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금정산성은 부산 금정구 금정산 정상부에 있는 조선 시대 돌로 쌓은 성곽이다. 동래산성이라고도 한다. 성벽은 18,845m, 성벽 둘레는 9,011보, 높이가 15척이다. 낙동강 하구와 동래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동서남북 4곳의 성문과 물이 흘러나가는 수구문, 누가 없이 만들어진 암문 등이 있다. 1667년(현종 8)에 보수를 건의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미 축성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수축과 개축이 이루어졌다. 금정산성은 조선 시대 국방사 연구와 해안 관방체계 연구에 중요한 산성이다.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정산(金井山) 정상부에 있는 조선시대 석축 성곽. 산성.
개설
역사적 변천
1872년(고종 9)에 제작된 규장각 소장 「금정산성진지도(金井山城鎭地圖)」에는 장대가 동서남북 4곳의 대문과 국청사 뒤쪽에 1곳씩 있고, 본성과 중성에 각각 10곳과 2곳 등 총 12곳의 망대(望臺)가 있었으며, 그 밖에 수문 3곳, 중성 석문 1곳, 아문(亞門) 1곳 등의 성내 시설물이 자리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숙종 이래로 산성 수축공사의 경위를 새긴 금정산성부설비(金井山城復設碑)가 현재 남아 있다.
내용
한편 2004년에 실시된 죽전마을 금성동 일대 시굴조사에서는 높이 30∼80㎝, 너비 70∼80㎝, 석축 2∼4단이 잔존하는 동서 5.6m, 남북 2.4m 규모의 석축 담장 유구가 총 8m 가량 확인되었는데, 고지도에 있는 금정진의 외곽 담장으로 추정된다.
특징
중성벽은 길이 0.4∼1.2m, 두께 50∼70㎝ 크기의 비교적 큰 돌을 사용하여 쌓았는데, 부산 주변 수군진성(水軍陣城)의 성벽처럼 큰 깬돌 사이로 조그마한 돌을 끼워가며 세워쌓기한 수법도 보인다. 또한 아문(亞門) 주변의 성 바깥벽 및 남문 동쪽벽에서는 약 5m 구간마다 수직줄눈이 보여, 일정한 구간별로 순차적으로 성벽을 축조해 나갔던 것 같다. 경사면 성벽 윗부분에서는 2.1∼3m 간격으로 체성벽과 직각으로 교차하는 성벽이 곳곳에서 확인되어, 2∼3m 구간마다 계단식으로 축대를 덧붙여 쌓아 성벽의 안정성을 높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에 사용된 돌은 대부분 주변의 자연 암반에서 떼어낸 화강암제의 납작한 깬돌이며, 제4망루와 동성벽 사이, 문터 주변, 중성벽은 비교적 큰 네모난 깬돌이 사용되었다. 이들 구간은 평평한 편으로 방어에 취약하기에, 주로 동래쪽 성벽에 큰 돌을 사용하여 보다 견고하게 축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중성벽의 너비는 3.5m 내외인데, 대부분 바깥쪽은 큰 돌로 쌓고 안쪽은 작은 돌로 채운 내탁식(內托式)으로 축조되어, 바깥벽에서 1.1∼2.1m 안쪽까지는 막돌로 채웠으며, 그 안쪽은 흙으로 뒷채움을 하였다. 한편 문터 주변과 경사지에서는 안쪽벽의 안쪽을 따라 자연 배수가 되도록 한 너비 5∼15m, 깊이 5m 정도의 ‘V’자형 도랑〔溝〕이 확인되는데 내황(內隍)으로 보인다. 또한 동성벽과 북성벽에서는 활모양〔弧形〕의 치상(雉狀)유구가 다수 확인되었는데, 외견상 둥근 모양의 치 같기도 하지만, 성벽 윗부분이 훼손된 바깥벽 기저부에 덧붙여 축조한 것으로 후대에 성벽을 보강하거나 보수할 때 쌓은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현종실록(顯宗實錄)』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동래부지(東萊府誌)』
- 『부산 금정산성 금정진 복원부지내유적 시굴조사』(경성대학교박물관, 2004)
- 『금정산성전돈대지 발굴조사보고』(부산직할시, 197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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