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에스더(Esther Kim Park)는 1877년(고종 14)에 서울 정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본명은 김점동(金點童)이었다. 아버지는 김홍택이고, 어머니는 연안이씨이다.
1891년(고종 28) 1월 25일에 미국 선교사 프랭클린 올링거(Franklin Ohlinger)에게서 세례를 받고 김에스더(愛施德)라 불렸으며, 결혼 후 남편의 성을 따르면서 박에스더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선교사인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의 집에서 아버지가 일하면서 아펜젤러의 소개로 1887년(고종 24)에 한국 근대 최초의 여학교인 이화학당에 입학하였다.
1890년에 졸업한 후, 영어에 능통하여 보구여관(保救女館)에서 통역을 맡게 되었다. 이때 의사이자 이화학당의 교사로 취임한 로제타 셔우드(Rosetta Sherwood)의 통역을 맡게 되면서 그녀의 영향을 받아 의사로서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
1892년에 로제타 셔우드가 캐나다 의료선교사 제임스 홀(Hall, William James, M.D)과 결혼을 하였는데, 박에스더도 홀이 데리고 있던 청년 박유산과 1893년에 결혼을 하였다. 1894년에 홀의 가족과 함께 평양으로 가서 조수로 일하다가 1895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1896년에 볼티모어여자의과대학(Woman's Medical College of Baltimore)에 입학하였다.
1900년에 졸업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 최초의 여의사가 되었다. 당시 그녀를 뒷바라지하던 남편은 박에스더가 의사가 되기 직전에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귀국하여 여성전용 병원 보구여관에서 의사로 재직하였고, 로제타 셔우드 홀이 평양에 건립한 홀기념병원으로 전근하면서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의 의료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서 진료하였다. 건강증진을 위해 위생교육을 실시하고 장애자 교육을 위해 맹아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기도 하였다.
또한 홀과 함께 한국의료 발전과 여성 의료 교육을 위하여 간호학교 설립을 주도하였다. 박에스더는 1910년에 폐결핵으로 생을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