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면(郁面)은 신라 경덕왕 때 강주(康州)에 살던 아간(阿干) 귀진(貴珍)의 집에서 일하던 여종이다.
욱면은 『삼국유사』에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삼국유사』 「감통(感通)」편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念佛西昇)’조에 의하면, 강주(康州)에 사는 불교도 수십 명이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미타사에서 만일염불결사를 결성하였는데, 욱면은 주인을 따라 이 결사에 참여하여 염불 수행을 실천하였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향전(鄕傳)」과 「승전(僧傳)」에 실린 욱면에 관한 두 개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 그 내용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우선 「향전」에 있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욱면(郁面)은 신라 경덕왕 때의 인물로 아간(阿干) 귀진(貴珍)의 여종이었다. 그는 전세의 업연(業緣)으로 불우하게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남의 집 종이 되어 괴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불심이 깊었던 주인 귀진은 인근의 미타사(彌陀寺)라는 절에 매일 나가 염불을 하였는데, 욱면도 주인을 따라 미타사에 가게 되었다. 신도들이 아미타불을 염불하는 모습을 본 욱면은 매번 주인을 따라 절에 가 절 마당에 서서 염불을 하였다. 주인 귀진은 그녀가 직분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절에 가기 전날마다 곡식 두 섬을 주고 하룻밤 동안 다 찧으라고 하였다. 욱면은 부지런히 곡식을 찧어 놓고 절에 가서 염불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 욱면은 절 뜰 좌우에 말뚝을 세우고 두 손의 바닥을 뚫어 노끈으로 꿰고 말뚝에 맨 후 합장하며 염불 수행을 하였다. 이때 하늘에서 ‘욱면랑은 법당에 들어가 염불하라’라는 외침이 들렸다. 이상하게 여긴 절의 승려들이 욱면을 법당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정진하게 하였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서쪽 하늘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오더니 욱면이 하늘로 솟구쳐 불당의 대들보를 뚫고 나갔다. 욱면은 서쪽 교외에 이르러 형체를 버리고 부처의 몸으로 변하여 큰 빛을 발하며 승천하였다. 욱면이 서쪽 하늘로 사라진 뒤에도 음악 소리는 공중에서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승전」에서는 조금 다른 내용을 전하고 있다. 원래 욱면은 전생의 잘못으로 축생도(畜生道)에 떨어져서 부석사(浮石寺)의 소가 되었는데, 불경을 싣고 가다가 그 힘을 입어 아간 귀진 집의 여종으로 환생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하가산(下柯山)에 갔다가 꿈에 감응해 불도를 닦을 마음이 생겼다. 그때부터 주인인 귀진을 따라 미타사에 가 염불하였는데, 9년째 되던 해에 대들보를 뚫고 승천하였다. 후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전당에 ‘욱면등천지전(勖面登天之殿)’이라는 현판을 달았으며, 귀진도 깨달은 바가 있어 자신의 집을 희사(喜捨)해 절을 만들고 이름을 법왕사(法王寺)라 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법왕사는 허물어져서 폐허가 되었는데, 대사 희경(懷鏡) 등이 발원(發願)하여 절을 중건하였다고 한다.
두 이야기는 모두 8세기 중엽 신라 사회의 최하층민이라 할 수 있는 여종 욱면이 극락왕생하였다는 이야기이다. 7세기 중반 신라 사회에는 극락 즉 서방 정토(西方淨土)로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아미타신앙이 수용되었는데, 이 욱면의 이야기는 아미타신앙과 현실의 성불 인식이 결합된 형태를 보여준다. 욱면의 이야기는 죽은 이후인 내세가 아니라 현신(現身)으로 극락에 갈 수 있다고 믿는 신라 정토설화의 특징을 가장 극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