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남산 국사곡(國師谷)에 있었던 절이다. 한때는 실제사(實際寺)라고도 불렀다. 경덕왕 때(742~765 재위) 실제사의 승려 영여(迎如)는 이 절에 살았다. 그는 씨족 계통과 성씨가 자세하지 않았으나 덕과 행이 모두 높았다. 하루는 경덕왕이 그를 맞아 공양을 올리려고 사자를 보내어 불렀다. 영여는 대궐 안으로 들어가 재를 마치고는 돌아가려 하였다. 이에 왕은 사자로 하여금 그를 절에까지 모시고 가도록 했다. 그는 절문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숨어버려 있는 곳을 알 수가 없었다. 사자가 와서 왕에게 아뢰자 왕은 이상하게 여기고 그를 국사(國師)에 추봉하였다. 그 뒤로 영여는 다시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고려 후기의 일연이 찬술한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지금도 이 절을 국사방이라고 일컫는다”고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