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10월 4일, 서울 안국동에서 ‘조선불교 선학원 본부’ 상량식[^1]을 하였다. 당시 설립에는 경성포교당의 포교사인 남천(南泉), 석왕사 경성포교당의 포교사인 도봉(道峰), 그리고 범어사 승려인 석두(石頭) 등 3인을 중심으로 성월(惺月), 만공(滿空), 용성(龍城), 만해(卍海) 등이 참여하였다. 일제강점기의 모든 사암(寺庵)은 사찰령(寺刹令)과 사법(寺法)의 직간접적인 통제를 받아야 했다. 사찰과 암자는 본말사의 주지 취임을 포함하여 법회 개최를 비롯한 동산 · 부동산 변동까지 일제 총독부의 허락을 얻어야 했는데, 조선 불교를 억압하고 수탈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선학원의 설립 승려들은 '사[寺, 절]'나 ‘암[庵, 암자]’ 등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기 위하여 '원(院)'으로 등록하였다. 1934년 12월 5일, 총독부로부터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 설립 허가를 받아 재단법인이 되었다. 1954~1962년, 승려가 아내를 두고 고기를 먹는 대처식육(帶妻食肉)의 왜색불교를 청산하는 불교정화운동이 전개되자, 선학원 소속 승려 대의(大義) · 석주(昔珠) · 정영(瀞影) 등이 불교정화운동 발기와 전국승려대회 등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였다.
또한 불교정화운동의 종료 후 출범한 비구- 대처 통합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의 출범에 있어서도 청담 등 선학원의 주요 인물들이 참여하였다. 하지만 1994년 대한불교조계종이 선학원 법인 정관 변경을 요구하자, 1995년 11월 8일과 9일 양일에 걸쳐 전국 분원장 회의를 개최하여 '조계종과 별도의 독자 노선 채택'을 결의한 후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산하에 한국불교선리연구원과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을 두고 있다.
1931년 창간된 후 1945년 통권 4호로 종간된 불교잡지 『선원(禪苑)』을 1992년에 재창간하여 현재 월간으로 발행하고 있다. 2009년에는 인터넷 신문인 『불교저널』을 발간하였다. 2005년 개원한 한국불교선리연구원은 학술지 『선문화연구』를 간행하면서 '만해학술상'과 '만해학술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2018년 개관한 한국근대불교문화기념관은 선학원의 역사와 자료를 전시하여 홍보하고 있다. 이외 선학원 인근에 시민들이 참선 수행할 수 있는 '시민선방'과 선학원을 방문한 분원장 및 도제들들이 단기간 숙식할 수 있는 '향원당'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