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 ()

불교
개념
불교를 비롯한 동양 사상의 특정 전통이나 교리에 대한 내용 및 체계를 고찰하는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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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교학은 불교를 비롯한 동양 사상의 특정 전통이나 교리에 대한 내용 및 체계를 고찰하는 학문이다. 근대 불교 연구에서 철학이나 종교학과 구분되는 불교 내부의 담론을 중심으로 한 연구를 지칭할 때 사용되었던 용어였으나 현재는 여러 사상 연구 분야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정의
불교를 비롯한 동양 사상의 특정 전통이나 교리에 대한 내용 및 체계를 고찰하는 학문.
개설

교학(敎學)은 ‘특정[주로 동양의] 사상 전통에 대한 학문’을 의미한다. 해당 용어에 대한 합의된 정의는 없지만, 교학이 사용되는 용례를 보면 불교도교, 유교, 기타 주1철학과 같은 동양 사상 내의 교리 개념 및 체계를 연구하는 것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특히 특정 사상집단 내부에서만 성립 가능한 맥락 속에서 그 사상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전통적 학문에 가깝지만, 교리 체계나 개념의 정합적인 고찰을 진행한다는 점에서 근대 학문의 영역을 동시에 보여주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학문의 성격으로 보면 교학은 사상사, 철학, 혹은 신학과도 유사성을 가진다. 만약 특정 전통의 교학을 역사적인 변천 과정을 염두에 두고 고찰한다면 사상사 연구의 성격을 가지게 되며, 특정 교학에 대한 보편철학적 접근을 통해 철학 연구의 성격 또한 가질 수 있다. 또한 동양 사상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성격을 고려한다면 신학에서 논하는 절대적 존재나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와도 호응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용례에 해당하는 ‘교학’은 반드시 역사적인 접근을 포함할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사상사와 구분되며, 반드시 보편철학적 이론을 고려할 필요도 없다는 점에서 철학과 구분되고, 교학의 논의 범주에 속하는 대부분의 동양 사상이 개인의 수양과 통찰을 중시하며 교학의 내용 또한 이것을 중점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신학의 문제 의식과 구분된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서구의 사상 전통에 대한 연구에도 교학이라는 용어가 사용될 수 있지만, 그 개념의 기원은 근대 동아시아 학문 체계의 발달, 그 중에서도 근대 불교학의 학제화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유래

본래 교학(敎學)의 말뜻은 교사가 행하는 교육(敎育)과 학생이 행하는 학문(學問)을 통칭하는 것이었다. 『예기(禮記)』 「학기(學記)」 편에서 “옥은 쪼지 않으면 그릇으로 만들 수 없고,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도(道)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옛적의 성왕들은 나라를 세우고 백성들을 다스리매 교학을 우선하였다.”[옥불탁불성기, 인불학부지도. 시고고지왕자건국군민, 교학위선.(玉不琢不成器, 人不學不知道. 是故古之王者建國君民, 敎學爲先.)]고 한 것이나, 북송대 성리학자 주희(朱熹, 주2와 여동래(呂東萊, 11371181) 공저의 주3에서 "교학(敎學)"편을 두어 교육에 관한 일을 논하고 있는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교학은 학문 그 자체라기보다는 교육의 함의를 포함하고 있는 좀 더 넓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특정 사상 전통 내부의 교리 연구라는 의미에서의 교학 개념은 불교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불교 문헌에서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이론적 접근’이라는 의미로 ‘교학’을 사용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조선 중기의 승려 휴정(休靜, 1520~1604)이 지은 『선가귀감(禪家龜鑑)』에는 “굽히는 것은 교학[을 닦는] 자의 병통이고 내세우는 것은 선학[을 닦는] 자의 병통이다. 교학[을 닦는] 자는 선문(禪門)이 깨달음의 비결을 지니고 있음을 믿지 못하고, 권교(權敎)에 깊이 막혀 진실과 거짓을 별개라고 집착하되 관행을 닦지 않으니 남의 진귀한 보배를 헤아리기만 하는 격이기 때문에 스스로 물러나 굽히는 마음을 일으킨다.”[굴자교학자병야, 고자선학자병야. 교학자불신선문유오입지비결, 심체권교별집진망, 불수관행수타진보, 고자생퇴굴야.(屈者敎學者病也, 高者禪學者病也. 敎學者不信禪門有悟入之秘訣, 深滯權敎別執眞妄, 不修觀行數佗珍寶, 故自生退屈也.)]라 하였다. 이는 동아시아 불교계에서 선종(禪宗)이 우위를 점하게 됨에 따라 경전과 같은 문자화된 텍스트를 중심으로 한 접근은 교종(敎宗)으로 통합되었고, 이 두 가지 불교 내의 접근법을 각각 선학(禪學)과 교학(敎學)으로 부르는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휴정의 평가는 교학에만 집착했을 때의 폐단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실천을 강조하는 선학보다 교리에 대한 논리적 접근을 강조하는 교학 쪽이 오늘날 주로 사용되는 교학의 의미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통용되는 교학의 의미는 근대 시기 학제의 개편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 메이지[明治] 시대부터 근대 불교 종단 설립 학교에서 당 개념을 적극적으로 차용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19세기 후반 일본에서는 교학을 포교(布敎)와 흥학(興學)을 통칭하는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해 점차 그 의미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특히 종립학교들이 근대 학제로 편입됨에 따라 불교의 사상을 "교학"으로 지칭하게 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널리 쓰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초반 한국에서 출판된 불교 잡지에서도 "교학"의 용례를 확인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1912년 출간된 『조선불교월보(朝鮮佛教月報)』 19호에서는 "여배ᄂᆞᆫ피교학에대ᄒᆞ야전승의준비ᄅᆞᆯ일야강구치안이홈은부득ᄒᆞ리라(余輩ᄂᆞᆫ彼敎學에對ᄒᆞ야戰勝의準備ᄅᆞᆯ日夜講究치안이홈은不得ᄒᆞ리라)"라 하였고 1924년 출간된 『불교(佛敎)』 10호에는 "그럼으로현대불교의교학을철저히연구하랴고하면누구나범어에감능이업스면그목적을달할수업다고한다(그럼으로現代佛敎의敎學을徹底히硏究하랴고하면누구나梵語에堪能이업스면그目的을達할수업다고한다)"고 하여 기본적으로 이 시기에도 교학이 '학문'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범주

이상과 같이 교학은 동양 사상, 특히 불교학 내부의 교리적 담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학에 대응하는 내용 또한 그 의미과 관련된 유의어, 혹은 종개념(種槪念)을 통해서 파악해야 한다. 대표적으로는 불교 전통의 종학(宗學)을 들 수 있으며, 근대 불교학에서 고안된 수증론(修證論)이나 번뇌론(煩惱論), 심식설(心識說) 또한 교학의 범주에서 논의할 수 있다. 아래에서는 종학의 내용을 개관한다.

종학(宗學)

학자에 따라서는 교학과 종학을 동의어로 사용할만큼 두 개념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종학이란 불교의 각 종파(宗派)에 대한 교리 연구를 말한다. 이 때 종(宗)이란 가마쿠라 시대 일본 승려 교넨[凝然, 12401321]이 『삼국불법전통연기(三國佛法傳通緣起)』에서 불교의 교학적 갈래를 13종, 즉 열 세개의 종파(宗派)로 정리한 것에 기원한다. 이러한 구분은 근대 시기 조선 학자인 이능화(李能和, 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에서도 그대로 수용되었다. 상기 문헌들에 근거하여 13종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구사종(俱舍宗)

비담종(毘曇宗)이라고도 한다. "비담"이란 본래 불교의 정전인 삼장(三藏)주4인 아비담장[阿毘曇藏, abhidharma-piṭaka]에서 유래한 것으로, 각 부파에 전승되는 경전에 대한 주석서 혹은 논서를 총칭하는 것이다. 인도 불교에서 성립된 여러 부파 중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Sarvāstivāda]였으므로, 후대에 주5"으로 지칭되는 것들은 대개 설일체유부의 논서를 가리킨다. 『조선불교통사』에는 백제겸익[謙益, 526~531년 인도 체류]이 인도에서 아비담장을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는데, 정황상 그가 가져온 아비담장 역시 설일체유부의 논장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설일체유부의 논장으로는 『아비달마발지론(阿毘達磨發智論)』 및 그 주석서 주6, 육족론(六足論)이라 불리는 ①『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 ②『아비달마법온족론(阿毘達磨法蘊足論)』, ③『아비달마시설족론(阿毘達磨施設足論)』, ④『아비달마식신족론(阿毘達磨識身足論)』, ⑤『아비달마품류족론(阿毘達磨品類足論)』, ⑥『아비달마계신족론(阿毘達磨界身足論)』이 꼽힌다.

이것이 “구사종” [^7]이라 불리는 것은 세친[世親, Vasubandhu, 4~5세기 경][^8]이 지은 주9으로 인해서였다. 세친의 『아비달마구사론』은 『아비달마대비바사론』의 핵심을 밝힌 논서임을 자청하며 당대 인도 불교계에서도 탁월한 저작으로 인정받았다. 세친은 이 논서 속에서 일체법의 실재를 주장하는 설일체유부의 학설을 비판적으로 논하는 한편, 경량부[經量部, Sautrantika][^10]의 설 등을 채택하여 아비달마 교학의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였다. 이후 중현[衆賢, Saṃghabhadra]은 『순정리론(順正理論)』을 지어 설일체유부의 입장에서 세친을 반박하는 등 주11을 기점으로 인도 아비달마의 담론이 풍부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중국에서는 진(陳) 문제(文帝) 때에 서역 사문 진제(眞諦, 주12가 『구사론』을 번역하고 아울러 주13을 지었는데, 이른바 구구사(舊俱舍)라고 하는 것이 이것이다. 진(陳)의 승려 지의(智顗), 당(唐)의 승려 정혜(淨慧)가 이 진제 역 『구사론』에 주석서를 지었다. 당(唐) 정관(貞觀) 연간[627649년]에 이르러 현장(玄奘, 주14이 인도에서 승가야사(僧伽耶舍)로부터 『구사론』의 깊은 뜻을 배우고 귀국하여 『구사론』을 30권으로 다시 번역하였다. 그의 제자 신태(神泰), 보광(普光), 법보(法寶) 등이 현장 역 『구사론』의 주석서를 지어 “구사 삼대가(三大家)”라 불렸으니, 구사종을 세우게 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오대(五代) 이후에 불교가 선종 중심으로 진행되며 명상(名相)을 등한시하게 되자 점차 구사종은 사라지게 되었다. 한반도에 구사종이 전해진 것은 신라시대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일본에까지 전해졌다. 특히 교넨에 따르면, 일본의 구사종 중 고묘[護命]는 신라 지평(智平)의 ‘유위법의 체(體)는 생멸하지 않는다’는 설을 이어받은 것으로 전한다.

구사종, 혹은 비담종의 교학적 특징은 법(法)을 중심으로 한 치밀한 분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논서를 중심으로 아비달마의 번뇌론과 수증론을 체계화한 학문적 체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법의 실재성을 주장하는 설일체유부의 삼세실유(三世實有) · 법체항유(法體恒有)설에 대하여 경량부의 설에 근거하여 현재유체(現在有體) · 과미무체(果未無體)설을 채택하는 등 다양한 논의들을 낳았다.

성실종주15은 하리발마[訶梨跋摩, Harivarman]의 『성실론(成實論)』에 입각해 성립한 종파이다. 『성실론』은 요진(姚秦) 홍시(弘始) 연간[399415년]에 구마라집[鳩摩羅什, Kumarajīva][^16]이 번역한 이래 그의 제자였던 담영(曇穎)과 승예(僧叡)가 『성실론』의 주석서를 지었고, 이후에도 크게 융성하여 당(唐) 대에까지 존속하였다. 특히 강남 지역에서 유행하다 중당(中唐) 이후 삼론종(三論宗)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한반도에서는 신라원광(圓光)이 성실종을 얻었다고 전해지며[『속고승전』 권13] 원효(元曉, 617686) 또한 『성실론소(成實論疏)』 10권을 지었다고 한다. 일본의 성실종은 백제도장(道藏)이 일본으로 건너가 지은 『성실론소(成實論疏)』 16권을 그 효시로 한다.

성실종의 교학적 특징은 『성실론』 내의 교설과 관련되어 있다. 하리발마는 설일체유부의 교설을 비판하고 공(空)의 해석을 통한 진실(實)의 확립[成]을 모색한다. 이들은 사성제 가운데 특히 멸성제(滅聖諦)를 주17을 얻게 하는 진리로 언급하고 있다. 이 논서의 네 번째 부분으로 다뤄지는 멸성제를 다루는 멸제취(滅諦聚)는 이 논서의 가장 혁신적인 부분이며 가명심(假名心), 법심(法心), 공심(空心)의 세 마음의 소멸을 통해 열반을 획득한다는 이론을 담고 있다. 『성실론』에서 강조하는 또 다른 특징은 중도(中道)주18를 통해 얻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온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완전히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통해 단멸론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 오온은 실체적이지 않지만 매 순간 소멸하므로 영원하지 않다는 주장을 통해 상주론(常住論)을 부정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 위에서 중도는 허무주의 혹은 단멸론과 실체론 또는 상주론의 양극단을 피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의 발생 과정을 보면 허무론과 단멸론의 오해가 사라지며, 세상의 소멸 과정을 보면 실체론과 상주론의 오해가 사라짐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러 기록에서 중국의 성실론사들을 언급하고 있으나 그들의 글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삼론학자인 길장(吉藏, 주19의 비판을 통해 역추적할 수밖에 없다. 길장에 따르면 성실종은 진속(眞俗)/유무(有無)의 자성을 인정하거나 ‘경(境)'과 ‘리(理)'로 절대화시키는 ‘약리이제설(約理二諦說)’의 입장에 있다고 한다. 또한 장엄사(莊嚴寺) 승민(僧旻, 467527)이 “진제와 주20는 모두 언어를 넘어선다. 불과는 이제의 맥락 밖에 나타나므로 언어를 넘어선다. 진제는 본래 스스로 공하다. 사구(四句)에 해당되지 않으며, 백비(百非)도 넘어선다, 그러므로 언어를 넘어선다”는 주장이나 개선사(開善寺) 지장(智藏, 458~522)의 “이제는 법성(法性)의 근원적 의미이다. 하나의 진리이자 불이의 궁극적 진리이다”라는 주장도 전해진다.

삼론종(三論宗)

"삼론"이란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한 주21, 주22, 주23을 통칭한 것으로, 여기에 주24을 더하여 사론종(四論宗)이라고 불리는 경우도 있으며, 그 사상을 따라 공종(空宗), 파상종(破相宗)이라고도 불린다. 인도의 용수[龍樹, Nāgārjuna, 2~3세기?][^25]와 그의 제자 제바[提婆, Āryadeva, 3세기?]는 일체법의 자성(自性)이 없음, 즉 공(空)을 주장하는 주26을 주창하였는데, 구마라집이 이들의 전적을 번역하고 강의함에 따라 점차 중국에 중관학이 알려지게 되었다. 따라서 삼론종이란 인도 중관학을 수용하고 발전시킨 동아시아의 중관학파라 할 수 있다. 구마라집의 문하였던 도생(道生), 승조(僧肇), 도융(道融), 담제(曇濟) 등에 의해 중국의 삼론종이 시작되었으며 길장(吉藏)에 와서 크게 일신되었다. 전자를 고삼론(古三論), 혹은 북지삼론(北地三論)이라 하고 승랑(僧朗)과 승전(僧詮), 법랑(法朗)과 길장(吉藏)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신삼론(新三論) 혹은 남지삼론(南地三論)이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한반도에는 고구려혜관(慧灌)이 일본으로 건너가 삼론종을 전파하였으며, 원효는 『삼론종요(三論宗要)』 1권을 지었으나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백제의 혜현(慧顯) 또한 삼론을 강의하였는데 그 명성이 중국에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대표적인 삼론논사 중 만주의 요동에서 태어나 출가한 뒤 중국 강소성 남경에서 활동한 섭산 승랑(攝山僧朗)은 고구려인이었다. 그는 중국에서 활동하며 삼론사상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장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승랑은 늘 삼론가의 상징인 청의(靑衣)가사를 두르고 삼론(三論)을 강론하였다. 그가 중도(中道)와 주27를 몸체[體]와 몸짓[用]의 논리로 전개한 약교이제설(約敎二諦說)과 중도위제설(中道爲諦說) 및 이제합명중도설(二諦合明中道說)과 횡수병관설(橫豎幷觀說)은 중도의 무주(無住)를 실상반야, 이제의 주28를 관조반야, 이제의 주29를 문자반야로 짝지어 중층적 구조로 해명한 독자적인 사유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삼론종을 대성한 길장은 자신의 주30에서 용수의 『중론』과 『십이문론』 및 제바의 『백론』을 아우른 “삼론은 모두 이제(二諦)를 근본[宗]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그는 『이제의』에서 “모든 법은 자성이 공(空)한데도 세간 사람들은 그것을 거꾸로[顚倒] 유(有)라고 한다. 또 그들에게는 그것이 진실이므로 그것을 속제(俗諦)라고 부른다. 그러나 현인 · 성인[賢聖]들은 그 전도된[顚倒] 성품이 공[空]임을 안다. 또 그들에게는 이것이 진실이므로 이것을 제일의제[眞諦]라고 부른다. 모든 부처는 이 이제[所詮, 所依]에 의해서 중생에게 설법[能詮, 能依]한다”고 하여 이제설에 기반한 독자적인 중관학을 성립시켰다. 이후 선종이 흥기하게 되면서 삼론종 또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열반종주31대승경전인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의 경명(經名)을 따른 것이다. 이 경은 421년 담무참(曇無讖, 385433)이 북량(北涼)에서 40권 13품으로 번역하였고 이를 기초로 유송(劉宋)에서 혜엄(慧嚴, 363443) 등이 36권 25품으로 편집하여 북본(北本) 열반경과 남본(南本) 열반경 두 가지가 유통되었다. 열반종은 특히 남조에서 크게 흥기하였는데 남조의 여러 승려들의 『열반경』 주석서가 『대반열반경집해(大般涅槃經集解)』라는 주석서 묶음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후에도 『열반경』에 대한 연구는 이어졌으나 후대 주32이 등장하여 흡수되었다. 한반도에서는 원광[圓光, 생몰년 미상], 원효 등이 이 경을 매우 중시하였다. 원광은 수나라로 유학을 떠나 당시 유행하던 성실종과 열반종, 섭론종의 교학을 섭렵하고 600년에 귀국하여 경전을 강의하였다. 원효가 지은 『열반경종요(涅槃經宗要)』는 여러 저작 중에서도 그의 대표 저작으로 꼽힌다. 이능화에 따르면 한반도의 열반종은 고려시대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다 고려 중엽 천태종이 흥기하면서 흡수되었다고 전한다.

『열반경』의 교학은 크게 ①붓다의 몸은 영원히 머무른다[佛身常住], ② 열반은 영원하고 즐겁고 내가 있고 청정하다[涅槃常樂我淨], ③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다[一切衆生悉有佛性]라는 가르침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셋 중에서 가장 주요한 메시지는 모든 생명체들은 불성을 지니고 있다는 세 번째의 것이다. 이것은 선근(善根)의 뿌리가 타 버려 절대 성불할 수 없다고 규정된 일천제[一闡提, icchantika]마저도 구원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보편구원론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후대 동아시아 불교 사상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열반종이 크게 유행하던 남조에서는 대개 『열반경』을 연구하던 이들이 『성실론』 연구를 겸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교학적 특징을 "성실열반학"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지론종(地論宗)

지론종은 『화엄경(華嚴經)』 「십지품(十地品)」, 즉 『십지경(十地經)』에 대한 세친의 주석서인 『십지경론(十地經論)』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이 논은 508년 북위(北魏)에서 보리류지[菩提流支, 생몰년 미상], 늑나마제[勒那摩提, 생몰년 미상] 삼장이 공역하였고, 광통율사(光通律師)로 불리던 북위의 명승 혜광(慧光, 468537)을 위시한 북조의 승려들이 앞다투어 이 논에 주석서를 지었다. 혜광의 문하에는 10철이 있었으며 그 중에서 법상(法上, 495580), 승범(僧範, 476555), 도빙(道憑, 488779)이 특히 뛰어났다. 법상은 위(魏)와 제(濟)의 2대에 걸쳐 승통이 되어 200여 만의 승려를 40여 년 동안이나 다스렸고, 고구려의 승려 의연(義淵)이 불법을 물은 것도 이 사람이다. 후대의 기술에 따르면 지론종은 교학적 해석의 차이로 남도파와 북도파로 갈라져 그 이론을 달리했다고 전하며, 이후 화엄종이 흥기하자 흡수되어 사라졌다. 한반도에는 지론종의 교학이 전해진 흔적은 없으나 조선 초엽 승과에서 "『화엄경』과 『십지론』으로 시험을 치렀다"는 기록이 있어 『십지론』을 화엄과 별도로 중하게 여겼다고 볼 수 있다.

지론종의 교학은 열반종의 불성/여래장 사상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당시 새롭게 번역된 『십지경론』 및 인도의 유식 경론들의 영향을 받아 불성과 아리야식[阿梨耶識, ālaya-vijñāna]을 결부시켜 독특한 이해를 낳았다. 특히 후대에 여래장연기(如來藏緣起)라 불리는 여래장이 일체법의 근본이라는 주장을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섭론종주33은 진제(眞諦, 499569) 삼장이 563년에 번역한 무착[無着, Asaṅga, 4세기경]의 주34 3권과 그에 대한 세친의 주석서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 15권에 기반하여 성립되었다. 『섭대승론』은 제목과 같이 ‘ 대승(大乘)의 교리를 포섭하는(攝)' 것을 목적으로 지어진 인도 유가행 주35의 대표 저작 중 하나이다. 진제의 제자였던 혜광(慧曠, 534613)이 진제가 전한 섭론의 뜻을 이었고, 담천(曇遷, 542~607)에 의해 북조에도 섭론종이 전파되었다. 섭론종은 수(隋) 대에 융성하였으나 이후 주36이 등장하게 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신라의 원광이 섭론종을 중국에서 배웠으며 원효 또한 『섭대승론세친석론약기(攝大乘論世親釋論略記)』를 지었다고 전하나 오늘날에는 실전되었다.

섭론종의 교학은 진제 삼장이 번역한 인도 유식학 논서, 그리고 그에 대한 진제 삼장의 해석이 결합되어 독특한 색채를 띄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유식의 3성설인 의타성[依他起性]과 분별성[遍計所執性]과 진실성[圓成實性]에 대해서 의타성과 분별성을 없애는 것을 수행의 요체로 삼는 경식구민(境識俱泯)설, 전6식에 제7식인 아타나식(阿陀那識), 제8식인 아리야식(阿梨耶識), 제9식인 아마라식(阿摩羅識)을 설하는 9식설 등이 있다. 전술한 것처럼 섭론종의 심식설은 지론종에도 전해져 지론사 정영사(淨影寺) 주37이 저술한 주38에서도 9식설을 확인할 수 있다.

법상종(法相宗)

법상종은 유식종(唯識宗), 유가종(瑜伽宗), 자은종(慈恩宗)이라고도 불린다. 현장(玄奘, 주39이 인도에서 돌아와 새롭게 경론을 번역하였는데, 그가 번역한 경론 가운데에는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과 같은 인도 유가행유식파의 전적이 많아 법상종의 교학 또한 유식을 중국의 토양 위에서 재구성한 학문적 체계로 평가 받는다. 현장은 한 평생 번역 사업에 몰두하여 그의 독립 저작이라고 불릴만 한 것은 적다. 다만 현장 법사의 상수제자였던 기(基, 주40와 함께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 Triṃśikā-vijñaptimātratā]』[^41]에 대한 인도 10대 논사의 주석서를 종합, 편집하여 『성유식론(成唯識論)』 10권으로 엮었으니, "유식종"이라는 이름 또한 이 책의 제목에 기인한 것이다. 현장 사후 제자 기가 현장의 학맥을 이어받아 법상종을 홍포하였으니, "자은종"이란 기의 별칭인 자은대사(慈恩大師)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은대사는 현장의 학설을 정리하고 주42,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등을 지어 법상종의 체계를 정비하였고, 후에 자은대사 기의 학문이 법상종의 정통으로 간주되고 있다.

현장 문하에서 수학한 신라 유학승들도 적지 않았다. 현장의 역경사업은 신라에서도 화제가 되었고, 순경(順憬), 신방(神昉), 지인(智仁), 승현(僧玄)은 현장의 역장에 직접 참여하였다. 신라 출신의 원측(圓測, 613~696) 또한 현장 법사 문하에서 수학하고 『유식소초(唯識疏鈔)』를 지어 기가 지은 『성유식론술기』만큼이나 널리 읽혔다고 하나 오늘날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원측의 또다른 저작인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는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고 과거 티벳어로도 번역되어 그 사상적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도 법상종의 교학이 이어졌는데, 『성유식론학기(成唯識論學記)』를 지은 통일신라의 대현[大賢, 8세기]에서부터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성유식론단과(成唯識論單科)』 3권을 지어 유식의 뜻을 밝힌 것처럼 유식 교학을 연구하는 학풍이 고려시대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이능화에 따르면 조선 초까지도 법상종이 존속되었다고 하나 마침내 조선시대에 그 학맥이 끊겼다.
법상종은 아뢰야식을 근본으로 하는 8식이 전변하여 제법이 나타난다고 하고 이를 만법유식(萬法唯識)설, 오직 식만 있을 뿐 외계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유식무경(唯識無境)설 등을 주창하고 인도의 논리학인 인명론(因明論)을 적극 수용하여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학풍을 전개하였다. 또한 성불할 수 없는 중생을 인정하는 오성각별설(五性各別說)을 주장하여 당시 동아시아의 여러 논사들이 이 교리를 비판하였다.

천태종주43은 천태지의(天台智顗, 538597)가 창시한 종파로, 법화종(法華宗)이라고도 불린다. 구마라집이 번역한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삼는 종파이나, 엄밀히 말하면 인도 전래의 경전보다는 지의가 찬술한 주44, 『법화문구(法華文句)』, 주45의 천태종 삼대부(三大部)를 더 중시하는 동아시아 불교의 독자적 종파이다. 천태의 학맥은 장안(章安) 관정(灌頂, 561632)으로 이어져 지속되다 형계(荊溪) 담연(湛然, 711782)에 이르러 중흥기를 맞이하였고, 후에도 명맥이 끊어지지 않다 사명(四命) 지례(知禮, 1018)주46 때에 또 한번 융성하게 되었다. 지례의 시기에 천태종은 산가파(山家派)와 산외파(山外派)로 나뉘어 전개되었다.

한반도에서는 백제의 승려 현광[玄光, 생몰년 미상]이 천태종 3조인 혜사(慧思, 515577)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신라의 법융(法融, 594685)은 담연의 제자였다. 고려의 제관(諦觀, ?~970)은 중국에서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를 지어 당시 중국의 천태종 부흥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대각국사 의천은 송(宋)에서의 유학 생활을 마친 후 고려에 천태종을 정식으로 세워 한반도에도 천태종이 있게 되었으나 조선 초기에 사라지고 말았다.

천태종의 교학은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내세우면서도, 『열반경』, 『대품반야경』, 『중론』, 『대지도론』, 『유가사지론』 등 당대의 여러 경론을 참조하여 독자적인 사상을 주창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현상과 진리의 불이(不二)를 현상에 대한 긍정적 기술로 전환시킨 삼제원융(三諦圓融), 삼천대천세계가 모두 일념(一念)에 있다는 일념삼천(一念三千), 그 사상을 관법(觀法)으로서 실천하는 일심삼관(一心三觀), 부처에게 선, 악이 모두 가지고 있다는 성구설(性俱說) 등을 들 수 있다.

화엄종(華嚴宗)

화엄종은 이름과 같이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47]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종파이다. 전설에 따르면 『대방광불화엄경』은 용수[龍樹, 2세기] 보살이 용궁에서 얻어왔다고 전하며, 동진(東晉)의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 주48가 『화엄경』을 60권으로 역출한 이래 측천무후(則天武后, 주49 때에 실차난타(實叉難陀, 652710)가 80권으로 다시 번역하여 『화엄경』에 구역과 신역이 있게 되었다. 『대방광불화엄경』은 보살의 수행도를 전면으로 내세운 경전으로서 동아시아 불교인들에게 중시되어 왔는데, 이 과정에서 화엄종을 세운 것은 『화엄법계관문(華嚴法界觀門)』을 지은 두순(杜順, 640)주50이었다. 두순의 제자인 지엄(智儼, 주51은 두순의 종지를 이어받아 『화엄경수현기(華嚴經搜玄記)』를 지었고 다시 지엄의 제자인 법장(法藏, 643712)이 『화엄경탐현기(花嚴經探玄記)』를 지어 마침내 화엄종의 교의가 완비되었다. 법장 이후 화엄종의 법통은 『화엄대소(華嚴大疏)』를 지은 청량징관(淸凉澄觀, 주52, 규봉종밀(圭峰宗密, 주53로 이어졌다.

화엄종은 특히 한반도의 불교에서 주요 불교 사상으로 자리잡았다. 원효는 『화엄경소(華嚴經疏)』를 지었으며, 동시대 승려인 의상(義湘, 625702)은 지엄으로부터 화엄교학을 배워 신라에 널리 전파하였다. 의상 이후에도 고려의 균여(均如, 923973), 의천과 같은 화엄논사들이 등장하였으며 선종이 득세한 이후에도 교종(敎宗)의 대표적인 사상으로 중시되면서 조선시대까지 그 연구가 이어졌다.

화엄종의 주요 교학으로는 법계연기(法界緣起), 십현문(十玄門), 육상원융(六相圓融) 등을 들 수 있는데, 특히 연기(緣起)라는 관점에서 현상과 진리가 중첩되어 있음을 설하는 법계연기(法界緣起)는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징관은 이를 주54, 즉 사법계(事法界), 리법계(理法界), 리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로 체계화하였다. 이와는 달리 의상은 연기와 함께 성기(性起)를 주장하여 법장 계통과는 다른 형태의 화엄종을 설파하였다.

율종(律宗)

율종은 불교의 정전체계인 삼장(三藏) 중 율장[律藏, vinaya piṭaka]에 대한 학문, 내지는 그러한 학문을 중시한 집단을 가리킨다. 개인적 규범인 계(戒)와 달리 승가의 운영을 위한 규범인 율(律)은 불교공동체를 유지시키는 주요 기반이 되며, 수행자에게 규범에 맞는 행법은 곧 바른 수행법이라는 점에서 율장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인도의 율장은 부파별로 다양하지만 중국에 전해진 율장은 사율(四律) 즉 『십송율(十誦律)』, 『사분율(四分律)』,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 『오부율(五部律)』과 오론(五論) 즉 『비니모론(毘尼母論)』, 『마득륵가론(摩得勒伽論)』, 『살바다론(薩婆多論)』, 『선견론(善見論)』, 『명료론(明了論)』이다. 이 외에 의정(義淨, 주55이 설일체유부의 율문을 번역하여 동아시아 불교에서도 율학을 발전시킬 토대를 마련하였다.

중국에서 찬술된 율 관련 문헌 중 혜광(慧光, 468537)이 지은 『약소(略疏)』, 법려(法礪, 569635)가 지은 『중소(中疏)』, 지의가 지은 『대소(大疏)』가 삼요소(三要疏)로 중시되다가 도선(道宣, 주56이 율학을 집성하고 체계화하였다. 도선은 종남산에서 활동하였으므로 율종을 주57이라고도 한다. 율종은 원(元) 대까지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한반도의 율종은 백제의 겸익(謙益)을 율종의 시조로 본다. 그는 중인도로 유학을 떠나 율부를 배우고 귀국한 후 범본 율문을 72권으로 번역하였고, 담욱(曇旭), 혜인(惠仁)이 36권의 주석을 지었다. 백제 위덕왕[威德王, 재위 554598] 때에는 일본의 선신니(善信尼) 등이 백제로 와서 십계(十戒)와 육법계(六法戒)를 받아서 돌아갔는데, 이것이 일본 계율의 시초가 된다. 신라에서는 자장(慈藏, 590~658) 율사를 시조로 한다. 자장 또한 도선에게 율학을 배우고 귀국하여 대국통(大國統)의 지위를 맡아 계율을 크게 홍포하였다.

율종의 교학은 주58, 즉 규범으로서의 율이 적용되는 범위나 의미 등에 대한 분석, 실제 승단의 계율 해석에 대한 고찰 등을 말한다. 예를 들어 도선은 계율을 계법(戒法), 계체(戒體), 계행(戒行), 계상(戒相)이라는 네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계법이란 붓다가 제정한 계율 자체를 의미하며, 계체란 계율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수계자가 계를 받아들임으로써 마음속에 간직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계행은 계율의 실천을, 계상이란 율 각각의 조문을 가리키는데, 이러한 체계를 통해서 율장의 의미를 고찰하는 것이다. 이 외에 율종과 관련된 교학으로 대승계(大乘戒)에 대한 연구도 들 수 있다. 대승계는 동아시아 찬술 경전인 『범망경』에 제시된 대승보살의 계율을 말하는데, 대승계 연구는 『범망경』 찬술 직후부터 시작되었으며 한반도에서도 원효, 의적, 대현 등이 대승계 연구를 진행하였다.

정토종(淨土宗)

정토종여래의 뛰어난 방편으로 만들어진 정토(淨土)왕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신앙에 기초한 종파이다. 정토는 붓다와 보살이 사는 청정한 국토이며 번뇌의 구속에서 벗어난 아주 깨끗한 세계로, 대표적인 정토로는 『아미타경』에서 설한 서방정토(西方淨土)가 있다. 서방정토, 혹은 극락정토는 아미타불의 48대원에 의지하여 세워진 세계로, 극락정토에 태어나길 염(念)한 중생은 죽은 후 그곳에서 왕생하여 속히 성불할 수 있다고 한다. 정토왕생을 설하는 경론으로는 『무량수경(無量壽經)』,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아미타경(阿彌陀經)』으로 구성된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이 잘 알려져 있으며 세친이 지은 『무량수경우바제사원생게(無量壽經優波提舍願生偈)』 또한 핵심 논서가 된다. 중국의 정토종은 여산 동림사에서 백련결사(白蓮結社)를 지낸 혜원(慧遠, 주59을 초조로 여긴다. 이후 담란(曇鸞, 주60, 도작(道綽, 주61, 선도(善導, 613681)가 정토종을 이었으며 송대에도 여전히 정토의 가르침이 중국에 널리 유행하였다.

한반도에서는 정토종이 별도로 세워지지는 않았으나 정토신앙 자체는 출 · 재가를 막론하고 널리 신앙되었다. 특히 신라에서는 현재의 몸으로 그대로 정토에 왕생한다는 현신성불(現身成佛) 사상이 설해지고 있어 한반도 불교만의 독특한 정토신앙이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토종은 특히 일본에서 성행하였는데, 정토진종(浄土真宗)을 세운 일본의 신란(親鸞, 1173~1262)은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오직 아미타불의 원력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완전한 타력신앙으로서의 정토를 설하였다. 오늘날 정토종이란 대개 신란의 사상을 가리킨다.

정토왕생을 위한 수행 방법은 염불(念佛) 및 극락세계의 사물과 불보살의 상호를 관상(觀想)하는 것이 주가 되며, 열 찰나에 이르는 염불로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는 십념(十念), "나무아미타불"을 소리내어 외우는 칭명염불(稱名念佛) 등도 설해진다. 또한 정토종에서는 아미타불의 원력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불교의 전통적인 자력수행, 즉 인과에 대한 믿음이나 수행을 통한 노력 등을 평가절하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진언종주62은 밀종(密宗)이라고도 한다. 경, 율, 론에 근거한 주63와는 달리 진언종의 핵심인 밀교(密敎)다라니[陀羅尼, dhāranī]를 중심으로 한다. 인도 불교는 7세기경부터 신비주의적 종교 의례와 주문 등을 받아들여 금강승[金剛乘, vajrayāna][^64]이라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불교가 전개되었다. 716년[당(唐) 개원(開元) 4년] 선무외(善無畏, 주65가 처음으로 밀교의 경전을 번역하였고, 같은 시기에 중국에 들어왔던 인도승 금강지(金剛智, 671741)와 그의 제자 불공(不空, 705~774) 또한 밀교를 크게 홍포하여 개원삼대사(開元三大士)로 일컬어졌다. 밀종은 당말에 이르러 점차적으로 쇠퇴하다 북송대 시호(施護, ?~1017), 법현(法賢, ?~1001)이 밀교의 경론을 번역하면서 잠시 그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다.

한반도에서도 밀교가 전해졌는데 신라의 혜통[惠通, 생몰년 미상. 665년 신라 귀국]이 선무외 삼장에게 인가를 받고 귀국하여 해동 진언종을 열었다.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지은 혜초(慧超, 704~787)도 밀종의 승려였는데, 그는 중국 유학 당시 금강지를 만나 발심하여 인도로 유학을 떠난 후 돌아와 불공 문하의 대표적인 승려 중 하나가 되었다. 혜통 이외에도 신라에는 명랑(明朗), 밀본(密本) 등 밀교 계통 승려들이 활동하였고, 고려 말기에는 『밀교대장(密敎大藏)』 90권이 간행되었다. 조선 초기에 주66에 관한 모든 서적들이 불태워질 때 밀교의 전적 또한 금지되어 진언종의 명맥이 끊기게 되었다.

밀교는 본래 불교에서 금지하고 있었던 주술이나 주67를 토대로 다양한 상징과 주문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주68의 태장계(胎藏界) 만다라, 주69의 금강계(金剛界) 만다라와 같이 신비주의적이고 상징적인 철학과 예술도 여기에 입각하여 발달하였다. 다만 한반도에서 밀승은 그 교학이나 수행의 내용보다는 신통력이나 초능력을 발휘하는 신이승(神異僧)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선종(禪宗)

선종은 선나[禪那, dhyāna] 즉 불교의 참선을 중심으로 전개된 종파로, 동아시아 불교의 주류를 형성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선종의 기원은 6세기 경부터 언급되기 시작하는 능가사(楞伽師), 즉 『능가경(楞伽經)』의 교설을 따르는 교외의 수행자 집단으로 추정되지만, 선종 내부에서는 주70라고 하는 인도의 전설적인 선승을 중국 선종의 초조로 여긴다. 전승에 따르면 석가모니의 제자인 마하가섭(摩訶迦葉)이 주71주72을 부촉받았으니, 이것이 선종의 시작이다. 보리달마는 선종의 28조로 중국에 건너와 주73에게 법을 전하였고, 혜가는 승찬(僧璨)에게, 승찬은 도신(道信)에게, 도신은 홍인(弘忍)에게 전하였다. 홍인 다음 대에 선종의 지파가 나뉘게 되는데 혜능(惠能, 주74을 따르는 남종(南宗)과 신수(神秀, 606706)의 북종(北宗)이 그것이다. 북종은 곧 사라졌으나 남종은 득세하여 남종을 기원으로 한 주75, 주76, 주77, 주78, 주79의 오종(五宗)이 성립되었다.

한반도에 남종선을 전한 것은 도의(道義)이다. 그는 위앙종과 임제종의 제 9대조사인 백장회해(百丈懷海, 749814)로부터 선법을 전수받아 821년부터 신라에서 선법을 펼쳤으나 크게 유행하지는 않았다. 한반도에 선종이 본격적으로 들어선 것은 보조지눌(普照知訥, 11581210)부터이다. 지눌은 선종의 전적인 『육조단경(六祖壇經)』 『대혜서장(大慧書狀)』을 홀로 참구하여 대도를 밝혔고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을 지어 간화선의 우수성을 주장하였으니 이로써 한반도에 조계종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고려 말에도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3), 나옹혜근(懶翁惠勤, 13201376) 등이 선풍을 떨쳤고 조선시대에도 청허휴정(淸虛休靜, 15201604), 부휴선수(浮休善修, 15431615)에서 경허(鏡虛, 1849~1912)에 이르기까지 많은 선승들이 활동하였다.

선종의 교의는 삼처전심(三處傳心)에 연원을 두고 있다. 석가모니는 오랜 수행 끝에 스스로 체득한 깨침의 세계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였다[以心傳心]. 즉 ①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가섭에게 보였고[靈山會上 擧拈花], ②다자탑 앞에서 가섭과 자리를 나누어 앉았으며[多子塔前 分半座], ③열반 후 사라쌍수 아래에서 두 발을 관 밖으로 내 보였다[沙羅雙樹下 槨示雙趺]는 삼처전심(三處傳心)을 통해 선법이 전해진 것이다. 이것을 조사선(祖師禪)이라 하는데, 조사선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불성을 깨달을 때 그대로 부처가 된다는 돈오견성(頓悟見性)을 강조한다. 또한 조사선은 본래성불(本來成佛) 즉 중생이 본래부터 성불해 있다는 것에 근거하여 일상의 생활에서 선법을 실천하고자 한다. 이 때문에 조사선은 깨침을 완성한 여러 조사들이 본래 이루어져 있는 깨침의 세계를 바로 눈앞에 들어 보인 주80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법문에 들어서면 말의 길[語路]과 생각의 길[義路]이 끊어지고 스스로가 본래의 붓다를 명확히 깨달아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자재한 삶을 누리게 된다. 따라서 조사선은 말과 생각이라는 자아의 존재 방식이 허물어져 법계의 참모습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하는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조사선은 ‘반조(返照)’ 즉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비춰보는[返照自心]’, 다시 말해서 ‘자신이 본래 부처라는 사실을 돌이켜 비춰보는’ 선풍을 지향한다.

조사선과 함께 선종의 대표적인 수행 방식인 간화선(看話禪)은 중국의 오조법연(五祖法演, 10241104)과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 그리고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에 의해 체계화되어 가장 발달된 수행법으로 자리를 잡아 왔다. 간화선의 체계를 정립한 대혜는 ‘간화(看話)’ 화두(話頭)를 참구하여 깨달음을 얻는 수행법을 설하였다. 간화선의 핵심인 화두는 의심과 관련되어 있다. 수행자의 마음이 화두에 대한 의정(疑情)으로 가득하여 깊이 참구해 가면 마침내 그 의심덩어리[疑團]가 툭 터지는 경지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외에 굉지정각(宏智正覺, 1091
1157)이 주창한 묵조선(默照禪)도 선종의 대표적인 수행법이다. 묵조선은 마음의 본바탕은 원래부터 뚜렷이 밝고 지극히 신령한 것이지만, 잡된 번뇌로 말미암아 그 본성이 가려져 있는 상태이므로, 번뇌를 쉬고 묵묵히 관찰하면 저절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서 신령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즉 묵조선이란 사려를 완전히 멈추는 수행 방식으로 간화선과 방법론적으로 대립적인 구도를 이루고 있다.

의의와 평가

교학 개념은 그 자체로는 통상적인 학문과 큰 차이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동아시아 지성사에서 스스로의 사상 전통을 근대 학문의 범주로 편입시키고자 했던 고민과 노력이 반영된 용어이다. 이를 통해서 동양 사상은 과거의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학계에서 연구되는 현대의 학문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三國佛法傳通緣起』[東大寺 凝然 述]
『大正新脩大藏經』(東京:大正一切經刊行會, 1924~1934)

단행본

이능화, 『역주 조선불교통사 3』(동국대학교 출판부, 2010)
慈怡, 『佛光大辭典』(高雄〔臺灣〕:佛光山宗務委員會, 1988)

논문

阿部宏貴, 「近代日本の仏教教団における「教学」」(『現代密教』 26, 2015)

인터넷 자료

주석
주1

‘춘추 전국 시대’를 달리 이르는 말. 진나라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 이전의 시대라는 뜻이다. 우리말샘

주2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1130~1200). 자는 원회(元晦)·중회(仲晦). 호는 회암(晦庵)·회옹(晦翁)·운곡산인(雲谷山人)·둔옹(遯翁). 도학(道學)과 이학(理學)을 합친 이른바 송학(宋學)을 집대성하였다. ‘주자’라고 높여 이르며, 학문을 주자학이라고 한다. 주요 저서에 ≪시전≫, ≪사서집주(四書集註)≫, ≪근사록≫, ≪자치통감강목≫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3

중국 송나라 때에, 주자와 그 제자인 여조겸이 함께 편찬한 책. 주무숙(周茂叔), 정명도(程明道), 정이천(程伊川), 장재(張載) 등의 저서나 어록에서 일상 수양에 긴요한 장구(章句) 622조목을 추려서 14부로 분류하였다. 14권. 우리말샘

주4

삼장(三藏)의 하나. 불법(佛法)을 논한 책으로, 부처가 스스로 문답한 것과 여러 제자와 보살이 해석하여 논변(論辯)한 것을 모아 만들었다. 우리말샘

주5

불전 가운데 경전을 해설하거나 주석한 논(論)을 이르는 말. 교법에 관한 연구라는 뜻이다. 우리말샘

주6

불교의 소승론부에 속하는 불서(佛書). 불멸 후 400년경에 카니슈카왕이 500성자를 모아 삼장(三藏)을 결집시켰을 때에 가다연니자의 발지론(發智論)을 주석한 책으로 중국 당나라 현장(玄奘)의 한역(漢譯)이 있다. 200권. 우리말샘

주7

소승 불교에 속한 한 파. 인도의 승려 바수반두가 저서 ≪구사론≫을 근본 경전으로 삼아 세웠다. 우리말샘

주8

5세기경의 인도의 승려(320?~400?). 21대 조사(祖師)로, 객관적·비판적·계몽적 학풍을 띠었다. 처음 소승(小乘)에 들어가 대비바사론을 연구하다가, 뒤에 형 무착(無着)을 따라 유가행파로 옮겼다. 저서에 ≪법화경론(法華經論)≫, ≪무량수경론≫, ≪대승성업론(大乘成業論)≫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9

5세기 무렵 인도의 승려 바수반두가 저술한 불교 경전. 중국 당나라의 현장(玄奘)이 한역하였으며, 소승 불교의 기초적 논부(論部) 가운데 하나로 중시되어 왔다. 30권. 우리말샘

주10

소승 이십부(二十部)의 하나인 상좌부의 한 파. 삼장(三藏) 가운데서 오직 경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까닭에 이렇게 이른다. 우리말샘

주11

5세기 무렵 인도의 승려 바수반두가 저술한 불교 경전. 정식 이름은 아비달마구사론이다. 중국 당나라의 현장(玄奘)이 한역하였으며, 소승 불교의 기초적 논부(論部) 가운데 하나로 중시되어 왔다. 30권. 우리말샘

주12

인도의 브라만 출신의 승려(499~569). 4대 한역자(漢譯者)의 한 사람으로 경론(經論)을 한역하였다. 번역한 책에 ≪섭대승론≫, ≪중변분별론(中邊分別論)≫, ≪대승기신론≫, ≪금광명경≫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13

책의 끝에 본문 내용의 대강(大綱)이나 간행 경위에 관한 사항을 간략하게 적은 글. 우리말샘

주14

중국 당나라의 승려(602~664). 속성은 진(陳). 중국 법상종 및 구사종의 시조로, 태종의 명에 따라 대반야경(大般若經) 등 많은 불전을 번역하였다. 저서에 견문기 ≪대당 서역기≫ 12권이 전한다. 우리말샘

주15

모든 거짓을 버리고 참된 지혜로부터 열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종지(宗旨)로 하는 종파. 인도의 하리발마(訶梨跋摩)가 지은 성실론(成實論)을 근본 경전으로 삼는다. 우리말샘

주16

중국 오호 십육국 때의 인도의 승려(344~413). 수많은 불전을 한역(漢譯)하여 중국 불교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번역한 책에 ≪법화경≫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17

번뇌의 얽매임에서 풀리고 미혹의 괴로움에서 벗어남. 본디 열반과 같이 불교의 궁극적인 실천 목적이다. 유위(有爲) 해탈, 무위(無爲) 해탈, 성정(性淨) 해탈, 장진(障盡) 해탈 따위로 나누어진다. 우리말샘

주18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진리. 여러 가지 차별이 있는 현실 생활의 이치를 이른다. 우리말샘

주19

중국 수나라의 승려(549~623). 공관(空觀) 불교의 권위자로 삼론종을 대성하였다. 저서에 ≪삼론현의≫, ≪대승현론(大乘玄論)≫, ≪중론소(中論疏)≫, ≪백론소(百論疏)≫, ≪법화의기(法華義記)≫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20

불도를 닦아 이르는 부처의 지위. 우리말샘

주21

무소득 중도(無所得中道), 실상(實相)의 정관(正觀)을 투철하게 설파한 대승 불교의 근본 성전(聖典). 용수보살의 ‘중론송(中論頌)’ 27품 446게(偈)와 청목(靑目)의 주석을 구마라습이 한역(漢譯)하였다. 전 4권. 우리말샘

주22

삼론(三論)의 하나. 용수보살이 지은 책이다. 모든 것이 공(空)하다는 것을 열두 가지 면으로 나누어 자세히 해설하였다. 우리말샘

주23

삼론(三論)의 하나. 용수보살의 제자인 제바(提婆)가 지은 책이다. 외도(外道)의 좋지 못함을 말하고, 대승 불교와 소승 불교의 옳음을 설파하였다. 우리말샘

주24

나가르주나가 산스크리트 원전의 ≪대품반야경≫에 대하여 주석한 책. 대승 불교의 백과사전적 저작이다. 우리말샘

주25

남인도의 불교가(150?~250?). 중관학파의 창시자이다. 공(空)의 사상을 기초로 하여 대승 불교를 널리 알렸으며, 팔종(八宗)의 조사(祖師)로 불린다. 저서에 ≪중론송(中論頌)≫, ≪십이문론≫, ≪대지도론≫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26

인도 대승 불교의 2대 학파의 하나. 파조(派祖)인 용수(龍樹)의 중관론을 근본으로 하여 공(空)을 교의(敎義)의 중심으로 한다. 중국 등지에 전하여져 삼론종의 바탕이 되었다. 우리말샘

주27

진제(眞諦)와 속제(俗諦)를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28

제일의의 진리. 열반, 진여, 실상, 중도 따위의 진리를 이른다. 우리말샘

주29

삼제(三諦)의 하나.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진리로, 여러 가지 차별이 있는 현실 생활의 이치를 이른다. 우리말샘

주30

중국 수나라의 길장(吉藏)이 삼론종의 근본 경전인 ≪중관론≫, ≪십이문론≫, ≪백론≫의 대요(大要)를 적은 책. 불교사(佛敎史)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2권. 우리말샘

주31

대승 불교의 대반열반경을 중심으로 하는 종파. 열반을 모든 중생이 가진 불성의 증득(證得)으로 해석한다. 천태종, 법상종, 화엄종 따위의 압력으로 소멸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무열왕 때에 보덕 화상(普德和尙)이 개종(開宗)하였다. 우리말샘

주32

중국 수나라 때에, 저장성(浙江省) 톈타이산(天台山)에서 지의(智顗)가 세운 대승 불교의 한 파. 법화경과 용수보살의 중론(中論)을 근본 교의(敎義)로 하고 선정(禪定)과 지혜의 조화를 종지(宗旨)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숙종 2년(1097)에 대각 국사가 국청사에서 처음으로 천태교를 개강함으로써 성립되었다. 우리말샘

주33

섭대승론에 의거하여 성립된 중국 불교의 종파. 법상종이 일어나면서 쇠퇴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신라 때에 원광 법사에 의하여 전해졌다. 우리말샘

주34

4세기 무렵에 인도의 아상가(Asaga)가 대승 불교를 통일하기 위하여 지은 불서(佛書). 10가지 의리로써 대승(大乘)의 입장을 설명한 유식론적 서적으로 유식의 사상이 완전히 조직되었다. 우리말샘

주35

인도에서 성하였던 대승 불교의 한 파. 법상종이 이를 계승하였다. 우리말샘

주36

유식론을 근거로 하여 세워진 종파. 우주 만물의 본체보다 현상을 세밀하게 분류하고 분석하는 입장을 취하여 온갖 만유는 오직 식(識)이 변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파악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경덕왕 때 진표가 개창하였다. 우리말샘

주37

중국 수나라의 승려(523~592). 속성은 이(李). 지론종(地論宗) 남도파(南道派)에 속하며 해석학의 제일인자로, 578년에 북주 무제의 불교 금지령에 적극 반대하여 불법을 지켰다. 저서에 ≪대승의장≫ 28권이 있다. 우리말샘

주38

중국 수나라의 혜원이 지은 일종의 불교 용어 사전. 내용을 교법(敎法), 의법(義法), 염법(染法), 정법(淨法), 잡법(雜法)의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다시 222개 부문으로 나누어 자세히 설명하였다. 우리말샘

주39

중국 당나라의 승려(602~664). 속성은 진(陳). 중국 법상종 및 구사종의 시조로, 태종의 명에 따라 대반야경(大般若經) 등 많은 불전을 번역하였다. 저서에 견문기 ≪대당 서역기≫ 12권이 전한다. 우리말샘

주40

중국 당나라의 승려(632~682). 현장(玄奘)의 제자가 되어 산스크리트와 불교의 경전과 논(論), 인명학(因明學)을 배우고, 법상종을 만들었다. 저서에 ≪성유식논술기(成唯識論述記)≫, ≪대승법원의림장≫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41

유식설(唯識說)의 대강을 30편의 게송(偈頌)에 담은 책. 인도의 승려 바수반두가 지은 것으로서 중국 당나라 현장이 번역한 책이 있다. 우리말샘

주42

중국 당나라 때에 규기가 지은 불교서. 유가론에 의하여 법상 유식(法相唯識)의 교학을 정리한 것이다. 우리말샘

주43

중국 수나라 때에, 저장성(浙江省) 톈타이산(天台山)에서 지의(智顗)가 세운 대승 불교의 한 파. 법화경과 용수보살의 중론(中論)을 근본 교의(敎義)로 하고 선정(禪定)과 지혜의 조화를 종지(宗旨)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숙종 2년(1097)에 대각 국사가 국청사에서 처음으로 천태교를 개강함으로써 성립되었다. 우리말샘

주44

개황 13년(593)에 중국 수나라의 승려이며 천태종의 창시자인 지의(智顗)가 지은 책. 법화경의 뜻을 5자로 된 경제(經題)인 묘법연화경의 해석을 통하여 밝히고자 하였다. 10권. 우리말샘

주45

천태종에서 법화경을 주석한 책. 3대 주석서의 하나로, 중국 수나라 개황(開皇) 14년(594)에 형주(荊州) 옥천사(玉泉寺)에서 지의(智顗) 대사가 강설한 것을 제자 관정(灌頂)이 필기한 책이다. 20권. 우리말샘

주46

중국 북송의 승려(960~1028). 법지존자(法智尊者)·사명존자(四明尊者)·사명대법사(四明大法師)라고도 부른다. 천태종의 제17조(祖)이며 산가파(山家派)의 논객으로, 산외파(山外派)와의 논쟁을 통하여 송대 천태종의 교학(敎學)을 다졌다. 저서에 ≪십의서(十義書)≫, ≪십불이문지요초(十不二門指要鈔)≫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47

‘화엄경’의 정식 이름. 부처가 광대무변하게 모든 중생과 사물을 포함하고 있어, 마치 향기 진한 꽃으로 장식한 것과 같다는 뜻으로 이렇게 이른다. 우리말샘

주48

중국에서 활약한 북인도 출신의 승려(359~429). 구마라습(鳩摩羅什), 혜원(慧遠), 법현(法顯) 등과 친교를 맺었고, 경전을 번역하는 사람으로 유명하였다. 한역(漢譯) ≪화엄경≫ 60권이 있다. 우리말샘

주49

중국 당나라 고종의 황후(624?~705). 성은 무(武). 이름은 조(曌). 중국 역사에서 유일한 여제(女帝)로 고종을 대신하여 실권을 쥐고, 두 아들을 차례로 제왕의 자리에 오르게 하였으며, 스스로 제왕의 자리에 올라 국호를 주(周)로 고치고 성신 황제(聖神皇帝)라 칭하였다. 우리말샘

주50

중국 당나라의 승려(557~640). 법명(法名)은 법순(法順)·제심존자(帝心尊者). 화엄종의 시조로, 화엄 교학의 기초를 확립하였으며, 저서에 ≪법계관문(法界觀門)≫, ≪오교지관(五敎止觀)≫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51

중국 수나라 말기에서 당나라 초기의 승려(602~668). 속성(俗姓)은 조(趙). 존호는 지상대사(至相大師). 화엄종의 제2조로, 육상원융·십현 연기의 뜻을 설교하여 화엄종을 널리 알렸다. 저서에 ≪수현기(搜玄記)≫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52

중국 당나라의 승려(738~839). 속성은 하후(夏候). 존칭은 청량 대사(淸涼大師)·화엄 보살. 화엄종의 제4대조로, 법장(法藏)의 화엄 교학을 부흥하였다. 저서에 ≪화엄경소≫ 60권, ≪수소연의초(隨疏演義鈔)≫ 90권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53

중국 당나라의 승려(780~840). 화엄종의 제5조로 규봉 대사(圭峯大師)라 칭하였다. 교선 일치(敎禪一致)의 입장을 취하였으며, 저서에 ≪원인론(原人論)≫, ≪원각경소(圓覺經疏)≫, ≪우란분경소(盂蘭盆經疏)≫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54

모든 존재의 세계를 네 가지 영역으로 분류한 화엄종의 우주관. 현상의 세계인 사법계(事法界), 진리의 세계인 이법계(理法界), 현상과 진리가 서로 방해함이 없이 교류·융합하는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 현상과 현상이 서로 방해함이 없이 교류·융합하는 세계인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이다. 우리말샘

주55

중국 당나라의 승려(635~713). 671년 인도로 건너가 날란다에서 불교의 오의(奧義)를 닦고, 695년에 범본 불전(梵本佛典) 406부를 가지고 돌아왔다. 화엄경, 유식(唯識), 밀교(密敎) 따위의 불전을 번역하였다. 저서로 ≪남해기귀내법전(南海寄歸內法傳)≫, ≪대당서역구법고승전≫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56

중국 당나라 때의 승려(596~667). 남산종(南山宗)의 창시자로 각지에서 율(律)을 설법하고, 경전 한역 사업에 참여하였다. 저서에 ≪사분율행사초(四分律行事鈔)≫, ≪속고승전(續高僧傳)≫, ≪광홍명집(廣弘明集)≫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57

중국 당나라의 도선 율사(道宣律師)가 창시한 종파. 우리나라에는 신라 선덕 여왕 때 자장 율사(慈藏律師)가 개종(開宗)하였다. 우리말샘

주58

삼업(三業)의 과오를 제지하고 실천·수행하여 증과에 이르게 하는 율법(律法). 우리말샘

주59

중국 동진의 승려(334~416). 속성은 가(賈). 백련사라는 염불 결사를 창설하여 중국 정토종의 개조가 되었다. 저서에 ≪대지도론요략(大智度論要略)≫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60

중국 남북조 시대 양나라 정토교의 선구자(476?~542). 보리 유지(菩提流支)로부터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을 받아 정토교에 귀의하였다. 저서에 ≪정토왕생론주(淨土往生論註)≫, ≪찬아미타불게(讚阿彌陀佛偈)≫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61

중국 수나라·당나라 때의 승려(562~645). 중국 정토교의 5조(祖) 중 제2조이며, 진종(眞宗)에서는 7고승 가운데 서열이 네 번째이다. 저서에 ≪안락집(安樂集)≫이 있다. 우리말샘

주62

대일삼부경 따위에 의거하여 양계를 세워, 다라니의 가지(加持)의 힘으로 자기 몸이 곧 부처가 됨을 종지(宗旨)로 하는 종파. 인도에서 일어나 중국 당나라에 전해져, 금강지의 제자 불공(不空)에 이르러 대성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신라 문무왕 4년(664)에, 혜통(惠通)이 당나라 선무외 삼장(三藏)으로부터 인결(印訣)을 받아 와 연 것으로 전한다. 우리말샘

주63

석가모니가 때와 장소에 따라 알기 쉽게 설명한 설법을 따르는 종파. 천태종, 화엄종, 정토종 따위이다. 우리말샘

주64

7세기 후반 인도에서 성립한 대승 불교의 한 파. 대일경과 금강정경에 의하여 일어났다. 우리말샘

주65

인도의 학승(學僧)(637~735). 13세에 왕이 되었으나 뒤에 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승려가 되었다. 후에 당나라 장안에 가서 밀교(密敎)의 신전과 경서의 번역에 힘썼다. 우리말샘

주66

미래의 길흉화복의 조짐이나 앞일에 대한 예언. 또는 그런 술수의 책. 우리말샘

주67

비밀스러운 종교 의식. 우리말샘

주68

7세기 중엽에 인도의 슈바카라심하가 당나라에서 번역한 ≪진언삼부경≫의 하나. 제1권부터 제6권까지는 진언밀교의 교리와 실천 방법에 대하여 쓰고, 제7권에는 공양법을 설명하였다. 이 경전에 설명한 법을 태장법(胎藏法)이라고 한다. 7권. 우리말샘

주69

밀교에서 의지하는 삼부 비밀경의 하나. 부처, 보살의 경지로 들어가기 위한 법을 설한 것이다. 우리말샘

주70

중국 남북조 시대의 양나라 승려(?~534?). 중국 선종의 시조로, 반야다라에게 불법을 배워 대승선(大乘禪)을 제창하였다. 우리말샘

주71

선종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말이나 글에 의하지 않고 바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여 진리를 깨닫게 하는 법. 우리말샘

주72

이심전심으로 전하여지는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이르는 말. 진리를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으로 깨달은 비밀의 법이라는 뜻이다. 우리말샘

주73

중국 남북조 시대의 승려(487~593). 속성은 희(姬). 초명은 신광(神光). 선종(禪宗)의 개조(開祖)인 달마의 제자가 되어 6년간 수행 끝에 달마의 선법을 계승하여 포교하였다. 우리말샘

주74

중국 당나라의 승려(638~713). 속성은 노(盧). 시호는 대감 선사(大鑑禪士). 육조 대사(六祖大師)라고도 한다. 중국 선종의 제6조로서, 남선종(南禪宗)이라는 파를 형성하였으며, 그의 설법을 기록한 ≪육조단경(六祖壇經)≫이 전한다. 우리말샘

주75

중국 당나라 때 임제의 종지(宗旨)를 근본으로 하여 일어난 종파. 우리말샘

주76

중국의 육조(六祖) 혜능(慧能)이 조계(曹溪)에서 법을 전하여 일어난 종파. 제2조 조산(曹山)과 제1조 동산(洞山)의 이름에서 종명을 삼았다고 한다. 우리말샘

주77

중국 당나라 말기의 선승(禪僧)인 운문문언의 종지(宗旨)를 바탕으로 하여 일어난 종파. 우리말샘

주78

중국 당나라의 위산영우(潙山靈祐)를 창시자로 하고, 앙산혜적(仰山慧寂)이 대성한 종파. 송나라 때 쇠퇴하여 임제종에 합쳐졌다. 우리말샘

주79

중국의 문익 선사의 종지(宗旨)를 바탕으로 하여 일어난 종파. 우리나라에는 10세기 무렵에 지종에 의하여 전래되었다. 화엄종과 선종을 융합한 것으로 화엄종이 왕성했던 고려 초기에도 수용되었다. 우리말샘

주80

중생을 열반에 들게 하는 문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교법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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