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불교의 정토종은 일반적으로 중국의 동진 시기 주1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그는 390년 여산의 동림사(東林寺)에 연사(蓮社)를 세우고 극락에 왕생할 것을 주2하였다. 이후 동위(東魏) 시기의 주3이 주4를 지어 정토종 이론의 기초를 마련하였고, 수에서 당에 이르는 시기에는 주5이 정토신앙을 전파하였다. 이후 도작에게 배운 선도(善導)가 장안에 이르러 정토 관련 서적들을 짓고, 정토종을 창립하였다. 중국 불교에서 정토종은 송명 이후 선종과 융합되는 형태를 보였고, 천태종[^6], 화엄종[^7] 등도 모두 염불을 겸수(兼修)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정토 신앙은 우리나라에 일찍 전래되었지만, 종파로서는 성립하지는 않았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경덕왕 대에 욱면(郁面)이라는 여자 노비가 염불 수행을 통해 육신을 버리고 진신(眞身)을 드러낸 설화가 수록되어 있고, 또한 이 시기에는 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 역시 행해졌다. 그리고 이러한 정토 신앙은 조선시대 불교에까지 면면히 지속되었다. 우리나라에 정토종이 성립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정토 신앙이 한국 불교의 모든 종파에 흡수되어 특정 종파와 관계없이 전반적으로 수용되었으므로, 별도의 종파로 성립될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다.
한편 1876년 조선과 일본 간에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이후 정토진종(淨土眞宗), 정토종(淨土宗)과 같은 일본 정토종 계열의 불교가 조선에 들어왔다. 정토진종의 대곡파(大谷派)가 1877년 부산에 별원(別院)을 설치하였고, 1881년 정토종이 그 뒤를 이었다. 정토종은 1898년 서울에서 포교를 시작한 이래 1899년에는 일본 정토종의 주8 호리오(堀尾)가 고종황제를 알현하기도 할만큼 황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정토종교회(淨土宗敎會)를 조직하여 조선인 포교에 앞장섰다. 다만 정토종의 활동은 1910년 한일합병 이후에는 점차 일본인을 대상으로 하는 종교 활동으로 전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