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는 승려가 아니라 재가에서 불도를 닦는 사람이다. 범어 꿀라빠띠(kulapati), 그르하빠띠(G?hapati)를 옮긴 것이다. 장자(長者)로 번역한다. 재가자란 세속의 가정을 떠나지 않고 붓다의 법을 믿고 따르는 신행자이다. 중국 혜원의 『유마경의기』에 자산을 널리 쌓아두고 재산과 함께 사는 선비, 도를 닦으며 집안에 사는 도사를 거사라고 하였다. 후세에는 남자가 죽은 뒤 그의 법명 아래 붙이는 칭호로도 쓰고 있다. 송대 이후 일반 사대부들도 썼으며 현재는 일반인도 쓴다.
재가자는 ‘집에 사는 이’(gŗhastha), ‘집을 소유하고 사는 이’(gŗhin), ‘집을 돌보는 이’(agārika, āgārika)를 뜻한다. 그는 세속적인 가정을 떠나지 않고 붓다의 법을 믿고 따르는 신행자이다. 재가 남자는 우파사카(Upāsakā, 優婆塞), 즉 청신사(淸信士) 혹은 선남자(kulaputra), 근사남(近事男)으로 호칭되었다. 재가 여자는 우파시카(Upāsika, 優婆夷), 즉 청신녀(淸信女) 혹은 선여인(kuladuhitŗ), 근사녀(近事女)로 호명되었다. 또 좋은 집안의 남성 불자를 족성자(族姓子), 여성 불자를 족성녀(族姓女)라고도 불렀다.
『잡아함경』에는 재가불자란 “집에 머물며 청정한 삶을 살며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삼보에 귀의하여 우바새가 되겠습니다. 이에 저를 증명하고 알아주십시오”라고 다짐한 사람으로 기술되어 있다. 『증일아함경』에서 우바새들 가운데 지혜 제일인 질다 장자, 신묘한 덕이 뛰어난 건제아람, 외도를 항복받는 굴다 장자, 깊은 법을 잘 설명하는 우파굴 장자, 늘 앉아 참선하는 하타카 알라바카, 이론으로 이길 수 없는 비구(毘俱) 바라문, 게송을 잘 짓는 우팔리 장자 등을 거명하고 있다. 우바새뿐만 아니라 우바이의 경우도 성인에 올랐다. 처음으로 도를 깨달은 난타바라, 지혜 제일의 구수다라, 언제나 좌선하기를 좋아하는 수비야, 설법을 잘 하는 앙갈사, 외도를 항복받는 바수타, 여러 가지로 의론하는 바라타, 항상 욕됨을 참는 무우(無憂), 남을 가르치기를 좋아하는 시리(尸利) 부인 등의 우바이를 언급하고 있다.
당시 불교를 믿는 재가자는 농촌보다는 도시에 거주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경전에서 거론되는 재가자의 유형은 왕과 왕족, 대신과 귀족, 지방 관리, 촌장, 장군, 바라문, 사제, 교리학자, 수학자, 의사, 지주, 거상(巨商), 대상(隊商), 고리대금업자, 고급 유녀(遊女) 등과 같이 다양했다. 이들은 정치적 · 사회적 · 경제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들이다. 한편 이들 중에는 금속 세공업자, 이발사, 농부, 코끼리 조련사, 거지, 범죄인 등과 같이 하층의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 중 무역업에 종사하는 거상 · 대상 등의 상인 계층들은 당시의 정치적 · 사회적 · 경제적 상황과 맞물려 불교 교단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들은 경제적 · 사회적 안정에 더해 정신적인 충만과 심리적인 안녕을 갈망하였다. 이들은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승한 청신사와 청신녀로서 불교의 신행과 증득에 대해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 이 때문에 대승불교가 일어나자 이들은 불탑신앙을 주도하면서 새로운 주역으로 활약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불교에서 거사는 늘 예부터 장자라고 일컬어온 존재와 혼동하여 왔다. 중국 혜원의 『유마경의기』 권1 말에 보면, 거사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자산을 널리 쌓아두고 재산과 함께 사는 선비를 거사라고 하였다. 둘째는 재가에서 도를 닦으며 집안에 사는 도사를 거사라고 하였다. 후자는 곧 불교의 거사로서 인도의 아난타핀디카[급고독(給孤獨)]장자, 욱가(郁伽)장자, 유마(維摩) · 현호(賢護)거사 등 늘 불도를 닦는 재가 보살거사가 대표적이다. 중국 양나라 시대의 부대사(傅大士), 주옹(周翁)거사, 북위의 유겸지(劉謙之), 당대의 이통현(李通玄), 방온(龐蘊)거사, 왕유(王維)거사, 청대민국초의 양문회(楊文會), 구양경무(歐陽境無)거사, 한국 고구려의 왕고덕(王高德)거사, 신라시대의 소성거사:元曉, 부설거사 [陳光世], 고려시대의 청평거사:李資玄, 백운거사:李奎報, 동안거사:李承休, 조선시대의 효령대군:李補, 월창거사:金大鉉, 보월거사[劉聖鍾], 침산(枕山)거사:이동환, 근대의 상현거사:李能和, 백봉거사:金基秋, 종달거사[李喜益], 효성거사:趙明基, 불화거사[이재병], 이한상거사, 불연거사:李箕泳, 병고거사:高翊晉, 법기거사[姜丁鎭] 등도 불도에 능통한 재가 거사였다. 대개 집에 머물며 도를 닦는 남자를 거사라고 하고, 또한 집에 머물며 도를 닦는 여자도 거사(居士)라고 하였다.
하지만 『승만경』의 주인공인 승만부인(勝鬘夫人) 이래 여성 재가 불자는 승만부인(僧滿夫人, 진평왕 후비), 덕만부인(德曼夫人, 선덕여왕), 승만부인(勝鬘夫人, 진덕여왕), 육영수부인, 법련화부인(법련사 시주자), 길상화부인(길상사 시주자), 김미희부인 등과 같이 ‘부인’(夫人)이라고 불렀다. ‘부인’은 남자의 정인 혹은 남의 아내의 높임말이라는 뜻만이 아니었다. 관음보살의 경우처럼 여성 불자들을 흔히 보살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보살은 여성성을 머금은 주체로서 자주 나타날 뿐이다. 또한 보살은 ‘보살이 되라’는 권유 또는 ‘보살이 되겠다’는 다짐의 의미에서 일컬었을 뿐 여성 불자들만 보살이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남성 불자들도 얼마든지 보살이 될 수 있었다.
중국 『예기(禮記)』 「옥조편(玉藻篇)」에서는 “도와 예가 있는 처사를 거사라 하였다.” 오나라 증능개의 『재만록(齋漫錄)』에서는 “거사라는 이름은 상나라와 주나라 때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하였다. 『한비자』에서는 “태공이 제나라에 봉해졌을 때 동해 가에 거사 임율(任矞)과 화사(華士)가 있었는데 이들은 ”천자의 신하 노릇하지 않고 제후와 벗하지 않고 밭을 갈아 먹고 땅을 파서 마신다고 하였다. 이들은 모두 자못 도와 예가 있었지만 벼슬자리를 구하지 않은 처사들”이었다고 일렀다. 그 뒤 중국과 일본에서는 대부분 경장과 율전에서 설한 본의에 의거하지 않고 널리 일컫기를 도가 있는 처사를 거사라고 하였다.
정리해 보면 거사는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이자 집에 머무르면서 불도에 뜻을 둔 이를 가리켰다. ①인도의 네 가지 계급 중 공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바이샤 종족의 부자를 일컬었다. ②중국에서는 학식과 도덕이 높지만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가리켰다. ③출가하지 않고 가정에 있으면서 불문에 귀의한 남자를 가리키며, 여자는 여거사(如居士)라고 하였다. ④후세에는 남자가 죽은 뒤 그의 법명 아래 붙이는 칭호로도 쓰고 있다. 장군(將軍)이나 귀인(貴人)은 대거사(大居士), 사인(士人)은 거사(居士)라고 하였으며, 송대 이후에는 일반 사대부들도 자칭해서 썼으며 현재는 일반인도 쓴다.
한편 유교에서 일컫는 산림처사(山林處士)와 달리 불교에서는 출가했다 환속한 이를 ‘처사’라고 부른다. 이처럼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거사와 처사는 다르나 일부에서는 처사와 거사를 함께 쓰기도 한다. 하지만 부호를 장자라고 하는 것처럼 재가불자는 거사라 해야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