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송광사의 부휴계 법맥을 계승하고 교육과 저술 활동에 매진한 승려.
생애 및 주요 활동
15세가 되던 1875년(고종 12)에 송광사의 금련 경원(金蓮敬圓)에게서 출가하고, 2년 뒤 경파(景坡)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당대의 종장(宗匠)을 찾아 다니며 교학을 전수 받았다. 30세가 되면서 경원의 법을 계승하여 개당하고 송광사, 화엄사 등에서 후학들을 지도했다.
1898년부터 1904년까지 송광사의 총섭(摠攝)을 역임했다. 총섭은 당시 주지의 별칭이다. 1899년 고종의 칙명으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 3부 인쇄되었을 때, 1부를 가지고 와서 송광사 장경전에 봉안하였다.
1910년대 이후로는 강원 및 학당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면서 활발한 저술 활동을 이어나갔다. 1914년 송광사의 보제당(普濟堂)에 강원을 설치하여 전통 불교 교육에 힘쓰는 한편, 벌교에 세운 송명교당(松明敎堂)에서는 근대 교육 및 민족 교육을 병행하였다. 이 밖에 천은사, 대흥사, 태안사 등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후학 양성과 저술 활동에 매진하던 보정은 1930년 2월에 입적하였다.
학문과 저술
무엇보다 『조계고승전』에서는 기존의 태고 법통설에 기반한 불교사 인식을 유지하면서도, 송광사와 보조 지눌의 유풍을 강조하고 그것을 부휴계(浮休系) 전통에 연결하면서 조계종(曹溪宗)을 표방하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보정의 이러한 인식은 부휴계를 정통으로 보는 계파적 인식이 강한 것이었지만, 조선불교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담아낼 수 있는 역사성을 갖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전통 창출에 선구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 『금명집(錦溟集)』
논문
- 김용태, 「금명 보정의 부휴계 정통론과 조계종 제창」(『한국문화』 37,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200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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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임금이 내린 명령.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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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전라남도 보성군에 있는 읍. 특산물로 꼬막, 딸기 등이 유명하며, 문화재로는 보성 벌교 홍교, 취송정(翠松亭)이 있다. 2020년 전라남도 보성군청 누리집을 기준으로 면적은 72.5㎢.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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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승려가 죽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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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조계산에 있는 절. 신라 말기에 혜린 선사가 창건하여 길선사(吉禪寺)라 하였다. 조계종의 발상지이며, 여기서 16 국사가 나왔다 해서 승보 사찰이라고 한다. 현재 대한 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로 되어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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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책.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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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낱말이나 문장의 뜻을 쉽게 풀이함. 또는 그런 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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