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명랑법사가 통일신라 문무왕 때 경주 낭산에 세운 사찰.
건립 경위
당나라가 생각보다 빨리 군사를 보내자 채백(彩帛)을 사용해 임시로 절을 지었다. 풀로 5방의 신상을 만들고 유가(瑜伽)의 명승 12명을 모시고 명랑을 우두머리로 하여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을 지었다. 그러자 당나라 군사와 신라 군사가 서로 맞붙기 전에 바람과 물결이 사납게 일어나 당나라 배가 모두 침몰하였다. 그 후에 절을 고쳐 짓고 절 이름을 사천왕사라고 하였다. 사천왕사의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에 위치한 사천왕천의 주인으로 동방의 지국천왕, 남방의 증장천왕, 서방의 광목천왕, 북방의 다문천왕을 말한다. 사천왕은 천신으로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는 역할을 맡는다.
변천
고려 1074년(문종 28) 경주 사천왕사에서 문두루도량을 열기도 했다. 조선 중종 때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사천왕사가 보인다. 이후 언젠가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1922년 일제강점기 때 최초의 발굴 조사가 있었다.
형태와 특징
사천왕사에서 여러 신장상(神將像)이 출토되었는데 사천왕상으로 보기도 하고 팔부중으로 보기도 한다. 사천왕사 터에는 머리가 잘린 귀부 2기와 당간지주 1기가 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
- 『삼국사기』
- 『삼국유사』
- 『신증동국여지승람』
단행본
- 김상현, 『신라의 사상과 문화』 (일지사, 1999)
논문
- 양은경, 「신라 쌍탑 가람의 기원과 출현배경」(『미술사학연구』 308, 2020)
- 조경철, 「백제 익산 미륵사의 3탑 3금당과 쌍탑의 기원」(『백제연구』 62, 2015)
- 한정호, 「신라 쌍탑가람의 출현과 신앙적 배경」(『석당논총』 46, 201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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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주관ㆍ객관의 모든 사물이 서로 응하여 융합하는 일. 경(境)은 심(心)과 서로 응하고, 행(行)은 이(理)와 서로 응하며, 과(果)는 모든 공덕(功德)과 서로 응하는 따위를 이른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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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육욕천의 첫째 하늘. 수미산 중턱에 있는, 사천왕과 그 권속들이 사는 곳으로, 지국천, 증장천, 광목천, 다문천이 있어 위로는 제석천을 섬기고 아래로는 팔부중을 지배하여 불법에 귀의한 중생을 보호한다고 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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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사천왕(四天王)의 하나. 지국천을 다스리며, 동쪽 세계를 지킨다. 붉은 몸에 천의(天衣)로 장식하고, 왼손에는 칼을 들고 오른손에는 대체로 보주(寶珠)를 들고 있다. 절의 입구 사천왕문에 입상이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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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사천왕의 하나. 증장천을 다스리며, 자기와 남의 선근(善根)을 늘어나게 한다. 몸의 색깔은 붉고 왼손은 주먹을 쥐고 허리에 대고 있으며, 오른손으로는 칼 또는 미늘창을 잡고 있다. 절의 사천왕문에 입상(立像)이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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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사천왕(四天王)의 하나. 광목천을 다스리며, 용신(龍神)ㆍ비사사신(毘舍闍神)을 거느리고 서쪽 세계를 지킨다. 입을 벌리고 눈을 부릅떠 위엄으로써 나쁜 것들을 물리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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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사천왕(四天王)의 하나. 다문천을 다스려 북쪽을 수호하며 야차와 나찰을 통솔한다. 분노의 상(相)으로 갑옷을 입고서 왼손에 보탑(寶塔)을 받쳐 들고 오른손에 몽둥이를 들고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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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신라 경덕왕 때의 승려(?~?). 경덕왕 19년(760)에 해가 둘 나타나자 향가 〈도솔가〉를 지어 불러 괴변이 사라지게 했으며, 죽은 누이의 영혼을 달래기 위하여 〈제망매가〉를 지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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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나란히 세운 두 개의 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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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땅속에 묻혀 있는 것을 파내서 그것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조사. 또는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을 찾아 밝혀내기 위해 하는 조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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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신라 제29대 왕 ‘태종 무열왕’의 본명.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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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장(神將). 천(天), 용(龍), 야차(夜叉), 건달바(乾闥婆), 아수라(阿修羅), 가루라(迦樓羅), 긴나라(緊那羅), 마후라가(摩睺羅迦)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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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도리천은 하늘이름이기도 하고 도리천이란 하늘의 천신을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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