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사변만어』는 조선 후기에 초의 의순(意恂)이 긍선(亘璇)의 『선문수경(禪文手鏡)』에 대해 비판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불교서로, 19세기 선 논쟁을 촉발시킨 저술이다. 근기의 우열에 의해 선을 차등화하고 구분지은 긍선의 주장은 문제가 있으며, 방편상 사람을 기준으로 조사선(祖師禪)과 여래선(如來禪), 법을 기준으로 격외선(格外禪)과 의리선(義理禪)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조사선과 여래선을 격외의 선에 넣고 의리선만 별도로 낮게 보는 것은 잘못이며 조사선=격외선, 여래선=의리선의 구도가 전통적 통설이라는 논지이다.
초의 의순(1786∼1866)은 대둔사(大芚寺)의 13대 종사로서 선과 교에 정통했고 시와 서예, 그림과 다도에도 뛰어났다. 편양파의 법맥을 이었고, 저술로는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 『초의시고(草衣詩稿)』, 『일지암문집(一枝庵文集)』, 『동다송(東茶頌)』 등이 있다. 김정희(金正喜)와 막역한 사이였고 정약용(丁若鏞)의 지도를 받아 『대둔사지(大芚寺志)』 편찬에도 참여했다.
첫머리에 있는 계정이 쓴 서문에 의하면 『선문수경』이 나온 후 의순이 선종의 진의가 잘못 전달되고 부처와 달마의 근본 정신이 어긋났다고 여겨서 조사선과 여래선에 대한 바른 해석을 내놓기 위해 책을 저술했다고 하고 있다.
본론의 내용을 주제별로 대별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긍선이 여래의 삼처전심(三處傳心) 중에서 염화미소(拈花微笑)는 활인검(活人劍)으로 살(殺)과 활(活)이 겸비되어 있다고 보았지만 분반좌(分半座)는 살인도(殺人刀)로 본 것을 지적했다.
② 긍선의 임제삼구(臨濟三句)에 대한 해석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③ 선문의 오종(五宗)을 각각 조사선과 여래선으로 배대하여 우열을 판단한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④ 조사선과 여래선의 유래와 특징에 대해 서술하며 조사선과 여래선의 우열을 논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보았다.
⑤ 격외선과 의리선에 대하여 예로부터 격외와 의리는 있지만 ‘격외선’과 ‘의리선’이라는 용어는 없었으며, 조사선과 여래선을 법의 기준에서 달리 부른 말이라고 설명했다.
⑥ 살인도와 활인검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는 본체와 작용의 관계와 같아서 분리할 수 없는데 이것으로 우열을 가릴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⑦ 진공(眞空)과 묘유(妙有)의 뜻을 밝혔다.
앞서 긍선은 선을 조사선, 여래선, 의리선의 3종으로 나누면서 조사선 중심의 선종 우위론을 내세웠고 선종 오가 중에서 임제종이 가장 뛰어나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조사선, 여래선을 격외선에 함께 배정하고 교학을 포함하는 의리선을 한 차원 낮은 등급의 것으로 판정하여 교에 대한 선의 우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의순은 『선문사변만어』에서 긍선이 근기의 우열에 의해 선을 차등화하고 구분짓는 것이 잘못이며, 방편상 나누자면 사람을 기준으로 조사선과 여래선, 법을 기준으로 격외선과 의리선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라고 반박했다. 이는 조사선=격외선, 여래선=의리선의 구도는 가능하지만 조사선과 여래선에 비해 격외선과 의리선만 별도로 낮게 보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대신 의순은 선교 일치를 전제로 “선은 부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의 말씀인데 언설만으로는 선의 언구도 모두 교의 자취에 들어가며 마음에 직접 투철하여 얻으면 교학이나 일상의 언어도 모두 진리에 이르는 길”임을 내세웠다. 또 의순은 긍선의 논리대로라면 부처와 조사도 기용을 드러내어 설하지 않으면 결국 임제에 미치지 못하는지 반문하고, 선종 오가의 분류에서도 위앙종과 조동종은 연원이 같고 우열이 없으며, 법안종에도 조사선이 있는데 이를 여래선에 배정한 것 등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초의 의순의 『선문사변만어』는 백파 긍선이 『선문수경』에서 선을 차등적으로 분류한 것을 비판하면서 19세기 선 논쟁을 불러일으킨 저술이다. 긍선이 조사선과 임제종 우위를 주장하기 위해 3종 선을 내세웠다면, 의순은 선교 겸수의 전통과 교학 중시라는 시대 조류에 부합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이들의 견해 차이는 임제 법통과 간화선, 선교 겸수와 화엄교학이라는 조선 후기 불교 수행 및 사상의 이중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후 우담 우행(優曇禹行, 1822∼1881)의 『선문증정록(禪門證正錄)』, 설두 봉기(雪竇奉琪, 1824∼1889)의 『선원소류(禪源溯流)』 등을 통해 선 논쟁이 이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