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 ()

불교
인물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활동하다 정토왕생을 성취하였다는 승려.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작품
원왕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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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광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활동하다 정토왕생을 성취하였다는 승려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문무왕 대에 분황사 서쪽 마을에 살았고 처자식이 있었다. 엄장과 정토왕생을 이루자고 서로 약속하였으며, 16관법을 닦은 끝에 그것을 이루었다. 향가 「원왕생가」의 찬자라고 한다.

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활동하다 정토왕생을 성취하였다는 승려.
가계 및 인적사항

광덕은 『삼국유사』에만 그 이름이 나와서 역사적 실체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문무왕 대에 분황사 서쪽 마을에서 처자식과 함께 살았다고 하며, 주1로 신발 만드는 일을 하였다. 남악에서 밭농사를 짓던 엄장(嚴莊)과 사이좋게 지내며, 정토왕생을 이루자고 서로 약속하였다.

주요 활동

광덕 부인의 설명에 의하면, 광덕은 매일 밤 몸을 단정히 하고 바로 앉아 한결같은 소리로 아미타불의 이름을 불렀고, 때때로 16관(觀)을 수행하여 관(觀)이 무르익고 밝은 달이 방문으로 들어오면 빛 위에 올라 그 위에서 가부좌를 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엄장보다 먼저 정토왕생을 성취하였다. 광덕 사후, 엄장의 권유로 광덕의 부인이 엄장과 함께 살았다. 엄장이 광덕의 부인과 정을 통하려 하자, 부인은 엄장을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려 한다’고 꾸짖었다.

광덕의 부인은 분황사 여종으로, 관음보살의 변화된 몸이라고 『삼국유사』에서 말하고 있다. 혼인한 사문(沙門)이라는 점에서 고려시대의 수원승도(隨院僧徒)와 같은 성격이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학문과 저술

광덕이 닦은 16관은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나오는 것으로, 염불 수행을 통해 아미타불의 모습과 정토를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삼국유사』에서는 광덕이 향가 「원왕생가(願往生歌)」를 지었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유사(三國遺事)』

논문

김영미, 「『삼국유사』 감통편 「광덕엄장」조와 아미타신앙」(『신라문화제학술발표논문집』 32,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2011)
신종원, 「『삼국유사』에 실린 분황사관음보살 설화 역주」(『신라문화제학술발표논문집』 20,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1999)
주석
주1

부들과의 여러해살이풀. 뿌리줄기는 높이가 1~1.5미터이며, 옆으로 뻗으면서 퍼지고 원기둥 모양이다. 잎은 가늘고 길다. 여름에 잎 사이에서 꽃줄기가 나와 노란 이삭 모양의 꽃이 육수(肉穗) 화서로 피는데 위쪽에 수꽃, 아래쪽에 암꽃이 달린다. 열매 이삭은 긴 타원형이며 붉은 갈색이다. 꽃가루는 지혈제로 쓰고, 잎과 줄기는 자리·부채 따위를 만드는 재료로 쓴다. 개울가나 연못가에서 저절로 나는데 유럽과 아시아의 온대와 난대, 지중해 연안에 분포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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