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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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중국 불교의 종학과 한국 불교의 불학에 대응해 인도의 근본불교에 기초한 교리 체계를 가리키는 불교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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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중국 불교의 종학과 한국 불교의 불학에 대응해 인도의 근본불교에 기초한 교리 체계를 가리키는 불교용어.
개설

‘교학’은 인도의 근본불교에 기초한 것으로서, 중국의 종파불교에 기초한 ‘종학’(宗學)과 한국의 통합불교에 기초한 ‘불학’(佛學)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인도의 교학은 불교의 교리적 기반을 형성하고 있어서 중국의 종학과 한국의 불학과 긴밀하게 상응하고 있다.

교학은 교법(敎法), 교리(敎理), 교체(敎體), 교관(敎觀) 등을 아우르는 총체적 개념이다. 교법은 붓다가 설한 크고 작은 삼장(三藏)·십이분교(十二分敎)를 가리킨다. 교리는 세존의 설법과 실행의 가르침을 동시에 일깨워주는 사성제·십이연기·팔정도 등을 조직한 가르침이다. 교체는 석존 일대의 교법의 체성(體性), 즉 소리[聲]를 몸체로 삼았는가, 명구(名句)를 몸체로 삼았는가, 장차 심(心)을 몸체로 삼는가, 진여(眞如)를 몸체로 삼는가, 그 나머지는 교체(敎體)라고 할 수 있는가, 할 수 없는가 등에 대한 논의이다. 교관은 석존 일대의 교법인 교상(敎相)과 자종이 세운 진리를 관념하는 관심(觀心)을 합친 것이다.

이 중 종교에서 진리라고 믿는 가르침인 교리(敎理) 즉 ‘교의’(敎義)는 ‘교’와 ‘의’의 병칭으로서 ‘교’는 설명하는 언어[能詮]의 성명구문(聲名句文)을 가리키고, ‘의’는 설명되는 대상[所詮]의 일체의리(一切義理)를 일컫는다. 그런데 교리(敎理) 즉 교의(敎義)라는 표현은, 대승과 소승의 분파에서 갈라져 나온 개별적인 종파로서 각기 주창하는 교설로 교화를 베풀고 있다. 이는 인도에서 성립된 교학의 분류로서 초기불교, 아비달마불교, 대승불교, 비밀불교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것을 내용적으로 세분하면 인도에서 시작된 아함[尼柯耶]교학, 비담[俱舍]교학, 반야[中觀]교학, 유가[唯識]교학, 비밀불교[密敎]학이다.

반면 중국에서는 격의불교(格義佛敎)에 입각한 경전의 한역(漢譯) 이후 붓다의 가르침을 시간, 방법, 내용(형식)에 의해 분류해 ‘가장 나중에 오는 장작이 제일 뒤에 온다(敎相判釋)’는 원리를 근거로 자종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종파(宗派)가 형성되었다. 이후 교조와 교리와 신도에 기초한 종파에 의거한 중국불교는 구사종학, 성실종학, 삼론종학, 열반종학, 지론종학, 섭론종학, 법상종학, 율종학, 밀종학, 천태종학, 화엄종학, 정토종학, 선종학 등 13종학을 전개하였다. 국가와 황제를 부정해 폐교 당한 민중불교인 삼계교는 13종에서 제외한다.

내용
  1. 인도의 교학

1.1. 아함[니가야]교학

아함[니가야]교학은 한문으로 번역된 장아함·중아함·잡아함·증일아함 등 네 가지 경전군과 팔리어로 번역된 장[디그하]부·중[맛즈히마]부·상응[상윳타]부·증지[앙굿따라]부·소[코다카]부 니카야 등 5가지의 경전군에 입각해 구축한 학문적 체계이다. 아함교학은 삼법인, 사성제, 팔정도, 십이연기, 오온, 십이처, 십팔계의 교리론과 오정심관(五停心觀), 사념처(四念處), 사선근(四善根), 견도(見道)·수도(修道)·무학도(無學道)의 삼도(三道) 수행론으로 구축되어 있다.

1.2. 아비달마교학[비담교학]

아비달마교학 즉 비담교학은 존재의 분석에 집중했던 부파시대의 논서인 ‘아비담장(阿毘曇藏)’ 혹은 ‘아비달마장(阿毘達磨藏)’에 의거해 구축한 학문적 체계를 일컫는다. ‘아비담’(팔리어 음역) 혹은 ‘아비달마’(범어 음역)란 무아(無我)의 해명을 위해 임시로 상정한 윤회 주체로서의 ‘존재에 대한 분석’을 의미한다. 아비달마(부파)불교에서는 원인과 조건에 의해 생겨난[緣起] 모든 존재[諸法]를 크게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의 다섯 범주로 구분한다.

여기에서는 존재를 크게는 색법, 심(왕)법, 심소(유)법, 심불상응행법, 무위법의 다섯 층위[五位]로 분석하고 작게는 칠십 오법으로 분류하였다. 이를테면 원인과 결과에 의해 실재하는 유위법은 ①물질을 총칭하는 색법(色法, 11종), ②의식 작용의 본체인 심(왕)법(心(王)法, 1종), ③마음의 종속으로 일어나는 정신 작용인 심소(유)법(心所(有)法, 46종), ④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존재인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14종)이며, ⑤인과가 없는 무위법(無爲法, 3종)은 원인과 결과에 의해 생멸하지 않는 것이다. 부파불교에서는 존재를 이와 같이 5부류로 나눈 뒤 다시 각 부류의 하위에서 75종으로 해명했다.

반면 대승아비달마[瑜伽唯識] 즉 유식학에서는 색법(11종) 이외의 심법(8종), 심소법(51종), 심불상응행법(24종), 무위법(6종)들 중 심법(7종)과 심소법(5종), 심불상응행법(10종), 무위법(3종) 등을 더욱 세분화하여 100종으로 분류하였다. 이들 존재들에 대해 다룬 논서를 우리는 아비달마논서라고 일컫는다. 비담교학은 이러한 수행 상에서 체험한 내용의 개념화를 통해 존재의 분석 위에서 수행의 계위 중심으로 재구축한 교학이다.

1.3. 반야[중관]학

반야[중관]학은 『반야경』의 공(성)관을 중심으로 세운 학문적 체계를 일컫는다. 『반야경』은 공관(空觀)에 입각하여 일체를 공(空)이자 불가득(不可得)으로 설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을 체계화한 용수(龍樹)와 그를 이은 중관학파와 이를 계승한 동아시아 삼론종은 현실을 부정하고 중생과 부처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수행의 필요성을 무시하는 것처럼 오해되어 왔다. 반야[중관]학은 용수의 『중론』·『십이문론』·『대지도론』, 제바(提婆)의 『백론』 등에 기초해 이루어진 체계이다. 이러한 반야부 경전에 의거한 용수와 제바 등의 반야 연구는 불호(佛護)와 청변(淸辯) 등에 이르러 중관교학(中觀敎學)으로 체계화되었다.

1.4. 유가[유식]학

유가[유식]학은 유가사들의 요가 체험의 경지를 구조화시켜 세운 학문적 체계이다. 요가 체험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유가사지론』에 기반하여 성립된 유가[유식]학은 존재의 상태를 세 가지로 분석한 삼성론(三性論)과 삼무성론(三無性論) 및 심분설(心分說)과 삼류경설(三類境說)에 입각하여 독특한 사상 체계를 형성하였다. 특히 『유가사지론』과 『해심밀경』에 의거하여 형성된 유가[유식]학은 유관(有觀)에 입각하여 일체를 유(有)이자 분별망집(分別妄執)으로 설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을 체계화한 미륵의 유가[유식]학파와 이를 계승한 현장의 법상종은 현실을 긍정하고 이 현실의 근거이자 중생의 분별 망집의 입각처인 아뢰야식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해 왔다. 구역 유식의 체계를 세운 진제(眞諦, 548년 入梁)는 『섭대승론』 등에 입각하여 자신의 입장을 제시하였다. 반면 신역 유식의 체계를 세운 현장(玄奘: 602~664)은 세친의 『유식삼십송』에 대한 호법 등 10명의 논사들의 주석을 합유(合糅)한 『성유식론』에 입각하여 자기의 생각을 드러내었다.

1.5. 밀교학

(비)밀(불)교학은 대승불교가 힌두교를 껴안으며 성립된 학문적 체계이다. 붓다의 성언량(聖言量)을 문자로 드러내는 가르침인 현교(顯敎)와 달리 붓다의 가르침을 비밀스런 의궤나 다라니로 전달하는 밀교는 인도의 힌두교와 대승불교의 습합 과정 속에서 형성되었다. 초기 밀교는 현세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제사나 점술 및 주술 등의 여러 가지 의례가 혼효한 잡밀(雜密)계통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중기 밀교는 불교의 합리적인 업설에 기초한 순수한 밀교[純密]계통으로 볼 수 있으며, 후기 밀교는 탄트라 계통으로 흐른 좌도 밀교라고 할 수 있다.

밀교는 교학적으로는 반야중관학과 유가행유식학의 사상을 계승하면서 독자적인 해석을 통하여 철학적이고 관념적으로 흐르는 현(로불)교를 다시 대중화시켰다. 『대일경』과 『금강정경』이 성립된 이후의 순밀에서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을 목표로 한 출세간의 실지(悉地)에서부터 연명(延命)·식재(息災)·치병(治病) 등 세간실지(世間悉地)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사상과 작법(作法)이 조직적으로 교설되어 있다. 이 때문에 밀교는 어떠한 지역과 사상 및 역사와 문화와도 어우러질 수 있는 토대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밀교학은 중국으로 건너온 금강지 삼장과 그의 제자인 불공 삼장에 의해 크게 체계화되었고 신라의 혜초가 천축의 순례 이후 당나라에 머물며 여러 밀승들과 함께 크게 발전시켰다.

  1. 중국과 한국의 교학

인도의 교학은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를 건너와 중국의 13종학과 한국의 불학으로 자리를 잡았다.

2.1. 구사학[비담학]

구사[비담]학은 존재의 분석에 기초해 이루어진 학문적 체계이다. 인도불교는 부파불교시대에 근본 2부인 상좌부와 대중부로 부터 분열되어 지말 부파에 이르기까지 약 20부파가 성립되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주도적인 부파는 상좌부를 상승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였다. 당시의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인도로 떠난 백제의 겸익(謙益, 526~531년 인도 체류)이 만난 부파 역시 설일체유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그가 가져온 아비담장 역시 설일체유부의 소의 논서들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비담장은 근본 경전인 『아함경』[장(長)·중(中)·잡(雜)·증일(增一)의 4부]에 대한 여러 논사들의 주석서들을 총칭한다. 아비담 논서는 대개 설일체유부가 근본으로 의지하는 논장들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아비달마발지론(阿毘達磨發智論)』[20권, 가다연니자(迦多衍尼子) 저]이 있다.

불멸 후 400년 초에 가니색가(迦膩色迦)왕이 5백 아라한을 모아놓고 불경을 결집할 때 이 논서에 대한 해석을 청하여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200권, 오백 아라한(阿羅漢) 저]이 탄생하였다. 또 『아비달마발지론』이 아비달마의 ‘몸’[身]에 상당하는 것과 달리 그 이치를 밝혀냄이 적다하여 ‘발’[足]에 비유한 ①『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20권, 사리불(舍利佛) 저], ②『아비달마법온족론(阿毘達磨法蘊足論)』[ 12권, 대목건련(大目犍連) 저], ③『아비달마시설족론(阿毘達磨施設足論)』[대가다연나(大迦多衍那) 저, 현장(玄奘) 번역 안함], ④『아비달마식신족론(阿毘達磨識身足論)』(16권, 제파설마(提婆設摩) 저], ⑤『아비달마품류족론(阿毘達磨品類足論)』[18권, 세우(世友) 저], ⑥『아비달마계신족론(阿毘達磨界身足論)』[3권, 세우 저]의 ‘육족론(六足論)’이 있다. 세친(世親: 4세기 추정)은 『아비달마대비바사론』을 30권으로 요약하여 『아비달마구사론』을 지었고 그의 저술은 뒷날 아비달마의 근본 소의 논서가 되었다.

세친의 『아비달마구사론』은 『대법론장(對法論藏)』으로도 불리며 아비달마를 기반으로 한 구사종의 근본 전적이다. 그 구성은 「계(界)품」, 「근(根)품」, 「세간(世間)품」, 「업(業)품」, 「수면(隨眠)품」, 「현성(賢聖)품」, 「지(智)품」, 「정(定)품」, 「파계(破戒)품」 등 총 9품(品)으로 되어 있다. 전 8품은 유루(有漏)와 무루(無漏)의 법을 밝히고, 후 1품은 무아(無我)의 도리를 밝히고 있다. 이 중에서 「계품」과 「근품」 2품은 유루와 무루의 모든 법에 대해 총괄적으로 밝히고, 「세간품」·「업품」·「수면품」·「현성품」·「지품」·「정품」 6품은 유루와 무루의 모든 법에 대해 개별적으로 밝히고 있다.

세친은 이 논서 속에서 일체 제법의 실재를 주장하는 유부종(有部宗)의 학설에 대하여, 경(량)부[經(量)部]의 설을 채택하여 색법 11종 가운데 4대종(四大種)만을 ‘실재’(實在)라 하고 다른 것은 ‘가법’(假法)이라고 하였다. 세친은 유부의 극미무분설(極微無分說)에 대하여 극미유분설(極微有分說)을 입론하였고, 유부의 삼세실유(三世實有)·법체항유(法體恒有)설에 대하여 현재유체(現在有體)·과미무체(果未無體)설을 채택하였다.

또 세친은 유부의 심소(心所)와 심불상응행(心不相應行)법에 대하여서는 가재설(假在說)을 취하였다. 이러한 극단적인 다원설(多元說)을 펼친 세친에 대하여 1부분[分]만 그 실재를 인정한 유부의 중현(衆賢)은 『순정리론(順正理論)』[구사박론(俱舍雹論), 80권]을 지어 세친을 반박했다. 존재의 실재에 대한 이들 두 견해에 겸익이 어떠한 입장을 취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오부율문 중 「십송율」을 번역했을 가능성 위에서 미루어 본다면 겸익은 설일체유부의 논지를 일관되게 주장한 중현과 입장을 같이 했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비담학은 이들 논서를 중심으로 존재[法]와 행위[業]의 분석을 통해 번뇌론과 수행론을 이론화한 학문적 체계라고 할 수 있다. 구사학은 중국과 한국 및 일본에서 초기에 한때 성행했으나 이후 대승교학에 밀려 널리 연구되지 못하였다.

2.2. 성실학

성실학은 하리발마의 『성실론』에 입각해 성립한 학문적 체계이다. 성실학은 논서의 제목이 말해 주듯이 공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을 통한 진실의 확립을 모색한다. 이들은 사성제 가운데 특히 멸성제(滅聖諦)를 해탈을 얻게 하는 진리로 언급하고 있다. 이 논서의 네 번째 부분으로 다뤄지는 멸성제를 다루는 멸제취(滅諦聚)는 이 논서의 가장 혁신적인 부분이며 가명심(假名心), 법심(法心), 공심(空心)의 세 마음의 소멸을 통해 열반을 획득한다는 이론을 담고 있다.

『성실론』에서 강조하는 또 다른 특징은 중도(中道)가 세제(世諦)를 통해 얻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온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완전히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통해 단멸론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 오온은 실체적이지 않지만 매 순간 소멸하므로 영원하지 않다는 주장을 통해 상주론(常住論)을 부정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 위에서 중도는 허무주의 혹은 단멸론과 실체론 또는 상주론의 양극단을 피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의 발생 과정을 보면 허무론과 단멸론의 오해가 사라지며, 세상의 소멸 과정을 보면 실체론과 상주론의 오해가 사라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성실론 학자들의 글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삼론학자인 길장의 비판을 통해 역추적할 수밖에 없다. 길장의 비판이 정당하냐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는 그의 저작을 통해 성실학을 엿볼 수밖에 없다. 성실학은 진속(유무)의 자성을 인정하거나 ‘경(境)'과 ‘리(理)'로 절대화시키고 있다. 이것은 진속(유무)의 이제를 ‘교(敎)'라는 방편으로 보는 삼론가의 무소득[無自性] 유무의 ‘약교이제설(約敎二諦說)’과 달리 성실가는 유소득[有自性] 유무의 ‘약리이제설(約理二諦說)’로 자신의 주장을 입론하고 있다.

그리하여 성실학은 이제를 ‘경’ 혹은 ‘리’로 보았다. 그리하여 ‘경’과 ‘리’를 어제(於諦)에만 국한해 어제(於諦)를 절대화시키고 있다. 성실가(成實家)의 이제(二諦)는 ‘경’과 ‘리’ 및 ‘일(一)’과 ‘이(異)’ 등을 결정적으로 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실종의 약리이제설에 의하면 “유(有)가 공(空)에 즉할 때 유는 부서지고[失], 공이 유에 즉할 때 공은 부서지기 때문”에 이제의 상즉(相卽)은 이루어질 수 없고, 동시에 이제의 병관(並觀)도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성실학은 “진제와 불과(佛果)는 모두 언어를 넘어선다. 불과는 이제의 맥락 밖에 나타나므로 언어를 넘어선다. 진제는 본래 스스로 공하다. 사구(四句)에 해당되지 않으며, 백비(百非)도 넘어선다, 그러므로 언어를 넘어선다”[장엄사(莊嚴寺) 승민(僧旻): 467527]고 하였다. 또 “이제는 법성의 근원적 의미이다. 하나의 진리이자 불이의 궁극적 진리이다”[개선사(開善寺) 지장(智藏): 458522]고 주장한다. 이처럼 성실학은 언어의 이분을 허용하지 않고 공에 대한 긍정적 해석 위에서 언어 너머의 진제와 불과를 일체화시켜 진리의 확립을 모색하려 한다.

2.3. 삼론학

인도의 용수와 제바에 의해 이루어진 반야사상과 이후 청변과 불호 등에 의해 형성된 중관교학은 구마라집(鳩摩羅什) 등에 의해 『반야부』 경전과 『중론』, 『십이문론』, 『백론』, 『대지도론』 등으로 번역되었다. 특히 구마라집의 문하였던 도생(道生)과 담제(曇濟) 등에 의해 구삼론종학이 이루어졌고, 이와 구분되는 신삼론종학이 승랑(僧朗)과 승전(僧詮), 법랑(法朗)과 길장(吉藏)/혜균(慧均)-혜관(慧灌)에 의해 자리를 잡았다.

특히 만주의 요동에서 태어나 출가한 뒤 중국 강소성 남경에서 활동한 섭산 승랑(攝山僧朗)은 고구려인이었다. 그는 중국에서 활동하며 삼론사상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장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승랑은 늘 삼론가의 상징인 청의(靑衣)가사를 두르고 삼론(三論)을 강론하였다. 그가 중도(中道)와 이제(二諦)를 몸체[體]와 몸짓[用]의 논리로 전개한 약교이제설(約敎二諦說)과 중도위체설(中道爲諦說) 및 이제합명중도설(二諦合明中道說)과 횡수병관설(橫豎幷觀說)은 중도의 무주(無住)를 실상반야, 이제의 진제(眞諦)를 관조반야, 이제의 속제(俗諦)를 문자반야로 짝지어 중층적 구조로 해명한 독자적인 사유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삼론가인 길장은 자신의 『삼론현의』에서 용수의 『중론』과 『십이문론』 및 제바의 『백론』을 아우른 “삼론은 모두 이제(二諦)를 근본[宗]으로 삼는다”고 했다. 그는 『이제의』에서 “모든 법은 자성이 공(空)한데도 세간 사람들은 그것을 거꾸로[顚倒] 유(有)라고 한다. 또 그들에게는 그것이 진실이므로 그것을 속제(俗諦)라고 부른다. 그러나 현인·성인[賢聖]들은 그 전도된[顚倒] 성품이 공[空]임을 안다. 또 그들에게는 이것이 진실이므로 이것을 제일의제(眞諦)라고 부른다. 모든 부처는 이 이제[所詮, 所依]에 의해서 중생에게 설법[能詮, 能依]한다”고 했다. 이제를 ‘어제(於諦, 시니피에)’와 ‘교제(敎諦, 시니피앙)’ 즉 어제[보름달]와 교제[손가락]로 나누어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어제를 설하는 것 자체가 곧 교제가 된다. 때문에 삼론학은 ‘이제는 붓다의 언교’라고 본다.

2.4. 열반학

『열반경』은 소승의 『대반니원경』(6권)과 대승의 『대반열반경』(40권)을 기초로 이루어진 학문적 체계이다. 대승의 『열반경』은 다시 북본의 『대반열반경』(40권)과 남본의 『대반열반경』(36권)으로 나뉜다. 당시 중국에서 널리 연구된 것은 대부분 북본의 『대반열반경』이었다. 이 점을 고려하면 보덕 또한 북본의 『대반열반경』을 강론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북본 『대반열반경』의 「여래성품」과 「사자후품」은 이 경전의 사상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특히 「여래성품」은 ‘명과 무명이 둘이 아니다(明無明無二說)’고 가르친다. 여기서 ‘무이’는 ‘평등불이’의 다른 표현이며 이것은 『열반경』의 평등사상을 함축하는 기호가 된다. 보덕은 『열반경』에 입각하여 ‘무이’의 기호로 평등사상을 역설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열반경』은 크게 ①붓다의 몸은 영원히 머무른다[佛身常住], ②열반은 영원하고 즐겁고 내가 있고 청정하다[涅槃常樂我淨], ③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다[一切衆生 悉有佛性]라는 가르침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셋 중에서 가장 주요한 메시지는 모든 생명체들은 불성을 지니고 있다는 세 번째의 것이다. 이것은 선성(善性)의 뿌리를 끊어버려 도저히 구제할 길이 없다고 낙인 찍혀 온 일천제(一闡提)까지도 언젠가는 성불할 수 있다고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일찍이 중국으로 건너온 축도생(竺道生)은 당시까지만 해도 경전에서 설하지 않았던 ‘천제성불론(闡提成佛論)’을 주장하여 교단에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뒷날 북본 『대반열반경』이 번역되자 모두들 그의 혜안(慧眼)에 감복하였다.

‘천제성불설’은 종래의 ‘천제불성불설’을 뒤집는 일대 전환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 『열반경』을 소의경전으로 삼는 열반학은 ①석존이 열반에 들더라도 육신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금강불괴(金剛不壞)의 몸으로 영원의 생명을 빛내고 있으며, ②불성은 모든 중생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중국 삼론학은 연기-무자성-공성을 강조하는 인도의 중관학과 달리 『열반경』의 여래장사상을 수용하여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사상으로 꽃피운 것이 특색이다. 천태 지의의 천태학 역시 오시 교판의 제5시에 『법화경』과 함께 『열반경』을 덧붙이고 있다. 또 북량 담무참이 『열반경』을 번역하자(421년) 하서 도랑(河西 道朗, 僧朗의 誤記)은 그 서문을 짓고 『열반경』에 대한 최초의 주석서[疏]를 지어 ‘불성은 곧 중도(正以中道爲佛性)’임을 밝혀내었다. 승랑의 증손상좌인 길장은 『열반경』의 불성사상에 대한 첫 주석서인 도랑(僧朗)의 저술을 자신의 책에서 거듭 인용하여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2.5. 지론학

지론학은 『화엄경』「십지품」 즉 『십지경』에 대해 주석한 세친의 『십지경론』을 기반으로 형성된 학문적 체계이다. 특히 불성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상적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지론사들은 아려야식(阿黎耶識)에 대한 이해의 차이로 인해 북도파와 남도파로 갈라졌다. 북도파의 대표는 도총(道寵)이었고 남도파의 대표는 광통율사(光通律師)로 불리던 혜광(慧光)이었다. 도총의 문하에는 승휴 등 5명의 고족이 있었으며 특히 승휴가 뛰어난 학자였다고 알려지지만 저술이 전하지 않는다.

혜광의 문하에는 10철이 있었으며 그 중에서 법상(法上: 495580), 승범(僧範: 476555), 도빙(道憑: 488779)이 특히 뛰어났다. 법상은 위(魏)와 제(濟)의 2대에 걸쳐 승통이 되어 200여 만의 승려를 40여 년 동안이나 다스렸다. 그의 저술에는 『십지경론소』, 『증일수법』, 『불성론』, 『대승의장』, 『중경론』이 있다. 그의 제자인 정영사의 혜원(慧遠: 523592)은 『대승의장』(249과)을 지어 지론종 남도파 교설의 입장에서 남북조의 불교학을 집대성하였다.

2.6. 섭론학

섭론학은 진제(眞諦) 삼장이 번역한 무착(無着)의 『섭대승론』에 기반하여 정립된 학문적 체계이다. 섭론학은 담천(曇遷: 542~607)에 의해 북방으로 널리 전해졌다. ‘대승불교를 포괄한 논서’인 『섭대승론』은 응지(應智) 즉 존재의 세 가지 속성[三性]인 의타성(依他起性)과 분별성(遍計所執性)과 진실성(圓成實性)의 3성(性)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즉 알라야식은 3성(性)의 의(依)이고, 유식관(觀)은 3성(性)으로 오입(悟入)하는 것이며, 6도(度)는 3성으로 오입(悟入)하는 인(因)과 과(果)이고, 10지(地)는 3성으로 오입(悟入)하는 인과에 있어서의 수행단계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에서는 의연(義淵)이 지론학을 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신라에서는 원광(圓光)과 자장(慈藏)이 섭론학에 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분황 원효(芬皇元曉: 617~686)는 선행의 지론학과 섭론학의 논의를 아우르며 『대승기신론』에 대한 창발적 해석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입론해 갔다. 그는 『대승기신론』의 이문 일심의 구도 위에서 세 가지 미세한 번뇌(三細)와 여섯 가지 거친 번뇌(六麤)를 아우른 독자적인 삼세육추설(三細六麤說)을 제시했다. 원효는 각의와 불각의의 화합식인 아려야식에 삼세(三細)상을 배대한 것은 유식가의 야려야식이 막연한 잠재심(潛在心)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 때문이었다. 즉 유식가의 아려야식은 이숙식(異熟識)으로서 윤회의 주체일 뿐 깨침의 정법(淨法)을 드러낼 수 없는 생멸식(生滅識)이다. 원효의 학문적 기반은 『능가경』과 섭론학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 『대승기신론』을 토대로 한 일심의 철학이었다.

2.7. 법상학

법상학은 인도 유식을 중국의 토양 위에서 재구성한 학문적 체계이다. 신유식의 소의 논서인 『성유식론』의 유식설에서는 아뢰야식을 근본으로 하는 8식이 전변하여 제법이 나타난다고 하고 이를 만법유식(萬法唯識)이라고 하였다. 이 유식설은 심식론이라는 기초 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구유식의 소의 논서인 『섭대승론』에서는 삼성설이 유식설의 기초가 되어 있다. 6경 11론에 의거해 법상종을 창종한 자은 규기(慈恩窺基: 632682)는 신구 유가 유식의 체계를 원용하여 중국적 토양에 맞는 법상학으로 변용시켰고 그를 이은 혜소(慧沼)와 지주(智周)에 의해 원측(文雅 圓測: 613696)-도증(道證)/승장(勝莊)-태현(太賢)으로 이어지는 신라계 서명 학통에 대응하는 자은 학통을 형성시켰다.

2.8. 율학

개인적 규범인 계(戒)와 달리 사회적 규범인 율(律)은 불교공동체를 유지시키는 주요 기반이 된다. 이 때문에 수행자에게 규범에 맞는 행법은 곧 바른 수행법이라는 점에서 율문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율학의 학문적 체계가 이루어졌다. 인도 유학을 떠났던 백제의 겸익은 부파불교의 아비담장과 오부 율문에 대한 관심이 깊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한 관심은 결국 중인도의 상가나대율사에 머물며 공부를 한 뒤 귀국하면서 아비담장 뿐만 아니라 인도의 대표적인 소승 부파였던 ①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②법장부(法藏部), ③대중부(大衆部), ④화지부(化地部), ⑤음광부(飮光部)에 전해지는 율문 오부의 바구니인 율장을 가져왔다. 이들 오부 율문은 당시 중국의 대표적 율학자인 법현(法顯: 339?420) 등도 온전히 접하지 못한 것이었다. 더욱이 훗날 현장뿐만 아니라 현장 이후의 대표적 삼장이었던 의정(義淨: 635713)의 입수 이전까지 오부 율부 전문은 중국에서 전역(傳譯)되지 못했다.

반면 백제는 겸익에 의해 6세기 중반에 이미 아비담장과 오부 율문을 접하고 번역과 강론을 통해 비담학과 율학 연구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리하여 그는 백제 율학의 학종(學宗)이 되었다. 이것은 624년 중국 도선(道宣: 596667)이 『사분율』을 번역하고 강설하면서 형성시킨 남산 율종보다 약 1세기 정도 앞서는 것이었다. 이러한 지점에서 우리는 불교 탄생지인 인도와 백제의 접점을 엿볼 수 있게 된다. 한역된 오부 광율(廣律)은 ①살바다부[설일체유부]의 『십송율』 61권[불야다라(弗若多羅)·구마라집(鳩摩羅什) 공역, 404409년], ②담무덕부[법장부]의 『사분율』 60권[불타야사(佛陀耶舍)·축불념(竺佛念) 공역, 410412년], ③마하승기부[대중부]의 『마하승기율』 40권[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법현(法顯) 공역, 416418년], ④미사새부[화지부]의 『미사새부(화혜)오분율』 30권[불타집(佛陀什)·축도생(竺道生) 공역, 422423년], ⑤근본유부의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 50권[의정(義淨) 역, 703713년] 등이다. 그런데 중국에는 소승 오부 중 하나인 음광부의 광율은 전해지지 않았다. 단지 『해탈계경』 1권[구담 반야류지(瞿曇 般若流支), 543년]만이 번역되었을 뿐이다. 이 가운데에서 가장 먼저 번역된 광율은 설일체유부의 『십송율』이었다. 특히 겸익이 활동할 당시 중국에서는 유부의 『십송율』이 널리 유통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광율에 소속된 『십송율』은 본디 80송(誦)이었지만 뒤에 10송으로 줄었다. 제1송에서 제3송까지는 250계(20권), 제4송은 수계(受戒)·포살(布薩)·자자(自恣)·안거(安居)·피혁(皮革) 의약(醫藥)·의(衣)의 7법(8권), 제5송은 가치나의(迦絺那衣)·구사미(俱舍彌)·첨파(瞻波)·반다로가(般茶盧伽)·회(悔)·차(遮)·와구(臥具)·쟁사(諍事)의 8법(7권), 제6송은 조달사(調達事) 등의 잡법(雜法, 7권), 제7송은 니율(尼律, 6권), 제8송은 증일법(增一法, 4권), 제9송은 우바리문(優波離問, 4권), 제10송은 비니분별(毘尼分別)을 해석(4권)하고 있다. 책 뒤의 비니서(毘尼序)에는 5백과 7백 집법(集法)과 함께 잡인연(雜因緣)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분량면으로 미루어 볼 때 겸익이 백제승 28인과 함께 번역한 율부 72권은 아마도 오부 율문 전체가 아니라 『십송율』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담욱과 혜인은 이들 번역 율부에 대한 『율소』 36권을 지었을 것이며, 성왕은 이 『율소』 서두에 실을 서문을 지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게 본다면 겸익은 설일체유부가 의거한 『십송율』 중심의 행법을 강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겸익이 붓다 이래 불교교단의 근본적인 위의와 행법을 계승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국 율학은 중국 도선(道宣: 597~668)에 의해 남산율학으로 자리를 잡았다.

2.9. 밀교학

밀(교)학은 『대일경』과 『금강정경』 등에 의거해 성립한 학문적 체계이다. 밀교승이었던 신라의 혜초(704~?)는 중국 광동성에서 금강지를 만나 크게 발심하여 인도로 유학을 떠났다. 그 뒤 중국으로 건너와 금강지의 제자인 불공 삼장의 문하에서 여섯 명의 고족 중 두 번째로서 크게 활약하였다. 그는 중국의 광주(廣州)에서 시작해 수마트라와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파미르 고원 부근과 카슈가르(喀什, 당시의 疏勒國)와 쿠차(庫車, 龜玆國)를 마지막으로 하는 그의 8년간의 여행을 기록한 『왕오천축국전』 3권을 남겼다.

혜초는 740년(효성왕 5)부터 당나라 장안(長安) 천복사(薦福寺)의 도량(道場)에서 금강지와 함께 『대승유가금강성해만주실리천비천발대교왕경』(大乘瑜伽金剛性海曼珠實利千臂千鉢大敎王經)이라는 밀교(密敎) 경전의 한역에 착수하였으나 이듬해 금강지가 입적하자 중단되었다. 불공의 입적 뒤 그는 동학들과 함께 황제에게 글을 올려, 스승의 장례 때 보여준 은혜에 감사하며 아울러 스승이 세웠던 사찰을 존속시켜 달라고 청원했다.

혜초는 773년경 대흥선사(大興善寺)에서 금강지의 제자 불공(不空)으로부터 이 경의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787년까지 중국의 오대산(五臺山)의 금강지 대공삼장(大空三藏)의 역장(譯場)에서 54년 동안 지내면서 많은 불경을 번역하였다. 그는 불공삼장(不空三藏) 6대 제자의 한 사람으로 당나라에서도 이름을 떨쳤으며 불공은 유서에서 자신의 법을 이은 6대 제자 가운데 2번째로 혜초를 꼽았다. 혜초가 쓴 인도 기행문인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현존본, 2730자 227행)은 오랫동안 전해지지 않았다. 19061909년 사이에 프랑스의 학자 폴 펠리오(Pelliot)가 중국 감숙성(甘肃省) 지방을 탐사하다가 돈황(敦煌) 석굴에서 구매한 앞뒤가 떨어진 책 2권을 발견하였다. 그 중의 하나였던 현재 초고본 혹은 사록본이 아닌 ‘절략본’으로 평가받는 이 기행문(원래는 상중하 3권 추정)은 8세기 동서교섭사 연구에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로 인식되고 있다.

그동안 밀교승 혜초는 단지 불공(不空, Amoghavajra: 705774) 삼장의 제자라는 것만 알려졌었다. 그의 여행기가 발견된 지 7년 뒤인 1915년에 일본 학자 다카쿠스 준지로(高楠順次郞)는 당대 밀교 최성기의 중요 문헌인 원조(圓照)의 『대종조증사공대판정광지삼장화상표제집』(代宗朝贈司空大瓣正廣智三藏和尙表制集) 속에 수록되어 있는 사료에 근거하여 밀교승 혜초가 신라인으로서 유년기에 당나라에 들어가 중국 밀종(密宗)의 시조인 금강지(金剛智, Vajrabodhi: 671741) 삼장을 사사하고 불경의 한역에 지대한 공헌을 한 신라인이었음을 고증해 내었다. 밀학의 대표적 학승으로 자리매김한 혜초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이슬람 문명권을 다녀온 사람이자 기행가라는 점에서 지금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10. 법화[천태]학

법화[천태]학은 『법화경』,『열반경』, 『대품반야경』, 『중론』, 『대지도론』, 『유가사지론』 등의 소의 경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법화연구는 『대품반야경』의 첫머리에 나오는 ‘대소승에서 가르치는 각종 도에 관하여 균등하게 아는 것’인 도종지(道種智), ‘일체법의 공상(共相)을 아는 것으로 소승에서 도달하려는 최고의 지혜’인 일체지(一切智), ‘일체법의 자상(自相)을 아는 것으로 대승에서 추구하는 최고의 지혜’인 일체종지(一切種智)의 세 지혜에서 비롯된 일심삼관(一心三觀)에 기반하여 이루어졌다. 북제 혜문(慧文)을 이은 남악 혜사(南嶽慧思; 515~573)에 의해 법화학은 기반을 마련하였고 제자인 백제인 현광(玄光)과 중국인 천태(天台)에 의해 수행이 깊어지고 이론이 넓어졌다.

천태학은 천태 지의(天台智顗: 538~597)가 법화학을 자신의 학문적 체계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후에는 그의 학통을 이어간 장안 관정(章安灌頂)과 그 이후의 형계 담연(荊溪湛然)으로 이어졌으며 당대에는 크게 성하여 화엄가와도 깊이 교유하였다. 당대 후반에 이르러 한동안 천태학은 침체기를 겪으면서 천태가인 담연과 화엄가인 징관의 두 사상을 합일시키려는 시도는 한동안 잠복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월 및 송대의 천태종에서 다시 일어났다. 그것은 일찍이 화엄의 성기(性起)사상의 입장에서 천태의 성구(性具)설을 해석하는 경향을 보인 담연의 시도를 산외학통이 다시 계승하자 이에 대항하는 산가학통이 성립되었다. 그런데 『승만경』과 『불성론』과 같은 불교 경론에는 이미 ‘성악’(性惡)의 개념이 사용되어 오고 있었다. 이들 경론에 나타나 있는 성악설(性惡說)에 대한 지의의 해석 속에는 두 학통의 견해가 이미 내재되어 있었다.

먼저 천태 지자는 『관음현의』(觀音玄義)에서 ‘성악’의 개념에 대해 독창적으로 풀이하고 있다. 천태는 경론의 성악설을 성구(性具) 개념을 매개하여 대담하게 전개시켰다. 그는 부처에게도 선천 본유(先天本有)의 악이 존재하며, 선근을 끊은 일천제(一闡提)에게도 선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천태의 성악설이 처음 보이는 곳은 그의 『관음현의』이다. 그는 여기에서 ‘정인(正因)’불성을 이루는 ‘연인(緣因)’불성과 ‘요인(了因)’불성에 본디 악이 존재하는가를 되묻고 있다. 이를 기초로 하여 송대에는 산가파와 산외파가 크게 대립하면서 천태학의 체계는 더욱 심화되고 확장되었다.

2.11. 화엄학

화엄학은 『대방광불화엄경』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학문적 체계이다. 이 경전은 60권과 80권의 대경과 40경의 소경으로 되어 있다. 『화엄경』은 붓다 세존이 미혹을 떨치고 성도한 깨달음의 내용을 여러 보살들이 설하는 경전이다. 60권은 7처 8회 34품으로 구성되어 있고 80권은 7처 9회 39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 적멸도량회와 제2 보광법당회는 지상이고, 제3 도리천회와 제4 야마천궁회 및 제5 도솔천궁회와 제6 타화자재천회는 모두 천상이다. 설법이 진행됨에 따라 그 모임의 장소도 점차 상승한다. 제7은 다시 지상의 보당법당회이고, 제8도 다시 지상의 서다림회 즉 기원정사회이다. 이 경전의 교주는 바이로차나불과 한 몸이 되어 있다.

지엄의 『십구장』에 대한 주석으로 알려지는 『십구장원통기』는 횡진법계와 수진법계에 대한 『일승법계도원통기』의 설명보다 쉽고 명료하게 풀이하고 있다. “의상은 곧 횡진법계를 주장했고, 법장은 수진법계를 주장했다. 의상의 진(盡)과 부진(不盡)은 하나하나의 계위[一一位]를 세워 십지 중의 십지[十地之十地]를 갖추는 것과 같아서, 초지의 환희지(歡喜地)를 부를 때 곧 뒤의 9지 중의 환희지 등이 나란히 응하기를 ‘나도 환희지’, ‘나도 환희지’라고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법장의 진(盡)과 부진(不盡)은 한 번에 십지로 나아감[一往十地]과 같아서 첫 환희지를 부를 때 뒤의 9지가 모두 덩달아 ‘나는 이구지’ 내지 ‘나는 선혜지’, ‘나는 법운지’(法雲地)라고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의상은 ‘일일위’를 통해 ‘십지 중 십지’인 횡진법계로 나아가며, 법장은 ‘일왕십지’를 통해 수진법계로 나아간다.

의상(義湘: 625~702)은 성기(性起)와 연기(緣起)의 구도를 통해 횡진법계(橫盡法界)를 기반으로 하는 이기설(二起說)을 구축했다. 의상의 육상설(六相說)은 세친의 『십지경론』에 의거하여 “육상설의 시설은 연기의 무분별한 이치를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고, “육상설은 『화엄경』(7처 8회)의 품 중 「십지품」에 있고 십지는 초지(初地)에 있고, 초지는 일념(一念)에 있으며, 그 반대도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의상은 “이런 도리로 해서 다라니법(陀羅尼法)은 주인과 손님이 서로 되어 일법(一法)을 들면 일체(一切)를 다 거두게 된다”고 역설한다. 이처럼 의상은 육상설을 법계연기론의 중도의(中道義)와 주반상성(主伴相成)과 다라니법 등의 성립 근거로까지 부상시키고 있다. 의상의 주인과 손님이 서로 되는 ‘상성(相成)’의 관법을 통해 주체와 대상을 아우르고 있으며, 이들 담론들은 모두 붓다 교설의 핵심인 중도설 위에서 인도와 중국의 불교 담론들을 물리적 비빔과 화학적 달임을 통해 제시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2.12. 정토학

정토학은 정토와 정토왕생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학문적 체계이다. 정토는 붓다와 보살이 사는 청정한 국토이며 번뇌의 구속에서 벗어난 아주 깨끗한 세계를 가리킨다. 반면 예토(穢土)는 우리가 참고 살아야하는 국토[忍土]이자 때가 묻은 국토를 일컫는다. 대표적인 정토로는 서방정토(西方淨土)가 있다. 『아미타경』에 “여기서 서쪽으로 10만억 국토를 지나서 한 세계가 있으니, 이름을 극락이라 한다” 한데서 연유하여, 아미타불의 국토를 서방정토라 한다. 정토교(淨土敎)에서는 아미타불의 48대원에 의지하여 극락정토에 태어나, 청정한 국토에서 아미타불과 여러 성인들과 함께 공부하고, 다시 사바세계에 와서 다른 중생들을 교화 구제하는 것 등을 설한다.

정토왕생을 위한 수행 방법은 염불(念佛) 및 극락세계의 사물과 불보살의 상호를 관상(觀想)하는 것을 통하여, 불교의 진리인 사성제와 팔정도를 익히도록 한다. 정토에는 이 외에도 다양한 용례가 있어, 범부와 중생이 함께 사는 동거정토(同居淨土), 대일여래의 정토인 밀엄정토(密嚴淨土), 시방의 무수한 붓다들의 여러 정토를 가리키는 시방정토(十方淨土) 등을 들 수 있다.

2.13. 선학

선(법)학은 선과 선 수행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학문적 체계이다. 수행 선풍의 하나인 조사선은 일상의 삶에 대한 선문답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다. 조사선은 삼처전심(三處傳心)의 교의에서 연원을 찾고 있다. 붓다는 오랜 수행 끝에 스스로 체득한 깨침의 세계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였다[以心傳心]. 그는 ①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여 가섭에게 보이었고[靈山會上 擧拈花], ②다자탑 앞에서 가섭과 자리를 나누어 앉았으며[多子塔前 分半座], ③사라쌍수 아래에서 두 발을 관 밖으로 내 보였다[沙羅雙樹下 槨示雙趺]. 이처럼 붓다는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고’,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나누어 앉고’, ‘사라쌍수 아래에서 가섭이 여러 제자들과 함께[與諸弟子] 오른 쪽으로 일곱 번을 돌자[右繞七匝] 두 발을 관 밖으로 내보였다. 이렇게 붓다는 가섭에게 세 곳에서 자신의 마음을 전하였다[三處傳心]. 그리고 그의 마음에서 가섭의 마음으로 전한 소식은 조사선의 원천이 되었다.

조사선(祖師禪)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불성을 깨달을 때 그대로 부처가 된다는 돈오견성(頓悟見性)을 강조한다. 또한 조사선은 본래성불(本來成佛) 즉 중생이 본래부터 성불해 있다는 것에 근거하여 일상의 생활에서 선법을 실천하고자 한다. 이 때문에 조사선은 깨침을 완성한 여러 조사들이 본래 이루어져 있는 깨침의 세계를 바로 눈앞에 들어 보인 법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법문에 들어서면 말의 길[語路]과 생각의 길[義路)이 끊어지고 스스로가 본래의 붓다를 명확히 깨달아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자재한 삶을 누리게 된다. 따라서 조사선은 말과 생각이라는 자아의 존재 방식이 허물어져 법계의 참모습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하는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조사선은 ‘반조(返照)’ 즉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비춰보는(返照自心)’, 다시 말해서 자신이 본래 부처라는 사실을 ‘돌이켜 비춰보는 선풍을 지향한다. 이것을 재정비한 대혜는 ‘간화(看話)’ 즉 화두참구(照了專精)를 통해 의단을 참구함으로써 의단을 넘어서는 수행 방식을 창안하였다. 이것은 깨침의 계기를 주었던 화두 즉 에피소드를 집중적으로 탐구함으로써 그 이외의 의단을 끊어버리고 오직 하나의 의단에만 몰입하여 마침내 활연대오(豁然大悟)하는 순간에 의단이 멎는 행법이다. 조사선의 선풍과 간화선의 행법은 법(法) 즉 불변과 수연에 의거한 진리관에 있어서는 서로 다르지 않지만, 인(人) 즉 돈오와 점수에 의거한 실천론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각자의 입각지에서 해명한 것일 뿐 진리에 대한 인식은 서로 다르지 않다.

조사선은 우리 모두가 ①본래부터 부처임[本來成佛]을 강조한다. 이 때문에 ②부처의 깨침과[佛覺]과 조사의 깨침[祖覺]은 다르지 않다. 이것은 ③스승과 제자 사이의 선문답[擧揚]과 몽둥이[棒] 및 고함[喝] 그리고 기이한 인연[奇緣] 등을 통해 깨치게 한다. 수행자는 ④스승의 설법이나 말끝에 곧 깨닫는다[言下便悟]. 여기서 ‘본래성불’은 보이는 모든 것이 본래 완성되어 있는 부처이므로 있는 그대로가 모두 극락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해탈되어 있는 자신의 본래모습을 바로 보는 반조의 수행법이 제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식인 조사와 부처의 경계는 서로 다르지 않다. 부처와 조사를 동일하게 여기기 때문에 조사는 ‘불조(佛祖)’이자 ‘조불(祖佛)’로 불리고 있다.

조사선에서는 스승이 법을 설하고, 고함을 치고, 눈썹을 치켜 올리고, 방망이를 휘두르는 등의 행위를 매개한다. 이러한 행위와 기연 등은 모두 언어와 사량을 떠나 살아있는 마음의 당처를 곧바로 보여주는 법문이다. 그리하여 수행자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본래 성품을 돌이켜 비춰보고[返照] 깨닫게 한다. 이처럼 조사선은 ‘반조’의 행법을 통해 자신의 본래면목을 보고 스스로 부처임을 확인하게 된다. 이와 달리 간화선은 ‘간화’의 행법을 통해 깨침에 이르는 수행법이다.

수행 방식 중의 하나인 간화선(看話禪)은 ‘화두를 간(看)하여 자성 즉 본래 성품자리를 바로 보고 깨닫는 것이다. 이것은 성품을 보고 깨닫는다고 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붓다와 역대 조사가 이른 한 마디 말이나 순간적으로 보인 짧은 행위 끝에 백억 가지 법문을 뛰어넘어 곧바로 깨침에 이른다. 화두는 현관과 같아 간절히 의심하며 참구해야 안방(本鄕)에 들어갈 수 있다. 수행자의 마음이 화두에 대한 의정(疑情)으로 가득하여 깊이 참구해 가면 마침내 그 의심덩어리[疑團]가 툭 터지는 경지로 들어가게 된다. 이 간화선은 오조 법연(五祖 法演: 1024~1104)과 원오 극근(圜悟克勤: 10631135) 그리고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에 의해 체계화되어 가장 발달된 수행법으로 자리를 잡아 왔다. 이러한 조사선과 여래선의 수행 선풍과 간화선과 묵조선 및 정토[염불]선의 수행 방식에 대한 총체적 연구를 선학이라고 한다.

의의와 평가

이처럼 인도의 교학은 중국의 종학과 한국의 불학으로 원용되고 변용되었지만 불설의 핵심인 중도설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교학과 종학과 불학의 관계는 긴밀하게 상응하고 있다. 인도의 교학은 중국의 종학으로서 체계화되었고 한국의 불학으로서 실용화되었다. 그리하여 인도의 교학은 중국의 이론적 체계와 한국의 실천적 수행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개념의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붓다에 대한 연구인 불학과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연구인 불교학은 이러한 교학의 토대 위에서 붙여진 학문적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불학과 불교학』(고영섭, 씨아이알, 2016)
『한국사상사』(고영섭, 씨아이알, 2016)
『천태불교의 철학적 토대-이제론(二諦論)의 중국적 전개』(paul L. Swanson, 김정희 역, 서울: 씨아이알, 2015)
『삼국유사 인문학 유행』(고영섭, 박문사, 2015)
『佛光大辭典』1~7(佛光大藏經編修委員會 編, 台灣: 佛光出版社, 1988; 1989)
『實用佛學辭典』(佛學書局編輯部 編輯, 杭州市(浙江省): 浙江古籍出版社,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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