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 출신. 보성중학교와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을 졸업한 뒤 수원상업회의소에 근무하였다. 미국인 선교사 밀리의 후원을 받아, 수원의 삼일남녀학교(三一男女學校)를 설립하여 후진교육에 전념하였다.
박희도(朴熙道)로부터 독립만세운동에 관한 계획을 듣고 2월 21일 이갑성(李甲成)의 집에서 독립선언의 방법으로 천도교측과 연합하는 문제를 토의하기 위한 기독교 측 대표들의 철야회합에 참가하였다.
이 때 이 문제를 이승훈(李昇薰)과 함태영(咸台永)에게 일임하고 지방의 동지규합을 위하여 2월 22일 서울을 출발하여, 수원·이천지역에서 활동하였다.
2월 24일 서울로 올라와 결과를 보고한 뒤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 동지 규합에 온 힘을 기울였다. 3월 1일 민족대표들이 일본경찰에 붙잡히고, 김세환도 3월 1일 서울로 올라와 만세시위에 참여하고 3월 13일 검거되었다.
여러 차례에 걸친 재판 끝에 다음해 10월 무죄로 석방되었다. 출감한 뒤에도 교육사업을 통하여 재산가인 홍사훈(洪思勳)을 설득, 수원상업학교를 설립하여 2세교육을 통한 계속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