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개항기 양주 천마산에서 『선원소류』, 『설두시집』 등을 저술한 승려.
생애 및 주요활동
처음에는 교학을 배워 조계산 한성 강백(翰醒 講伯)으로부터 『화엄경』을 배웠고, 구족계를 받은 뒤 여러 대덕을 찾아 교학을 문답하고, 뒤에 긍선(亘璇)으로부터 『화엄경』을 배웠으며, 도원(道圓)의 법맥을 이었다. 28세에 긍선의 강석(講席)을 이어받아 화엄강주가 되어 학인을 20여 년 동안 지도하였다.
1870년(고종 7) 각진국사(覺眞國師)의 옛 도량으로서 퇴락하여 빈터로 남아 있던 영광군 모악산 불갑사(佛岬寺)로 옮겨 절을 중창하였고, 1889년 양주 천마산에서 『선문염송(禪門拈頌)』 강회를 베풀고 강독하였으며, 그 때 『선원소류(禪源溯流)』와 『염송회편(拈頌會編)』을 저술하였다.
그 해 가을 구암사로 돌아와 입적하였다. 나이 65세, 법랍 48세였다. 서관(瑞寬) · 태선(太先)과 함께 화엄의 3대 강백으로 일컬어졌다.
법맥은 긍선-인유(仁裕)-국찬(國燦)-쾌일-도원-유형으로 이어지며, 제자는 처명(處明), 호정(鎬政), 만익(萬益) 등이 있다. 저서로는 『선원소류』 1권과 『설두시집』이 있다.
학문 및 저술
참고문헌
원전
- 설두 유형, 『선원소류(禪源遡流)』(조영미 옮김, 동국대학교 출판문화원, 2021)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신문관, 1918)
- 정호경, 『조선선교사(朝鮮禪敎史)』(보련각, 1978, (忽滑谷快天, 『朝鮮禪敎史』))
논문
- 김호귀, 「『선원소류』에 나타난 선리논쟁의 고찰」(『동아시아불교문화』 43, 동아시아불교 문화학회, 202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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