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주1이다. 480년(소지왕 2)에 창건되었다는 설과 801년(애장왕 2)에 창건되었다는 설이 있다.
1979년 작성된 『법주사사기』와 절의 내력을 적은 청화산 법주사 유적비에 따르면 493년(소지왕 15)년 은점조사가 창건하였으며, 1158년(의종 12)에 불일보조국사가 주2 한다. 1623년(인조 1)에 화재로 법당이 소실되어 1660년(현종 1)에 다시 지었으며, 1690년(숙종 17) 보광명전(현, 영산전)을 새로 지었다. 1880년(정조 24)에 절을 전체적으로 크게 주3, 1824년(순조 24) 나한전이 붕괴되어 파손된 상을 서쪽 산에 묻고 나머지를 새롭게 봉안하였다고 한다.
절의 규모는 1만여 평이 넘었다고 하는데, 사찰 경내 여러 곳에서 옛 주춧돌이 발견되었다.
현존하는 주4로는 보광명전, 산신각, 주5 등이 있다. 1999년 보광명전을 새로 지으며 본래의 보광명전을 영산전으로 개칭했다. 2001년에는 일영당과 육화당을, 2005년에는 명부전과 산신각을 새로 지었으며, 그 이후 중창이 꾸준히 이어졌다. 2015년에는 일주문, 2016년에는 보광루 등을 신축하였다.
영산전으로 이름을 바꾼 본래의 보광명전은 1690년(숙종 16)에 건립한 것으로, 2008년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현, 대구광역시 문화유산자료)로 등록되었다. 높이 146㎝의 아미타불 좌상과 117㎝의 관세음보살, 120㎝의 대세지보살 등 목조 아미타삼존불을 봉안하고 있었다. 주존불(主尊佛)의 복장(腹藏) 묵기(墨記)를 통하여 1660년(현종 1)에 조성되었음이 확인되었으나, 1993년 12월 4일 도난되었다. 주존 아미타불 좌상은 2016년 환수되어 새로 지은 보광명전의 주존불로 안치되었으나, 대세지보살상과 관세음보살상은 2009년 도난문화재(현, 도난 국가유산)로 등록되었다. 후불탱화(後佛幀畵)와 신중탱화(神衆幀畵)는 강희(康熙, 1662∼1722)와 건륭(乾隆, 1736∼1795) 연간에 조성된 것으로 국가유산의 가치가 크다.
1977년 봄에 비가 새는 것을 고치기 위하여 보광명전의 용마루를 헐었을 때 그곳에서 주6의 필사본 『화엄경』 81책 1질과 『법화경』 영인본 7권 1질, 『묘법연화경』 1권, 1531년(중종 26) 4월에 인출한 국한문 『은중경(恩重經)』 1권, 『전등(傳燈)』 11권 1질, 『염송(拈頌)』 5권, 『대반야경(大般若經)』 11권 등 귀중한 불교 경전이 발견되어 보관 중이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발견된 기록에 의하면 본당 서편에 파불(破佛) 15좌를 매몰하고, 5불상은 대법당 앞에 매몰하여 두었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어떤 재난이 있기 전에는 주7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 밖에도 나한상(羅漢像)으로 보이는 길이 25.5㎝, 너비 17㎝의 주8를 비롯, 보광명전 전면의 오층석탑, 절 입구의 석불 입상 등이 있다. 1985년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현, 대구광역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오층석탑은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숙종 17년(1690)에 보광명전을 손질하여 고칠 때 새긴 글씨가 남아 있다. 높이 163㎝의 석불 입상은 1매의 판석(板石)에 음각으로 조각하였다.
1714년(숙종 40) 수화승 두초를 비롯하여 변철, 치겸, 심안 등 9명의 화승이 참여하여 완성한 괘불도가 201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