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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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단체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순천 송광사(松廣寺)에서 성립된 불교의 한 종파.
단체
설립 시기
1911년 1월 15일
해체 시기
1912년
설립자
박한영(朴漢永)|진진응(陳震應)|김종래(金鍾來)|한용운(韓龍雲)|오성월(吳惺月)
설립지
송광사
소재지
전라남도 순천
내용 요약

임제종은 1911년 순천 송광사에서 설립된 한국 근대 불교의 한 종파이다. 근대 최초의 종단인 원종의 종정 이회광이 일본 불교 조동종과 맹약을 체결하자 이에 반발하여 영남과 호남 지역의 사찰과 승려를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임제종은 식민지기 불교 청년의 주체성 형성과 한국 불교의 전통을 정립하고자 했던 선학원에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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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순천 송광사(松廣寺)에서 성립된 불교의 한 종파.
주요 활동

근대 최초의 불교 종단은 1908년에 설립된 원종(圓宗)이다. 원종은 한국 사찰의 관리 · 보호와 중앙 집권적 교단으로의 통일을 위해 통감부로부터 공식적인 종단 인가를 받고자 했다. 그러나 통감부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 이후 총독부로부터도 인가를 받지 못하자, 종정 이회광(李晦光)은 일본 불교를 이용하여 인가를 받아내고자 하였다.

이에 이회광은 일본으로 가서 조동종과 연합 체맹(聯合締盟) 할 것을 협의하여 체맹 결약문(締盟結約文) 7조를 작성하고 연합 조약을 맺었다. 맹약문에는 조동종이 원종의 설립 인가를 위해 노력한다는 조문이 포함됐지만, 원종이 조동종 승려를 고문으로 부촉하고 조동종의 한국 포교에 편의를 제공한다는 등의 내용도 포함되었다.

이러한 내용은 원종을 일본 조동종의 보호 아래 둔다는 뜻으로 비춰졌고, 그 내용을 알게 된 국내의 승려들은 크게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종정 이회광의 연합 체맹을 개종 역조(改宗易祖)의 매교적 행위라고 규탄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격렬하였던 전라도 승려들을 대표하여 박한영(朴漢永) · 진진응(陳震應) · 김종래(金鍾來) 등이 광주 증심사(證心寺)에서 승려 대회를 열고자 하였으나, 호응하여 모이는 자가 많지 않아 대회를 열지 못하였다. 한용운(韓龍雲) · 오성월(吳惺月) 등과 다시 각지로 다니며 격문을 돌려 운동을 크게 일으켰다.

1911년 1월 15일에 영남과 호남의 승려를 모아 순천 송광사(松廣寺)에서 총회를 열고 이회광 중심의 원종을 부정하는 새로운 종단을 세우기로 결의하였는데, 그것이 곧 임제종이다. 새로운 종단의 주역들은 조선의 선종보우(普愚) 이래로 중국에서 성립된 임제종 계통이 중심을 이루었기 때문에 법맥상으로 우리나라 불교를 임제종이라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였다.

임제종은 임시 종무원을 송광사에 두고, 관장(管長)으로 선암사(仙巖寺)의 김경운(金擎雲)을 선출하였다. 그러나 그가 연로하므로 한용운이 관장 대리가 되어 종무를 맡았다. 임제종은 곧 광주 등지에 포교당을 설치하는 등 서울의 원종과 대치하여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임제종이 원종보다 한국 불교의 정통임을 주장하려 하였다. 1912년 5월 5일에 하동의 쌍계사(雙磎寺)에서 제2회 총회를 열고 임제종지(臨濟宗旨)를 널리 천양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이어 임시 종무원을 동래 범어사(梵魚寺)로 옮겼다. 범어사로 종무원을 옮긴 뒤로부터 동래 · 초량 · 대구 · 서울 등지에 포교당을 세워 종세(宗勢)를 확장시켰다. 조선 불교는 이렇게 원종과 임제종으로 나뉘었고, 이능화(李能和)는 이러한 상황을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에 ‘북당(北黨)과 남당(南黨)의 갈등’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원종과 임제종은 모두 총독부가 시행한 사찰령(寺刹令)에 의해 인정을 받지 못했다. 1912년에 총독부는 두 종단의 간판을 모두 내리게 했고, 다만 ‘ 선교양종(禪敎兩宗)’이라는 종지만 채택하도록 했다. 이로써 임제종은 출범한 지 1년여 만에 해체되었다.

의의 및 평가

임제종 설립은 원종과 조동종의 맹약 체결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조선 불교가 일본 불교의 보호 아래 들어가는 것을 막고자 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임제종 운동’이라 명하고 항일 운동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임제종 설립 당시 승려들이 이회광을 비판한 가장 큰 논거는 조선의 불교가 임제의 계통인데 그 연합 대상이 조동종이었다는 점이었지, 근본적으로 일본 불교와의 연합에 대한 반발은 아니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임제종도 통도사 · 해인사 · 송광사를 3본산으로 하고 범어사에 임시 종무원을 세운 후 사법(寺法)과 승규(僧規)를 제정하여 총독부에 인가를 신청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항일의 관점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제종은 이후 불교 청년과 사찰령 철폐 운동, 선학원의 설립 등 식민지기에 조선 불교의 전통과 주체성을 정립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참고문헌

단행본

이능화,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신문관, 1918)
高橋亨, 『李朝佛敎』(寶文館, 1929)

논문

김성연, 『일제하 불교 종단의 형성과정 연구-중앙기구의 조직구성과 재정운영을 중심으로-』(동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8)
김영태, 「한국불교사 하-근대편-」(『한국문화사대계』 Ⅵ,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70)
김용태, 「조계종 종통의 역사적 이해-근·현대 종명, 종조, 종지 논의를 중심으로」(『선학』 35, 한국선학회, 2013)
김환수, 「불교적 식민지화?-1910년대 한국 원종과 일본 조동종 연합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불교연구』 36, 한국불교연구원, 2012)
하지연, 「한말·일제 조일불교연합 시도와 이회광」(『이화사학연구』 30,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사학연구소, 2003)

기타 자료

'한국불교최근백년사'(삼보학회, 프린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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