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공민왕대, 국사를 지낸 화엄종 승려.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천희는 또한 교학 승려임에도 불구하고 간화선(看話禪)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으며, 다수의 선종 승려들과도 가깝게 교류하였다. 그의 간화선 수용은 당시 유행하는 새로운 불교 사상에 대한 적극적 대응인 동시에 이론 탐구보다 실천 수행을 중시하는 의상계 화엄종의 전통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천희는 1365년에 국사로 책봉된 뒤 당시 왕사(王師)였던 나옹 혜근과 함께 선교(禪敎)의 공부선(功夫選)을 맡았으며 1371년 신돈이 실각할 때까지 불교계를 주도하였다.
신돈이 실각한 후 천희는 국사에서 물러나 화엄종의 종찰인 부석사의 주지를 맡아 사찰을 중창하였다. 이후 금강산 · 오대산 등 여러 사찰을 다니면서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1368년에 수원 광교산의 창성사(彰聖寺)에서 입적하였다.
시호는 진각(眞覺), 탑호(塔號)는 대각원조(大覺圓照)이다.
참고문헌
원전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조선총독부, 1919)
논문
- 조명제, 「고려후기 몽산법어의 수용과 간화선의 전개」 (보조사상연구원, 1999)
- 최연식, 「眞覺國師 千熙의 生涯와 思想」 (한국문화사학회, 201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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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선조가 남긴 뜻.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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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참조하여 연구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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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가사(袈裟)와 바리때를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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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고려ㆍ조선 시대에, 승려에게 법계를 주기 위하여 보이던 과거(科擧). 고려 광종 4년(953)에 교종선(敎宗選)과 선종선(禪宗選)의 두 과를 두어 합격자에게 대선(大選)이라는 초급 법계를 주었는데, 조선 중종 때 없앴다가 명종 초에 다시 두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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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참선하며 진리를 탐구하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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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가사(袈裟)와 바리때를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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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고려 시대의 법계 가운데 하나. 교종과 선종의 구별 없이 국사의 아래이고 교종에서는 승통의 위, 선종에서는 대선사의 위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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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승려의 별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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