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종 ()

목차
관련 정보
아미타경
아미타경
불교
단체
염불 수행을 통해 정토에 태어나고자 하는 동아시아 불교의 한 종파.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정토종은 염불 수행을 통해 정토에 태어나고자 하는 동아시아 불교의 한 종파이다. 수행자의 염불 수행을 내적 조건으로 삼고 아미타불의 원력을 외적 조건으로 삼아 두 가지 조건이 상응할 때 수행자가 극락정토로 왕생할 수 있음을 종지로 삼는 종파로서, 우리나라의 경우 정토 신앙은 활발했지만 종파로서 성립하지는 않았다.

목차
정의
염불 수행을 통해 정토에 태어나고자 하는 동아시아 불교의 한 종파.
내용

동아시아 불교의 정토종은 일반적으로 중국의 동진 시기 주1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그는 390년 여산의 동림사(東林寺)에 연사(蓮社)를 세우고 극락왕생할 것을 주2하였다. 이후 동위(東魏) 시기의 주3주4를 지어 정토종 이론의 기초를 마련하였고, 수에서 당에 이르는 시기에는 주5정토신앙을 전파하였다. 이후 도작에게 배운 선도(善導)가 장안에 이르러 정토 관련 서적들을 짓고, 정토종을 창립하였다. 중국 불교에서 정토종은 송명 이후 선종과 융합되는 형태를 보였고, 천태종[^6], 화엄종[^7] 등도 모두 염불을 겸수(兼修)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정토 신앙은 우리나라에 일찍 전래되었지만, 종파로서는 성립하지는 않았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경덕왕 대에 욱면(郁面)이라는 여자 노비가 염불 수행을 통해 육신을 버리고 진신(眞身)을 드러낸 설화가 수록되어 있고, 또한 이 시기에는 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 역시 행해졌다. 그리고 이러한 정토 신앙은 조선시대 불교에까지 면면히 지속되었다. 우리나라에 정토종이 성립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정토 신앙이 한국 불교의 모든 종파에 흡수되어 특정 종파와 관계없이 전반적으로 수용되었으므로, 별도의 종파로 성립될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다.

한편 1876년 조선과 일본 간에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이후 정토진종(淨土眞宗), 정토종(淨土宗)과 같은 일본 정토종 계열의 불교가 조선에 들어왔다. 정토진종의 대곡파(大谷派)가 1877년 부산에 별원(別院)을 설치하였고, 1881년 정토종이 그 뒤를 이었다. 정토종은 1898년 서울에서 포교를 시작한 이래 1899년에는 일본 정토종의 주8 호리오(堀尾)가 고종황제를 알현하기도 할만큼 황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정토종교회(淨土宗敎會)를 조직하여 조선인 포교에 앞장섰다. 다만 정토종의 활동은 1910년 한일합병 이후에는 점차 일본인을 대상으로 하는 종교 활동으로 전환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현송, 『한국 고대 정토신앙 연구』(운주사, 2013)

논문

한태식, 「한국 정토사상의 특색」(『정토학연구』, 한국정토학회, 2010)
한동민, 「대한제국기 일본 정토종(淨土宗)의 침투와 불교계의 대응」(『한국독립운동사연구』 34,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주석
주1

중국 동진의 승려(334~416). 속성은 가(賈). 백련사라는 염불 결사를 창설하여 중국 정토종의 개조가 되었다. 저서에 ≪대지도론요략(大智度論要略)≫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2

신불(神佛)이나 자기 마음속에 맹세하여 소원을 세움. 또는 그 소원. 우리말샘

주3

중국 남북조 시대 양나라 정토교의 선구자(476?~542). 보리 유지(菩提流支)로부터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을 받아 정토교에 귀의하였다. 저서에 ≪정토왕생론주(淨土往生論註)≫, ≪찬아미타불게(讚阿彌陀佛偈)≫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4

북위의 담란(曇鸞)이 인도의 승려 바수반두가 지은 ≪왕생론≫에 대하여 주해를 붙인 책. 2권. 우리말샘

주5

중국 수나라·당나라 때의 승려(562~645). 중국 정토교의 5조(祖) 중 제2조이며, 진종(眞宗)에서는 7고승 가운데 서열이 네 번째이다. 저서에 ≪안락집(安樂集)≫이 있다. 우리말샘

주6

중국 수나라 때에, 저장성(浙江省) 톈타이산(天台山)에서 지의(智顗)가 세운 대승 불교의 한 파. 법화경과 용수보살의 중론(中論)을 근본 교의(敎義)로 하고 선정(禪定)과 지혜의 조화를 종지(宗旨)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숙종 2년(1097)에 대각 국사가 국청사에서 처음으로 천태교를 개강함으로써 성립되었다. 우리말샘

주7

화엄경을 근본 경전으로 하여 세운 종파. 수나라와 당나라 때, 중국 불교의 전성시대에 삼론종, 천태종, 율종, 정토종 따위의 여러 종파와 대립하여 통합된 불교로 성립하였다. 셋째 조사(祖師)인 법장(法藏) 곧 현수(賢首) 때에 크게 성장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신문왕 때에 의상(義湘)이 개종(開宗)하였고, 뒤에 교종(敎宗)이 되었다. 우리말샘

주8

승려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벼슬.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