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미인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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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가사 / 사미인곡
송강가사 / 사미인곡
고전시가
작품
1588년(선조 21)정철(鄭澈)이 지은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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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588년(선조 21)정철(鄭澈)이 지은 가사.
내용

1588년(선조 21) 정철(鄭澈)이 지은 가사.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전체 126구이다. 음수율에서는 3·4조가 주조를 이루며, 2·4조, 3·3조, 4·4조, 5·5조, 5·3조 등도 나타난다. ≪송강집 松江集≫·≪송강가사 松江歌辭≫·≪문청공유사 文淸公遺詞≫ 등에 실려 전한다.

작자는 50세되던 1585년 8월에 당파싸움으로 인해, 사헌부와 사간원의 논척을 받고, 고향인 창평(昌平)에 은거한다. 이때 임금을 사모하는 정을 한 여인이 그 남편을 생이별하고 연모하는 마음에 기탁하여, 자신의 충절과 연군의 정을 고백한 작품이 <사미인곡>이다. 고신연주(孤臣戀主)의 지극한 정을 유려한 필치로 묘사하였다.

구성은 서사(緖詞)·춘원(春怨)·하원(夏怨)·추원(秋怨)·동원(冬怨)·결사(結詞) 등의 6단락으로 짜여져 있다. 서사에서는 조정에 있다가 창평으로 퇴거한 자신의 위치를 광한전(廣寒殿)에서 하계(下界)로 내려온 것으로 대우(對偶)하였다.

춘원에서는 봄이 되어 매화가 피자 임금께 보내고 싶으나 임금의 심정 또한 어떤 것인지 의구하는 뜻을 읊었다. 하원에서는 화려한 규방을 표현해 놓고, 이런 것들도 임께서 계시지 않으니 공허함을 노래하였다.

추원에서는 맑고 서늘한 가을철을 묘사하고 그 중에서 청광(淸光)을 임금께 보내어 당쟁의 세상에 골고루 비치게 하고 싶은 마음을 토로하였다. 동원에서는 기나긴 겨울밤에 독수공방하면서 꿈에나 임을 보고자 하여도 잠들 수 없음을 표현하였다.

결사에서는 임을 그리워한 나머지 살아서는 임의 곁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차라리 죽어서 벌이나 나비가 되어 꽃나무에 앉았다가 향기를 묻혀 임께 옮기겠다고 읊었다.

<사미인곡> 작품 전체가 한 여성의 독백으로 되어 있고, 여성적인 행위·정조(情調)·어투·어감 등을 봄·여름·가을·겨울에 맞는 소재를 빌려 작자의 의도를 치밀하게 표현하였다. 사용된 시어나 정경의 묘사 또한 비범한 것으로 높이 칭송되고 있다.

그래서 홍만종(洪萬宗)은 ≪순오지 旬五志≫에서 <사미인곡>을 가리켜 “가히 제갈공명의 출사표에 비길 만하다(可與孔明出師表爲佰仲着也).”라고 하였다. 김만중(金萬重)도 그의 ≪서포만필 西浦漫筆≫에서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사미인곡>의 속편이라고 한 <속미인곡 續美人曲>, <관동별곡 關東別曲>과 함께 “동방의 이소요, 자고로 우리 나라의 참된 문장은 이 3편뿐이다(松江先生 鄭文淸公 關東別曲 前後思美人歌 乃我東之離騷……自古左海眞文章 只此三編).”라고 대단히 칭찬하였다.

≪동국악보 東國樂譜≫에서는 <사미인곡>에 대해 ‘영중의 백설(郢中之白雪)’이라고 하였다. <사미인곡>은 굴원(屈原)의 초사(楚辭) 중 <사미인 思美人>을 모방하여 지었다는 설도 있다.

내용에 있어 유사한 점이 많기는 하나 한 구절의 인용도 없고 오히려 표현기교는 훨씬 뛰어나서 <사미인>을 능가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후대에 이르러 <사미인곡>을 본받아 동일한 주제와 내용을 가진 작품들이 나타나게 된다.

정철의 <속미인곡>을 비롯하여 김춘택(金春澤)의 <별사미인곡 別思美人曲>, 이진유(李眞儒)의 <속사미인곡 續思美人曲>, 양사언(楊士彦)의 <미인별곡 美人別曲> 등이 모두 <사미인곡>의 영향에 의한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은 모두 정철의 전후사미인곡과 같이 충군(忠君)의 지극한 정을 읊은 것으로 정철의 작품을 모방하여 지어진 것이다. 한역시로는 김상숙(金相肅)이 소체(騷體)로 번역한 것이 이병기(李秉岐) 소장의 ≪사미인곡첩≫에 전하고 있고, 성연경재(成硏經齋)의 오언시인 <사미인곡역>이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송강집』
『송강가사』
『송강별집』
『추록유사(追錄遺詞)』
『북헌집(北軒集)』
『정송강연구』(김사엽, 계학사, 1950)
「송강의 전후사미인곡연구」(서수생, 『경북대학교논문집』 6, 1962)
「곡고」(임형택, 『낙산어문』, 서울대학교, 1966)
「사미인곡 가사의 비교연구」(서원섭, 『경북대학교논문집』 11,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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