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신라의 퇴화군(退火郡)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의창군(義昌郡)으로 고쳐 안강(安康)·기립(鬐立)·신광(神光)·임정(臨汀)·영일(迎日)·기계(鬐溪) 등의 6현을 관할하였다.
940년(태조 23)에 흥해군으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경주부의 임내로 하였다.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두었으며, 1367년(공민왕 16) 국사(國師) 천희(千熙)의 고향이라 하여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였고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따랐다.
1895년(고종 32) 동래부 소관의 군이 되었다가 1896년 경상북도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흥해면이 되어 영일군에 병합되었다가 1956년의창면으로 개칭, 1973년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3년 다시 흥해읍으로 개칭, 1995년영일군과 포항시가 통합되어 포항시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남쪽의 영일과 북쪽의 청하(淸河)를 연결하는 해안도로가 발달하였다. 서쪽으로는 냉정현(冷井峴)을 지나 영천(永川)과 연결되었다. 해안지역의 칠포진(漆浦鎭)에는 수군만호(水軍萬戶)가 있어 해안방어를 맡았고, 지을산(知乙山)·오산(烏山) 봉수가 있었다.
신라 때 말갈족(靺鞨族), 고려 때 동여진족(東女眞族)이 침입한 적이 있었다. 지명은 동쪽의 바다에서 어염의 생산이 많고, 넓은 들이 있어 농토가 비옥하다 하여 유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