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문무왕 때 광덕(廣德)이 지었다는 10구체 향가. ≪삼국유사≫ 권5 ‘광덕엄장조(廣德嚴莊條)’에 노래의 유래에 관한 배경설화와 향찰로 표기된 원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작자에 대해서는 광덕으로 보는 견해가 정설이나 광덕의 처, 원효, 민간 전승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수록문헌에 따르면 문무왕대에 사문(沙門)인 광덕(廣德)과 엄장(嚴莊)이라는 두 친구가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서방정토(西方淨土)에 왕생(往生)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수도생활에만 전념하던 광덕이 먼저 죽자, 엄장은 광덕의 아내와 함께 유해를 거두어 장사를 지냈다.
그 일을 끝낸 뒤, 엄장이 광덕의 아내에게 동거하기를 청하자 그이가 이를 허락하였다. 밤에 엄장이 정을 통하려 하니 광덕의 아내는 정색을 하면서 말하기를, “죽은 남편은 10여 년을 같이 살았으나 한 번도 동침하지 않고 오직 수도에만 전념하였는데, 지금 당신은 이런 추한 행동을 하려 하니 정토를 구하기는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엄장은 부끄러움을 느끼며 물러나와 몸을 깨끗이 하고 크게 뉘우쳐 한마음으로 관(觀)을 닦은 결과 엄장 또한 서방정토로 왕생하게 되었다.
그 부인은 분황사(芬皇寺)의 비(婢)인데, 실은 관음보살의 십구응신(十九應身)의 하나였다. 그런데 광덕에게 일찍이 <원왕생가>라는 ‘노래가 있었다.’고 한다.
배경설화의 이 문맥 때문에, 즉 광덕이 ‘지었다’라고 분명히 기술하고 있지 않고 그냥 ‘있었다’라고 적혀 있기 때문에, 작자에 대해 광덕으로 규정하는 견해와 그 아내가 지었다는 견해, 민요적인 전승가요였으므로 집단이 공동으로 지었다는 견해, 원효(元曉)가 지었다는 견해, 불교신앙에 투철한 상층 지식인(불승 또는 귀족)이 지었다는 견해 등 여러 갈래로 엇갈려 있다.
이 가운데 배경설화와 이 노래가 생성배경을 함께 한 동일 문맥으로 볼 경우, 광덕이 지었다는 견해가 가장 설득력이 있으며, 이와 달리 배경설화와 노래가 각각 달리 생성되어 전승되다가 뒷시대에 와서 임의로 결합되었다고 볼 경우 정토신앙에 투철한 불승 또는 귀족이 지었으며, 광덕과는 무관하다는 견해도 일리가 있는 학설로 대두되어 있다.
이 노래의 원문과 현대어 풀이는 다음과 같다.
① 원문
月下伊底亦 西方念丁去賜里遺無量壽佛前乃 惱叱古音多可攴白遣賜立誓音深史隱尊衣希仰攴 兩手集刀花乎白良願往生願往生 慕人有如白遣賜立阿邪此身遺也置遣 四十八大願成遣賜去
② 현대어 풀이
달이 어째서
서방까지 가시겠습니까.
무량수전 전에
보고의 말씀 빠짐없이 사뢰소서.
서원 깊으신 부처님을 우러러 바라보며,
두 손 곧추 모아
원왕생 원왕생
그리는 이 있다 사뢰소서.
아아, 이몸 남겨 두고
48대원 이루실까(金完鎭 譯)
이 노래는 <도천수관음가 禱千手觀音歌>와 더불어 신라시대 기원가(祈願歌), 곧 기도하는 노래의 한 전형을 보여 준다. 기원가의 어법은 예배대상에 대한 청원이나 탄원 및 기구(祈求)·고백의 어법이 중심이 되는데, 이 작품도 바로 이러한 어법구조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예배대상은 무량수불로 되어 있고, 아미타신앙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무량수불은 곧 아미타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중요한 소재로 선택 된 ‘달’은 기도자(서정 자아)가 있는 현세와 극락정토인 서방을 잇는 중개자로 나타나 있다. 혹은 서방정토의 사자(使者)로서 상징적 의미를 띠고 있다.
노래의 첫 부분을 ‘달’이라는 대상의 초월적 힘에 기대어 시작하면서, 제3·4구에서 기도자는 자신의 청원을 달에게 부친다. 무량수불전에 자신의 뜻을 아뢰달라는 부탁이다.
그 소원이 무엇인지는 잠시 유보함으로써 긴장을 유발한다. 이어서 제5∼8구에 자신의 청원이 서방정토로 왕생하는 데 있음을 합장의 자세로 경건하게 아뢴다.
특히, 제5구는 아미타불에 대한 경배가 드러나고 있지만 ‘서원 깊으신’이라는 관형구로 제시되어 있음을 감안한다면, 이는 단순한 외경이 아니다. 아미타불이 법장보살(法藏菩薩)로 있을 때,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에게 맹세한 중생제도(衆生濟度)의 서원을 상기하도록 하여, 기도자 자신을 왕생하게 하는 일에 아미타불을 묶어 놓으려는 강한 의지까지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노래의 핵심, 곧 주제는 제7구에 집약되어 나타나 있다. 비록 함축적인 어휘로 표현되었지만 현실세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 투영되었다고 보겠다. 이것은 세속적인 삶을 다 끝낸 뒤의 소망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현세를 초월하겠다는 절대절명의 청원으로 여겨진다.
맨 끝의 2구는 일종의 독백형식이면서 제5구에서부터 계속되어 온 기원의 연장이자 그 심화확대라는 견해와 의문형으로 끝내어 설의법(說疑法)의 가면을 썼으나 내면으로는 강한 명령법과 접맥되는 위협의 요소가 숨어 있으므로 주술적인 의지가 함축되어 있다는 일부 주장도 있다.
조건절을 수반한 반어의문문을 사용하고 있으며, 드러난 대로 읽으면 원망이라고 하겠으나 앞의 문맥과 연결시켜 읽으면 나의 왕생수행을 아미타불께 품신하여 나를 제도해 달라고 강하게 청하는 뜻이 담겨 있다.
이 때문에 신라인의 세계관이 불교와 샤머니즘이 습합한 것처럼, 이 노래 또한 달이라는 중개자를 통하여 주술적 어법을 빌려 정토왕생을 희원한 노래로 보기도 한다.
또 달을 대세지보살의 응현으로 보아 시적 자아가 서방정토에 왕생하고자 달로 응현된 대세지보살로 하여금 아미타불께 빨리 품신하여 주고, 왕생시켜 달라고 청원하는 노래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경우 원왕생가의 아미타불과 대세지보살은 관련 설화의 관음보살과 함께 아미타 삼존을 완결한다.
이 작품은 신라불교가 귀족불교의 한계를 넘어서 일반 서민에까지 아미타신앙으로 확산되어 대중불교로 전환되는 배경으로, 현세의 고난을 이겨내고 내세의 극락으로 왕생하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기도 형식으로 담은 기원적 서정가요로서, 주목되는 향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