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장산국(萇山國, 또는 萊山國, 居漆山國)이었는데 신라가 취하여 거칠산군이라 하였으며, 757년(경덕왕 16)에 양주(良州) 영역의 동래군으로 고쳐 동평(東平) · 기장(機張)의 두 현을 영현으로 삼았다. 1018년(현종 9) 울주(蔚州)의 임내(任內)로 하여 뒤에 현령을 두었다.
조선 태조가 처음으로 진(鎭)을 설치하여 병마사(兵馬使) 겸 판현사(判縣事)를 두었고 뒤에 현령으로 바꾸었다. 그 뒤 1547년(명종 2)에 이곳이 왜인의 상륙 지점이라는 지리적 중요성으로 인해 도호부로 승격시켰다.
1895년(고종 32)에는 동래부가 되어 관찰사가 10개 군을 관할하는 치소였으나, 그 뒤 경상남도에 편입되었으며 도청은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겼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기장군을 합하여 동래군이 되었으며, 1951년 부산부에 편입되면서 동래 출장소가 설치되고 1957년에 부산시 동래구로 되었다.
동래라는 지명은 3세기 때 기록인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 이곳 동래 지방을 독로(瀆盧)라고 한 데서 나왔다고 하며, 일설에는 영도(影島)에 있는 봉래산(蓬萊山)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조선 시대에는 왜국과의 관계로 이곳이 군사적으로 중시되었던 곳이다. 이곳에는 경상도의 좌수영(左水營)이 있어 부산포(釜山浦) · 다대포(多大浦) · 서생포(西生浦) · 개운포(開雲浦) · 두모포(豆毛浦) · 서평포(西平浦) · 걸이포(乞伊浦) 등의 속진(屬鎭)을 직접 관할하였으며, 65척의 각종 전함(戰艦)이 있었다.
육군은 효종 때 동래진(東萊鎭) · 독진(獨鎭)을 설치하여 도호부사(都護府使)가 겸임하면서 양산(梁山) · 기장(機張)을 관할하였다. 당시에는 부산포 부근에 왜관(倭館)이 설치되었으며 부산창(釜山倉)을 설치하여 동래 · 울산 · 기장의 세곡(稅穀)을 거두어 왜국과 거래하는 데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곳의 온천장은 신라 때부터 이용하였고, 조선 숙종 이후 숙박 시설을 설치하였다. 이곳의 명승지로는 동래산성과 금강공원 등이 있는 금정산(金井山)과 678년(문무왕 18) 의상(義湘)이 창건한 범어사(梵魚寺)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