죽은 부모와 일찍 죽은 아들을 위한다고 되어 있지만,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 죽이고 왕위에 올라 사육신 등 많은 신하를 죽인 끝에 당하는 정신적인 고통, 회한과 무상(無常)의 깊은 수렁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기 위하여 추진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석보상절』로 미루어서 모두 24권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전하고 있는 것은 중간본까지 합쳐도 완질이 되지 못한다. 전하는 간본의 종류와 소장자, 영인사항은 다음과 같다.
(1) 권1· 권2 : 2권1책. 초간본이 서강대학교에 소장되어 있으며, 1972년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서 영인, 간행하였다. 중간본으로는 1568년(선조 1) 희방사(喜方寺 : 경상북도 풍기)의 것이 전하는데, 책판(冊版)이 6·25 이전까지 보존되었다. 이 간본의 권1은 1960년 국어학회(國語學會) 고전총서로 영인되었다.
(2) 권7· 권8 : 2권2책. 초간본(낙장 있음)이 동국대학교에 소장되어 있으며, 1981년 동국대학교출판부에서 영인, 간행하였다. 중간본은 1572년 비로사(毘盧寺 : 경상북도 풍기)의 것이 전하는데, 1957년 청사진본(靑寫眞本)을 연세대학교 동방학연구소(東方學硏究所)에서 축소 영인하였고, 권7을 1978년 동국대학교 동악어문학회(東岳語文學會)에서 영인하였다. 한편, 16세기 중엽의 복각(覆刻)으로 보이는 권8의 중간본이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육당문고(六堂文庫)에 있다.
(3) 권9· 권10 : 2권2책. 초간본(낙장있음)이 양주동가(梁柱東家)의 구장(舊藏)으로 전하는데, 1957년 연세대학교 동방학연구소에서 영인하였다. 서울의 김민영이 소장하고 있다.
(4) 권11· 권12 : 2권2책.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5) 권13· 권14 : 2권2책. 초간본(낙장 있음)이 있으며, 1982년 홍문각(弘文閣)에서 영인하였다. 연세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다.
(6) 권17· 권18 : 2권1책. 초간본(낙장 있음)이 수타사(壽陀寺 : 강원도 홍천)에 소장되어 있는데, 1957년에 연세대학교 동방학연구소에서 간행하였다. 또한, 초간본으로 보림사(寶林寺 : 전라남도 장흥)에 권17만 소장되어 있는데, 수타사본의 낙장부분만 1972년 『한글』 150호에 영인되었다.
(7) 권21 : 1권2책. 중간본만 전하며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542년(중종 37) 광흥사(光興寺 : 경상북도 안동), 1562년(명종 17) 무량굴(無量崛 : 전북특별자치도 순창), 1569년(선조 2) 쌍계사(雙溪寺 : 충청남도 은진)에서 복각하였다. 권21의 광흥사판을 1983년 홍문각에서 영인하였다.
(8) 권22 : 1권1책. 서울의 김종규소장으로 삼성출판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16세기 중엽 한 사찰에서 복각하였다.
(9) 권23 : 1권1책. 서울의 김종규소장으로 삼성출판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 책은 「월인천강지곡」 기(其)497∼524까지 28수가 실려 있고 여기에 해당하는 『석보상절』의 내용을 해설처럼 싣고 있는데 『석보상절』 권23의 내용과는 다르다. 1559년 무량굴에서 복각한 것이다. 1963년 『동방학지(東方學志)』 6집에 영인되었다. <李東林>
(9) 권25 : 1권 1책. 전라남도 장흥 보림사에 소장되어 있다. 『월인석보』의 전체 권수가 몇 권으로 구성된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는데, 보림사 사천왕상 복장에서 새로 제25권이 발견되어 『월인석보』가 전체 25권으로 편찬된 것임이 밝혀졌다. 권 머리 부분에 월인천강지곡을 비롯하여 탈락되어 있다.
이 「월인천강지곡」에 해당되는 『석보상절』은 권24의 내용인데, 이 『석보상절』의 내용을 『석가보』 권5와 『경덕전등록』 등에서 수정 보완하여 싣고 있다. 이어서 나오는 주석 부분에는 사분률(四分律) · 현우경(賢愚經) · 분별공덕론(分別功德論) · 다론(多論) · 계단경(戒壇經) · 대품(大品) · 지론(智論) · 갈마소(鞨磨疏) · 십송률(十誦律) 등에서 인용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실린 「월인천강지곡」은 권 머리 부분과 마지막에 탈락되었기 때문에 몇 수가 실렸었는지 알 수 없으나 현재 기 577부터 583까지 7수가 실려 있다. 이 책의 권말에는 「월인천강지곡」 기 582와 583을 싣고 여기에 대한 주석(註釋)이 한 장 분량만 남아있고 나머지 부분은 탈락되었다.
제일 끝에 실린 「월인천강지곡」 기 583은 내용상 결론 부분이 아닌 것으로 생각되고, 이 부분의 설명이 『석가보』 권5의 내용 가운데 아육왕조팔만사천탑기(阿育王造八萬四千塔記)까지만 실려 있고 석가획팔만사천탑숙연기(釋迦獲八萬四千塔宿緣記) · 석가법멸진연기(釋迦法滅塵緣記) · 석가법멸진상기(釋迦法滅塵相記)의 내용이 빠져 있다.
그러므로 전체 내용 구성상 뒷부분에 월인천강지곡 4∼5곡을 포함하여 상당량의 내용이 탈락된 것(약 30여 장)으로 추정된다. 「朴相國」이 『월인석보』는 한글 창제 직후에 간행된 산문 자료로서 국어국문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특히, 권1 앞에 『훈민정음』 언해본(諺解本)이 실려 있어서 그 가치가 더욱 크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월인석보(月印釋譜) 제이십이(第二十二)에 대하여」(김영배, 『한국문학연구』8, 1985)
- 「월인석보(月印釋譜) 제칠(第七)·팔(八) 해제(解題)」(천혜봉, 『영인 월인석보』제7·8, 동국대학교출판부, 1981)
- 「중세어(中世語)의 한글자료(資料)에 대한 종합적(綜合的) 고찰(考察)」(안병희, 『규장각』3, 서울대학교도서관, 1979)
- 「월인석보목판고」(박상국, 『문화재』11, 1977)
- 「월인석보(月印釋譜) 제일(第一)·이(二) 해제(解題)」(정연찬, 『영인 월인석보』제1·2, 서강대학교인문과학연구소, 1972)
- 「월인석보해제(月印釋譜解題)」(민영규, 『한국의 명저』, 현암사, 1969)
- 「월인석보(月印釋譜)와 관계불경(關係佛經)의 고찰(考察)」(이동림, 『백성욱박사송수기념불교학논문집』,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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