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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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승려 윤우·혜장 등이 해남 대흥사의 창건과 부속암자에 관한 내용을 수록하여 1823년에 간행한 사적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정병조 (둥국대학교, 불교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대둔사지 미디어 정보

대둔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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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승려 윤우·혜장 등이 해남 대흥사의 창건과 부속암자에 관한 내용을 수록하여 1823년에 간행한 사적기.

내용

4권 1책. 목활자본. 시오(始悟)·자홍(慈弘) 등의 교정을 거쳐서 1823년(순조 23)에 간행하였다. 이 가운데 권4에는 ‘대동선교고(大東禪敎攷)’라는 제명이 붙어 있는데, 윤동(尹峒)의 발문에 의하여 자하산방(紫霞山房)에 머물렀던 정약용(丁若鏞)이 편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이전의 대흥사 관계 사료들인 『죽미기(竹迷記)』·『만일암고기(挽日庵古記)』·『북암기(北庵記)』 등의 일서(逸書)들을 종합해서 편집한, 가장 상세하고 정확한 사지(寺誌)이다. 그는 아도(阿道)가 대흥사를 창건하였다는 고래의 기록은 신빙성이 없다고 논증하고, 신라말에 창건된 것으로 보았다. 이어서 조선 중기의 휴정(休靜)에 이르러 대흥사가 대규모로 발전하였음을 지적하고, 이후에 배출된 13대종사(十三大宗師)와 13대강사(十三大講師)의 행적과 사상 등을 약술하였다. 당우(堂宇)는 크게 남원(南院)과 북원(北院)으로 나누어 건립되었다고 하였으며, 북원에 24개 건물, 남원에 12개 건물의 명칭과 중수한 사람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그밖에도 표충사(表忠祠)를 비롯한 휴정의 유물과 조정의 하사품목록과 만일암(挽日庵) 등 산내 암자 18개에 관한 위치와 창건연대 등을 밝히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흥사 관계 사료로서는 가장 신빙성 있는 자료집이며, 특히 휴정과 관련된 사실을 중시하고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참고문헌

  • - 『대흥사(大興寺)』(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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