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八公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사찰 터.
연원과 변천
부인사는 고려시대에 대장경의 봉안처로 유명하며, 문헌 기록을 통해서 이러한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사』 권21, 세가(世家) 권53, 행지(行志), 『고려사절요』 권14, 권53 외에 「창성사진각국사대각원조탑비명병서(彰聖寺眞覺國師大覺圓照塔碑銘幷序)」와 이규보의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臣祈告文)」 등을 통해서 부인사에 큰 홍수가 있었음과 부인사 승려들이 무신 집권에 항의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사실, 그리고 부인사에 『초조대장경』과 속장경(續藏經)을 봉안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부인사의 대장경은 1232년(고종 19) 몽고의 제2차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그러나 고려 말 진각국사 천희가 머무르며 사세를 크게 떨쳤으며,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임진왜란 당시 다시 불에 탔으나 1617년(광해군 9)에 중창하였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사찰 대부분이 불에 탔고, 1959년 대웅전, 응진전, 칠성각 등을 중창함을 시작으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발굴경위 및 결과
이후 1986년도에 경북대학교 박물관이 종합적인 지표조사를 실시하였고, 1989년, 1991년에는 대구대학교 박물관이 1, 2차 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1992~1993년에는 경북대학교 박물관이 3차 발굴을 수행하였다.
팔공산 부인사지의 표기는 고려시대의 문헌자료를 통해서 부인사(符仁寺)로 기술되었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부인사(夫仁寺) 혹은 부인사(夫人寺)로 쓰여진 것을 알 수 있는데, 2차의 부인사지 발굴 조사를 통해서 후자에 해당하는 명문(銘文) 와편(瓦片)이 수습되었다.
현황
3층석탑의 서탑은 초층, 2층 옥개석(屋蓋石)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전체적으로는 제 위치에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동탑은 기단석(基壇石) 일부만 유존해 있다. 부인사지의 남쪽에는 창건 당시에 축조한 거대한 축대(築臺)가 남아 있는데, 그 길이는 동서로 55m가 되며, 높이는 3∼4m이다.
축대에 사용된 석재는 100㎝×150㎝ 내외의 방형(方形), 장방 석재를 치석(治石)하여 상하층이 엇물리게 한 바른층쌓기 수법으로 축조하였다. 축대의 중앙에는 남쪽향으로 낮은 대지에 연결된 계단이 마련되었고, 남쪽으로 10m 위치에는 중문지가 위치하였는데, 중문지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현재 주초석(柱礎石)이 남아 있다.
중문지에서 정남쪽으로 진입 도로가 개설되어 있는데, 진입 도로의 좌측에 은통당(隱通堂)이란 글자가 음각된 팔각 원당형(八角圓堂形) 부도 1기와 석종형 부도(石鐘形浮屠) 1기가 배치되었고, 남쪽으로 경판고(經板庫)의 터로 추정되는 건물지(建物址)가 유존(遺存)해 있다.
경판고 건물지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형식에 남쪽 1칸은 건물을 받치는 원주(圓柱)만 서 있어서 일종의 회랑(回廊) 구실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곳의 주초석은 장방형 자연석을 다듬어 상면에 돌출된 원주좌(圓柱座)를 각출하여 놓았으며, 기단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면을 맞추어 놓았는데, 북쪽과 동쪽은 심하게 교란되어 있다. 담장석으로 추정되는 석열은 남쪽 축대에 접하여 시작되며, 축대에서 8m 북쪽 지점에 4매의 초석이 남아 있는데, 이곳은 대문지로 추정된다.
부인사의 남쪽 팔공산 순환 도로 옆 포도밭에 당간지주(幢竿支柱)가 유존해 있는데, 현재의 상태는 지주의 하부와 지대석(址臺石)의 부재 일부만 남아 있다. 당간 지주의 중심좌는 방형 기단 석상에 원형 주자를 각출시킨 상태로서 중심부에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원형의 구멍이 뚫려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 『건축유적발굴조사 자료집: 사찰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 『대구 부인사 유적-대구 부인사 정비사업부지 내 유적』 (동국문화재연구원, 2018)
- 『대구 부인사: 추정경판고지』 (불교문화재연구소, 2013)
- 『夫仁寺 三次 發掘調査 報告書』 (경북대학교 박물관, 1993)
- 『夫人寺 地表調査報告書』 (경북대학교 박물관, 1986)
- 『符仁寺址二次發掘調査報告書』 (대구대학교 박물관, 1991)
- 『符仁寺址一次發掘調査報告書』 (대구대학교 박물관, 1991)
논문
- 최태선, 「고고자료로 본 부인사지의 현황과 변화」 (『한국중세사연구』 28, 2010)
주석
-
주1
: 땅속에 묻혀 있는 것을 파내서 그것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조사. 또는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을 찾아 밝혀내기 위해 하는 조사. 우리말샘
-
주2
: 깨어진 기와 조각. 우리말샘
-
주3
: 쇠붙이와 돌, 살림살이에 쓰는 그릇 따위에 새겨 놓은 글. 우리말샘
-
주4
: 석탑이나 석등 따위의 위에 지붕처럼 덮는 돌. 우리말샘
-
주5
: 건축물이나 비석 따위의 기초로 쌓는 돌. 우리말샘
-
주6
: 높이 쌓아 올린 대나 터. 우리말샘
-
주7
: 네모반듯한 모양. 우리말샘
-
주8
: 돌을 다듬다. 우리말샘
-
주9
: 기둥 밑에 기초로 받쳐 놓은 돌. 우리말샘
-
주10
: 기단, 탑신, 옥개석이 팔각형으로 이루어진 모양. 우리말샘
-
주11
: 종 모양으로 만든 부도.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말부터 조선 시대까지 유행하였다. 우리말샘
-
주12
: 둘레를 둥그렇게 깎아 만든 기둥. 우리말샘
-
주13
: 정당(正堂)의 좌우에 있는 긴 집채. 우리말샘
-
주14
: 어떤 건물이 있던 터. 우리말샘
-
주15
: 후세에 남아 보존되다. 또는 후세에 남기어 보존하다. 우리말샘
-
주16
: 건축물을 세우기 위하여 잡은 터에 쌓은 돌. 우리말샘
-
주17
: 대각 국사 의천이 대장경을 결집할 때에 빠진 것을 모아 엮은 불전(佛典). 송나라, 거란, 일본 등에서 각종 장소(章疏) 3천여 권을 모아 ‘신편제종교장총록’이라는 불서 목록을 만들고 그에 따라 인쇄하여 찍어 내었다. 몽골 침입 때에 소실되었고 지금은 그 목록만 남아 있다. 우리말샘
-
주18
: 낡은 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짓다. 우리말샘
-
주19
: 간행하기 위하여 나무나 금속에 불경(佛經)을 새긴 판. 우리말샘
-
주20
: 당간(幢竿)을 받쳐 세우는 기둥.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