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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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중 불상 정측면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중 불상 정측면
불교
개념
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이 되는 부처를 가리키는 신앙대상. 부처.
내용 요약

아미타불은 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이 되는 부처를 가리키는 신앙대상이다. 중국 인도의 범어 내용을 따라 무량수불 또는 무량광불이라고도 한다. 살아 있는 모든 자를 구제하고자 48원을 세우고 오랜 수행을 거쳐 본원을 성취하고 10겁 전에 부처가 되었는데 지금도 서방의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설법하고 있다. 뭇 생명 있는 자들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염불을 통해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신앙에서 정토교가 성립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미타신앙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대부분의 사찰에서 극락전에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있다.

목차
정의
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이 되는 부처를 가리키는 신앙대상. 부처.
내용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 줄여서 미타(彌陀)라고도 한다. 이 아미타불의 신앙을 중심으로 하여 성립된 것이 정토교(淨土敎)이다. 아미타불이라는 이름은 처음 인도에서 아미타유스(amita-yus:무량한 수명을 가진 자, 無量壽), 아미타브하(amita-bhas:한량없는 광명을 지닌 자, 無量光)라고 하는 두 가지 범어로 표현되었던 것이지만, 그것이 중국으로 전해졌을 때는 모두가 아미타라고 음사(音寫)되었다. 따라서, 아미타는 이 두 가지 원명의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중국 및 우리 나라에서는 이 아미타와 병행하여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는 의역어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아미타불의 기원에 대해서는 학계의 이설이 많지만, 현재 가장 타당한 설로는 이름의 유래를 불타관(佛陀觀)의 전개에 입각하여 구하는 설이다. 이에 의하면 무량수와 무량광에 대응하는 관념은 원시불교보다 부파불교의 불타관 전개에서 두드러지게 보였고, 아미타불은 이와 같은 관념을 배경으로 하여 성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무량수나 무량광이 처음에는 모두 석가모니를 표현한 것이었지만, 후대에는 석가모니를 다른 각도에서 영구히 표현한 것이 되었다. 다만, 이 경우 원시불교나 부파불교의 불타관이 그대로 계승된 것이 아니라, 사상적으로 대승불교 보살사상(菩薩思想)의 견지에서 설해진 것이 특색이다. 아미타불은 석가모니가 대승불교 보살의 이상상(理想像)으로 직시되고 대승불교에 의해서 구원불로서 존숭되었던 때에 출현된 부처로 보고 있다.

아미타불을 주제로 한 경전으로는 『무량수경(無量壽經)』 ·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 『아미타경』 등이 있다. 이에 의하면, 아미타불은 일찍이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이 이 세상에 있을 때 법장(法藏)이라는 이름의 보살이었다. 그는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려는 뜻을 세우고 살아 있는 모든 자를 구제하고자 48원(願)을 세웠다. 그는 오랜 기간의 수행을 거쳐 본원을 성취하고 부처가 되었는데, 그 때가 지금으로부터 10 겁(劫) 전의 일이다. 그 뒤 아미타불은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십만억불토(十萬億佛土)를 지나서 있는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현재까지 설법을 하고 있다. 이 극락세계는 고통이 전혀 없고 즐거움만 있는 이상적인 세계로, 대승불교에서는 정토(淨土)의 대표적인 장소로 삼았다.

그리고 뭇 생명 있는 자들은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통해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위없는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이 모두가 아미타불의 본원에 근거한 것이다. 아미타불의 본원은 사십팔대원(四十八大願)이다. 이 가운데 중요한 것만 간추려 보면, 내가 부처되는 국토에는 지옥 · 아귀 · 축생 등 삼악도(三惡道)의 불행이 없을 것, 내 국토에 가서 나는 이는 번뇌의 근본이 되는 ‘나’와 ‘내 것’이라고 고집하는 소견을 일으키지 않을 것, 내 국토에 나는 이는 이 생에서 바로 정정취(正定聚)에 들어가서 바로 부처를 이룰 것, 내 광명은 한량이 없어 적어도 백천억 나유타 겁 동안 부처님 세계를 비추게 될 것이다. 또 내 수명은 한량이 없어 백천억 나유타 겁으로도 셀 수 없을 것, 내 국토에 가서 나는 이의 목숨이 한량이 없을 것, 어떤 중생이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내 국토를 믿고 좋아하여 가서 나려고 하는 이는 열 번만 내 이름을 부르면 반드시 가서 나게 될 것, 보리심을 내어 여러 가지 공덕을 닦고 지극한 마음으로 원을 발하여 내 국토에 가서 나려는 이는 그가 죽을 때 내가 대중들과 함께 가서 그 사람을 영접할 것이다.

그리고 내 국토에 가서 나는 보살들은 모두 나라연천(那羅延天)과 같은 굳센 몸을 얻게 될 것, 내 국토는 땅 위나 허공에 있는 궁전이나 누각이나 흐르는 시냇물이나 연못이나 화초나 나무나 온갖 물건이 모두 여러 가지 보배와 향으로 되어 비길 데 없이 훌륭하며, 그 물건들에서 나는 향기는 시방세계(十方世界)에 풍겨 그 냄새를 맡는 이는 모두 거룩한 부처님의 행을 닦게 될 것이다. 또 시방의 한량없는 중생들이 내 광명에 비추기만 하면 그 몸과 마음은 부드럽고 깨끗하며 하늘 사람보다도 뛰어날 것, 내 국토에 가서 나는 사람들은 옷입을 생각만 해도 아름다운 옷이 저절로 몸에 입혀지되 바느질한 자취나 물들인 흔적이나 빨래한 자국이 없을 것, 다른 세계 보살로서 내 이름을 들은 이는 부처님 법에서 물러나지 아니할 것 등이다.

이와 같은 본원들은 일체중생을 건지려는 보살정신의 극치이다. 아미타불은 중생들의 정신적인 완성은 물론, 그 정신적 완성의 환경인 국토의 장엄, 물질적인 완성에까지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그 어떠한 신앙보다도 이 아미타불에 관한 신앙이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6, 7세기경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미타신앙이 대중의 생활 속에 자리잡아 신라시대에는 집집마다 염불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이 미타염불을 널리 권장한 공로자로는 원효(元曉)를 들 수 있다. 그는 정토교를 보급하기 위해 신라의 각처를 다니면서 미타염불을 권하였고, 이를 뒷받침하는 각종 저서들을 남겼다.

원효 이후의 많은 신라 교학승(敎學僧)들도 미타신앙을 전파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삼국의 치열한 전투 속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전몰자들의 왕생을 비는 기도는 자연히 아미타불에 귀의하게 되었고, 수많은 아미타불상의 조성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광덕(廣德)엄장(嚴莊)이 염불수행을 통하여 정토왕생을 한 점이나 달달박박이 현신의 몸 그대로 아미타불의 몸을 이룬 설화, 욱면(郁面)이 피나는 염불정진을 통하여 서방정토를 향하여 날아갔다는 설화 등이 아미타불에 대한 신라인의 믿음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타신앙의 한국적 수용의 한 특성은 선(禪)과 극락정토의 회통적인 종합 노력이다. 아미타불을 찾는 염불과 선이 둘이 아니라는 선정불이(禪淨不二)의 전통은 원효가 “오직 마음이 정토요, 성품은 아미타불과 같다(唯心淨土同性彌陀).”를 천명한 이래, 지눌(知訥) · 보우(普愚) · 나옹(懶翁) · 기화(己和) · 휴정(休靜) 등으로 이어져 지금까지도 그 전통이 계승되고 있다. 그리고 고려 고종 때 요세(了世)가 설립한 만덕산(萬德山)의 백련사(白蓮社)와 조선시대의 각 사찰에서 결성한 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에서 고성염불(高聲念佛)을 통하여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나기를 기원하고 침체된 교계에 신앙의 등불을 밝힌 것도 우리 나라 미타신앙의 또 다른 면모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의 사찰에는 대부분 극락전(極樂殿)이라는 법당을 갖추고 그 속에 아미타불을 봉안하고 있다. 이 때 아미타불은 9종의 미타정인(彌陀定印) 중에서 한 가지를 취하거나 묘관찰인(妙觀察印)을 취하게 되며, 좌우의 협시보살로는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 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두고 있다. 아미타불과 관계된 불화로는 아미타후불탱화(阿彌陀後佛幀畫)를 비롯하여, 아미타불이 극락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묘사한 극락회상도(極樂會上圖), 아미타불이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등을 거느리고 염불수행자의 극락왕생을 맞으러 오는 광경을 묘사한 극락내영도(極樂來迎圖), 염불왕생첩경지도(念佛往生捷徑之圖)와 인로왕보살도(引路王菩薩圖), 『관무량수경』을 근거로 하여 극락세계의 모습을 보다 상세하게 묘사한 관경변상도(觀經變相圖) 등이 있다. 현재 아미타불은 불교의 신앙문에서 타력 신앙의 중심 부처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무량수경(無量壽經)』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아미타경(阿彌陀經)』
『한국의 불서(佛書)』(문명대, 열화당,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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