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처전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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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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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에서 석가가 세 곳에서 가섭에게 마음을 전한 이야기를 가리키는 불교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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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선종에서 석가가 세 곳에서 가섭에게 마음을 전한 이야기를 가리키는 불교용어.
내용

불교의 조사선이 교외별전(敎外別傳)되었다는 근거가 되는 설이다. 삼처전심이라 함은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 니련하반곽시쌍부(泥連河畔槨示雙趺)을 말한다.

첫째, 다자탑전분반좌는 『아함경』 · 『중본경(中本經)』의 대가섭품(大迦葉品)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석가가 사위국 급고독원에서 대중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는데 마하가섭이 뒤늦게 해진 옷을 입고 밖으로부터 왔다. 석가가 “잘 왔다 가섭이여.” 하면서 앉은 자리 반을 나누어주며 앉으라고 하였다.

대중은 “저 늙은 비구가 무슨 덕이 있기에 감히 여래의 자리에 앉으라 하는가?” 하고 이상히 여겼다. 석가는 대중의 의아해하는 마음을 살피고 널리 가섭의 덕을 찬양하였다. 이것이 첫번째로 마음을 전한 것이라 한다.

둘째, 영산회상거염화는 송나라 오명(悟明)이 편찬한 『전등회요(傳燈會要)』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석가가 영산회상에 계실 때 대범천왕이 금색 바라화(波羅花)를 올리는 것을 세존이 손에 들어 대중에게 보이니, 일천대중이 다 망연히 있는데 오직 가섭이 얼굴을 탁 트이고 빙그레 웃었다. 이에 석가가 이르기를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이 있으니, 실상은 상이 없는 미묘한 법문이라.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 하였다는 것이다.

셋째의 니련하반곽시쌍부는 『대열반경』 다비품(茶毘品)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석가가 열반에 드신 뒤 가섭존자가 먼 곳으로부터 뒤늦게 이르니 석가의 유체는 이미 입관되어 있었다. 가섭이 그 관 앞에서 슬피 울면서 “세존이 어찌 벌써 열반에 드셨나이까?” 하고 호소하자 석가가 두 발을 관 밖으로 내놓으며 광명을 놓았다는 것이다.

선종에서는 이들 삼처전심을 교외별전의 유일한 근거라 하여 매우 중요시하였다. 우리 나라의 경우 보조국사경절문(徑截門)을 세웠지만 삼처전심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러나 고려 말의 진정국사(眞靜國師)가 지었다는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에서는 염화미소 등을 내세웠다. 또 조선시대의 청허(淸虛)『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세존이 삼처전심한 것이 선지(禪旨)가 되고, 일대소설이 교문(敎門)이 되었다.”고 선언하였다.

또, 「교외별전곡(敎外別傳曲)」에는 ‘세존의 염화에 가섭이 미소’, ‘삼처전심이 제1구’라는 표현이 있고, 『선교석(禪敎釋)』에서는 ‘분반좌 거염화 시쌍부’ 등을 들었다. 그 뒤로 선의 표치를 내세우는 데는 반드시 삼처전심을 간판으로 내세우게 되었다. 조선 후기의 백파(白坡)『선문수경(禪門手鏡)』에서 삼처전심을 조사선과 격외선(格外禪)에 배당하였다.

참고문헌

『중본경(中本經)』
『열반경(涅槃經)』
『속전등록(續傳燈錄)』
『전등회요(傳燈會要)』
『선가귀감(禪家龜鑑)』
『선교석(禪敎釋)』
『선문수경(禪門手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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