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 때 권호문(權好文)이 지은 경기체가(景幾體歌). 제목에는 8곡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7곡만이 작자의 문집인 ≪송암별집 松巖別集≫에 수록되어 있다.
현존하는 경기체가 가운데 가장 마지막 작품이어서 주목된다. 1860년(철종 11)에 민규(閔圭)가 지었다는 <충효가 忠孝歌> 1편이 더 알려져 있으나, 이 작품은 경기체가가 이미 소멸된 지 3세기나 지난 뒤에 단지 그 양식을 흉내낸 작품에 불과하므로 문제삼을 것이 없다. 따라서, 이 작품은 쇠퇴기 혹은 소멸기의 형태적 변형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즉, 전통적인 경기체가의 양식은 1연(聯)이 6행(行)으로 되어 있는 연장체(聯章體)로서 각 연의 제4행과 제6행에 “위……景긔엇더ᄒᆞ니잇고”라는 특별한 구조적 기능을 하는 구절이 반드시 놓여진다.
각 행의 음보수에 있어서도 제1∼3행까지는 3음보격으로, 제4∼6행까지는 4음보격으로 되어 있고, 각 연은 전대절(前大節)과 후소절(後小節)로 크게 나누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각 연이 전대절과 후소절로 나뉘어 있지 않을 뿐더러 행수에 있어서도 6∼10행 혹은 그 이상으로 장형화되어 있다. 음보격에 있어서도 4음보격이 압도적으로 중심을 이룬다. 또, 경기체가 특유의 구조적 기능을 하는 “景긔엇더ᄒᆞ니잇고”라는 구절이 각 연의 맨 끝에 1회씩만 실현되어 있다.
이처럼 경기체가 고유의 정통적 양식에서 크게 이탈하여 장형화하고 4음보격이 중심이 된 것은 인접 장르인 가사문학이 전성기에 있었으므로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의 서문에서 작자는 “고인(古人)이 말하기를 노래[歌]라 하는 것은 흔히 시름[憂思]에서 나오는 것이라 하였듯이 이 노래 또한 나의 불평에서 나온 것이니, 한편 주자(朱子)의 말처럼 노래함으로써 뜻을 펴고 성정(性情)을 기르겠다.”라고 제작동기를 피력하였다.
이로 보아 작자는 강호자연의 유연한 정서생활을 노래하면서 그것을 성정을 닦고 기르는 도학의 자세로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 이면에는 외로움과 불평이 서려 있었음이 느껴진다.
실제로 작자는 평생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였으며 산림처사로 자처하면서 산수에서 노닐며 노래로써 시름을 달래었다. 작자의 어머니가 천비(賤婢)이었다는 점에서 벼슬길에 제약이 있었을 것은 확실하다.
그러니 웅대한 학덕을 지니고도 크게 펴보지 못한 데서 오는 소외감과 불평이 응어리져 있었을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의 제5연을 보면 그의 의기(義氣)가 얼마나 드높으며, 그러면서도 불평에 가득찬 사람이 세상을 저 아래로 내려다보는 고고한 태도가 여실히 나타나 있다.
작자는 작품의 전편에 표면적으로는 강호자연 속에 파묻혀 한가로이 지내는 즐거움을 노래하고 태평성대에 한 일민(逸民)으로 자연을 사랑하며 유유히 살아가는 삶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이면적으로는 홀로 즐기는(獨樂) 소외감과 마음껏 의기를 펴보지 못하는 불평이 짙게 깔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