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세기에, 초의 의순(草衣意恂)과 선 논쟁을 펼친 것으로 유명한 호남의 선승.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긍선이 입적한 후 구암사에 탑이 세워졌고, 1858년에 선운사에 김정희가 비문을 쓴 '화엄종주 백파 대율사 대기대용지비(華嚴宗主白坡大律師大機大用之碑)'가 세워졌다. 『선원소류(禪源溯流)』와 『산사약초(山史略抄)』를 지은 설두 봉기(雪竇奉琪, 1801-1876)가 그의 제자이다.
학문과 저술
긍선은 『선문수경』에서 선을 조사선(祖師禪), 여래선(如來禪), 의리선(義理禪)의 3종으로 분류한다. 조사선과 여래선은 격외선(格外禪)으로, 의리선은 교육과 학문, 문자의 습기를 벗어나지 못한 낮은 단계로 규정하였다. 이에 대해 초의 의순(草衣意恂, 1786~1866)은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에서 근기의 우열에 따라 선을 차등화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비판하였다. 또한 사람을 기준으로 조사선과 여래선, 법을 기준으로 격외선과 의리선으로 구분하는 것은 전통적 통설이라고 반박하였다. 이후 의순의 설을 지지한 우담 우행(優曇禹行, 1822∼1881)의 『선문증정록(禪門證正錄)』, 긍선의 후손으로 그를 옹호한 설두 유형(雪竇有炯)의 『선원소류』 등이 연이어 나오면서 선 논쟁이 확산되었다. 19세기 '선 논쟁'에서는 선과 교의 관계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특히 18세기 성행했던 화엄 교학을 배경으로 '조사선과 화엄의 위상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가 문제가 되었다. 이는 조선 후기 불교 사상의 흐름 속에서 나온 주제였다. 백파 긍선은 계율과 화엄, 선 모두에 정통했던 승려로, 선의 우위와 임제종의 정통성을 내세우며 선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참고문헌
원전
- 『동사열전(東師列傳)』
- 『선문수경(禪文手鏡)』
단행본
- 김용태,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신구문화사, 2010)
- 김용태, 『조선 불교사상사』(성균관대출판부, 2021)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신문관, 1918)
논문
- 한기두, 「白坡의 禪文手鏡」(『원광대 논문집』 4, 원광대, 1969)
인터넷 자료
-
기타 자료
-
주석
-
주1
: 사미와 사미니가 지켜야 할 열 가지 계율. 오계(五戒) 외에, 꽃다발을 쓰거나 향을 바르지 말 것, 노래하고 춤추고 풍류를 즐기지 말 것, 높고 큰 평상에 앉지 말 것, 제때가 아니면 먹지 말 것, 재물을 모으지 말 것이다. 우리말샘
-
주2
: 고려 무신 정권기에, 지눌이 수선사를 중심으로 일으킨 불교계의 정화 운동. 종래의 불교계가 세속화된 것에 대한 신앙적 반성에서 출발하였으며,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의 통합을 추구하였다. 우리말샘
-
주3
: 전라남도 구례군 지리산에 있는 절. 백제 성왕 22년(544)에 연기 대사(緣起大師)가 창건하였다. 현재 대한 불교 조계종 제19교구 본사로 되어 있다. 우리말샘
-
주4
: 습관으로 형성된 기운이나 습성. 우리말샘
-
주5
: 교법(敎法)을 받을 수 있는 중생의 능력. 우리말샘
-
주6
: 중국 당나라 때 임제의 종지(宗旨)를 근본으로 하여 일어난 종파.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