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남북국시대,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에 있었던 통일신라의 사찰.
발굴경위 및 결과
망덕사 가람 구조는 가장 남쪽에 사찰 출입 시설로 추정되는 계단이 있고, 그 북쪽에 중문이 연결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다시 북쪽으로 동서 목탑이 위치하고, 금당과 강당이 남북으로 차례대로 배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역의 동 · 서 · 남편에 회랑이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금당과 동서 회랑을 연결하는 익랑이 확인되었다. 이 덕분에 신라의 쌍탑 가람에서 익랑이 필수적이었음이 알려졌다. 망덕사 금당지 동서남북에 각 1개씩 계단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는 비슷한 시기 조성된 고선사, 감은사 금당과 동일하다. 동 · 서 목탑은 모두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방형 건물로 추정되며 탑지 중심에 8각의 심초석이 있다. 각 기단면의 중앙에 계단 시설이 확인되어 사천왕사 목탑과 유사하나 그 규모가 작다. 또한 사천왕사 목탑, 감은사 금당 등이 이중 기단으로 조성된 것에 비해 망덕사의 목탑과 금당은 모두 단층 기단이다.
건립경위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단행본
- 『문화재대관-사적편-』 (문화재관리국, 1975)
- 『문화유적총람』 (문화재관리국, 1977)
- 『전통사찰총서』 15 (사찰문화연구원, 2000)
- 『경주 망덕사지 발굴조사보고서(69⸱70년 발굴조사)』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15)
- 권상로 편, 『한국사찰전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 한국불교연구원, 『한국의 사찰 3-신라의 폐사Ⅰ-』 (일지사, 1974)
논문
- 장활식, 「통일신라 출범기의 봉성사와 망덕사 창건목적」 (『신라문화』 37,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201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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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국가 또는 공공 단체의 재산을 개인에게 팔아넘기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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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절이 차지하고 있는 구역 안.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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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광상(鑛床)이 캐낼 값어치가 있는지를 알기 위하여 시험적으로 파 보는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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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승려가 살면서 불도를 닦는 곳.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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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정당(正堂)의 좌우에 있는 긴 집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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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대문의 좌우 양편에 이어서 지은 행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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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변의 길이와 내각의 크기가 모두 같은 사각형.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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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건축물의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다음에 터보다 한 층 높게 쌓은 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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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618년에 중국의 이연(李淵)이 수나라 공제(恭帝)의 왕위를 물려받아 세운 통일 왕조. 도읍은 장안(長安)이며,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하고 문화가 크게 융성하였으나, 안사(安史)의 난 이후 쇠퇴하여 907년에 주전충(朱全忠)에게 망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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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중국 당나라 현종 말엽인 755년에 안녹산과 사사명이 일으킨 반란. 현종은 촉나라에 망명하여 퇴위하고 반란군도 내부 분열로 763년에 평정되었으나 당의 중앙 집권제가 흔들리는 전환점이 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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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한 울타리 안에 있는 여러 채의 집과 방.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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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후세에 전하거나 축복을 받기 위하여 경문(經文)을 베끼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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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사람이 죽은 뒤에 간다는 영혼의 세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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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4
: 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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