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타사 천왕문(天王門), 일명 봉황문鳳凰門) 내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시대의 사천왕상으로, 1998년 9월 5일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수타사사적기(壽陀寺寺蹟記)」에 따르면, 1674년(현종 15) 승려 법륜(法倫)이 봉황문을 건립하였으며, 2년 뒤인 1676년(숙종 2) 여담(汝湛)이 사천왕상을 조성하였다고 되어 있어 확실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다. 한편, 1957년 사찰측에서 실시한 해체수리 때 복장(腹藏)에서 1459년(세조 5) 간행된 『월인석보』 권17과 권18 목판본 2권 1책(보물, 1983년 지정)이 수습된 바 있다.
문의 오른쪽에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과 남방 증장천왕(增長天王)이, 왼쪽에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과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이 짝을 이루어 마주보고 서 있다. 지물(持物)은 지국천왕은 보검을, 광목천왕은 기다란 당(幢)을, 증장천왕은 용과 여의보주를, 다문천왕은 당비파를 들고 있는데, 조선 후기 사천왕상의 일반적인 배치법과 지물형태와는 다소 차이를 보여준다. 사천왕상의 평균 높이는 3.2m에 이르며, 제작기법상 나무로 심을 만든 다음 새끼줄을 감고, 그 위에 진흙을 발라 빚은 후 채색을 가한 소조상이다.
각 천왕상은 중국식 갑옷을 입은 용맹스런 무장(武將)의 형상에 두 다리를 딱 벌린 채 의자에 걸터앉은 듯한 좌상의 자세를 취했으며, 발아래로는 악귀(惡鬼)들을 밟고 있다. 머리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곤두세운 이마, 부릅뜬 눈, 뭉툭한 주먹코, 악다문 입 등 사천왕 특유의 험상궂고도 위협적인 분노상이 특징적이다. 옷차림은 평상복을 입고 그 위에 다시 갑옷을 이중으로 걸치고 있는데, 팔뚝 소매가 위로 말려 올라가 바람에 휘날리듯 표현되고 있다. 머리 뒤에서 양 발끝까지 천의(天衣) 자락이 둥글게 흘러내리고 있으며, 여기에서 화염 가닥들이 뻗어 나와 일종의 광배(光背) 구실을 하고 있다.
현존하는 조선시대의 사천왕상은 임진왜란 이후 사찰 복구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기에 함께 이루어졌으며, 지역이나 제작연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긴 하지만, 의승군(義僧軍)과 관계가 있는 사찰에서 많이 제작되고 있어 호국호법의 염원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조성연대를 알 수 있는 수타사의 사천왕상은 조선 후기 사천왕상의 형식과 양식 변천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