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는 불자가 귀의해야 한다는 불보, 법보, 승보의 3가지를 가리킨다. 석가모니 자신이 불보이고, 부처님의 설한 가르침이 법보이며, 부처의 제자로서의 비구, 비구니의 출가 교단이 승보이다. 삼보는 현전삼보(現前三寶), 주지삼보(住持三寶), 일체삼보(一切三寶)로 나누기도 한다. 현전삼보는 부처가 생존했던 당시의 삼보를 뜻한다. 주지삼보는 부처가 멸한 이후의 각 시대의 삼보를 말한다. 일체삼보는 삼보를 철학이론상 셋이 아니라 일체라고 하는 해석이다. 불교도는 삼보에 귀의함으로써 시작되며 최후까지 삼보에 귀의해야 한다고 할 만큼 대승과 소승 모두 삼보를 중요하게 여겼다.
불교를 달리 불 · 법 · 승 삼보라 할 수 있다. 불교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삼보가 갖추어져 있어야 하고, 불교도는 삼보에 귀의함으로써 시작되며 최후까지 삼보에 귀의해야만 한다. 따라서, 삼보에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에게는 불가결한 요건이며, 대승(大乘)과 소승(小乘)을 막론하고 삼보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삼보의 성립은 석가모니불의 성도(成道)로부터 시작된다. 석가는 35세가 되던 해 12월 8일의 이른 새벽에 대각(大覺)을 이루고,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근원을 단멸(斷滅)하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이것은 어떠한 번뇌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정(絶對寂靜)인 열반의 세계를 실현한 것이며, 정각(正覺)을 얻어 눈을 뜨게 된 자, 즉 불(佛)이 되었다는 자기혁신의 일대 전환으로써 불보가 성립되었다.
성도한 뒤 석가모니는 한동안 스스로 깨달음의 경지를 즐기고 있었으나, 얼마 뒤 이러한 법락(法樂)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기 위하여 지난날 같이 고행(苦行)을 하던 다섯 사람의 수행자를 찾아 베나레스 교외의 녹야원(鹿野苑)으로 갔다. 이때 석가모니는 쾌락과 금욕의 양극단을 배재하는 중도(中道)와 사제(四諦) · 팔정도(八定道) · 십이연기(十二緣起) 등의 법(法)을 설하였다. 이것이 법보이다.
이 설법을 듣고 최초의 제자인 5비구(比丘)가 나타나게 되어 승보를 이룬다.
삼보는 현전삼보(現前三寶) · 주지삼보(住持三寶) · 일체삼보(一切三寶)의 세 종류로 나누기도 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이들을 모두 채택하고 있다. 현전삼보는 별상삼보(別相三寶)라고도 하며, 부처의 생존 당시의 삼보를 뜻한다. 석가모니 자신이 불보이고, 부처님의 설한 가르침이 법보이며, 부처의 제자로서의 비구(比丘) · 비구니(比丘尼)의 출가교단(出家敎團)이 승보이다.
주지삼보는 불멸(佛滅) 후의 각 시대를 통해 그 시대의 불교에서 삼보라 불렀던 것으로, 불멸 후의 시대에 불보로 숭배된 것은 금속이나 나무 · 돌 등으로 만든 불상 또는 종이 등에 그려진 불상 등이다. 법보는 나뭇잎 · 나무껍질 · 직물 · 종이 등에 쓰인 경전 또는 인쇄된 경권서책(經卷書冊) 등의 불교성전이며, 승보는 비구 · 비구니 등으로 구성된 출가교단이 되었다.
이 주지삼보에는 특수한 불보가 있다. 불멸 후 불상이 제작되기 이전에 불보로서 숭배된 것으로는 석가모니의 4대기념처인 탄생지 룸비니동산과 성도지(聖道地) 부다가야, 최초의 설법지 녹야원, 열반지(涅槃地) 쿠시나가라 등과 불족적(佛足蹟) · 보리수(菩提樹) · 법륜(法輪) · 불탑(佛塔) 등이 그 상징으로서 경배되었다.
그리고 부처의 사리(舍利)가 불보로서 참배됨에 따라 여러 지방에 불사리탑이 건립되어, 불탑숭배(佛塔崇拜)가 행하여졌다. 부처의 유신(遺身) 중 불치(佛齒)와 유발(遺髮) 등도 불보의 일종으로 보았다.
일체삼보는 동체삼보(同體三寶)라고도 하는데, 삼보를 철학이론상으로 보아 셋을 별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일체라고 하는 해석이다. 법은 부처에 의해 발견되고 실시됨으로써 비로소 교법(敎法)이 되는 것이고, 부처는 법을 발견하고 법을 깨닫고 법을 터득함으로써 부처가 된 것이므로, 법을 떠나서는 부처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승려는 부처를 대신하여 부처의 대리자로서 민중에게 법을 설하는 자이므로, 불과 법을 떠나서는 승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부처와 법은 승려에 의해 그 가치와 의의가 나타나고, 승려로 인해 부처와 법의 기능이 나타나는 것이므로, 승려는 부처와 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러한 관계 속에 삼보가 있기 때문에 이를 일체삼보라 한다.
보통, 삼보라 할 때는 이 세 종류 중 역사상의 현전삼보를 가리킨다. 이 현전삼보에 의해 삼보를 정의할 때 불(佛)은 불교의 개조(開祖)이며 교주로서의 석가모니불이다. 그러나 역사상의 석가뿐 아니라 법신으로서의 석가모니불, 정토교(淨土敎)의 아미타불(阿彌陀佛), 밀교(密敎)의 대일여래(大日如來) 등, 교법의 설주(說主)이고 구제자이며 신도의 귀의 대상이 되는 모든 부처님을 불로 보고 있다.
법은 중생들로 하여금 현실의 불안과 고뇌에서 벗어나 해탈의 이상경에 도달하게 하는 가르침이며, 사회 전체를 평화롭고 행복한 세계로 인도하는 가르침이다. 즉, 법으로써 불교의 세계관과 인생관이 설해지고 사회와 인생은 어떻게 있으며 어떻게 있어야 하는가가 설해지며, 거기서부터 불교의 신앙과 실천이 전개된다. 이와 같은 교법을 총칭하여 법보라 한다. 승이란 부처를 대신하여 민중을 교화, 지도하는 출가자의 단체이다.
그러나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는 삼보가 신봉하고 따라야 할 객체적 대상이 아니라, 주체화(主體化) 그 자체라고 보았다.
그는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에서 “중생의 육근(六根)은 일심(一心)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그 스스로 근원을 배반하고 뿔뿔이 흩어져 육진(六塵)을 일으킨다. 이제 목숨을 다하여 번뇌의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 그 본래의 원천인 일심으로 되돌아가는 까닭에 이를 귀명(歸命)이라 하며, 그 일심이 바로 삼보인 것이다.” 하여 일심을 삼보라고 정의하였고, 일심에로의 환원이 불교수행의 목표라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