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조계종 승려인 금명보정이 해남의 대흥사(大興寺)에 머물 당시,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 등이 대흥사에 남긴 글과 초의의순(草衣意恂, 1786∼1866) 및 범해각안(梵海覺岸, 1820∼1896) 등의 글을 필사한 것이다.
발행년 미상의 필사본으로 1책이며, 23.5×20.3㎝이다.
금명보정은 자가 다송(茶松)이고 호는 금명(錦溟) 또는 첨화(添華)로, 생애의 대부분을 송광사를 비롯한 전라남도 일대에서 활동한 승려이다. 부휴선수(浮休善修)계에 속하며, 1898년(광무 2)에는 송광사의 주지를 맡았다. 그는 총 17종에 달하는 편저를 남겼는데, 이 중 11종이 『한국불교전서』 제12책에 수록되어 있다.
『백열록(栢悅錄)』이라는 서명은 ‘송무백열(松茂栢悅: 소나무가 번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에서 유래한 것이다. 본서는 금명보정이 자신이 거주하였던 송광사 및 당시 송광사와 깊은 관계에 있었던 대둔사(大芚寺: 대흥사)에 관련된 사람들의 글을 주로 모은 것이다.
구성은 서(書)·찬(贊)·송(頌)·서(序)·기(記)·제문(祭文)·선문답(禪問答)·모연문(募緣文)·축(祝)·소(疏)·논(論)·명(銘)·해(解) 등의 문(文)과 칠언의 절구와 율시 등 다양하다. 총 88제(題)의 작품이 「김추사선생증백파서(金秋史先生證白坡書)」를 시작으로 하여 작자별로 수록되어 있고, 「산거잡영(山居雜詠)」으로 끝맺는다.
본서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초의의순과 범해각안의 글이 많이 실려 있어, 보정이 이들을 존경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백열록』에는 초의선사가 지은 「동다송(東茶頌)」을 비롯하여 「초의선사시집서(草衣禪師詩集序)」·「초의선사찬(草衣禪師贊)」·「초의진신찬(草衣眞身贊)」 등이 실려 있다. 또 보정은 대둔사의 13대 강사였던 범해각안에게 직접 배우기도 하였는데, 범해각안은 삼국시대부터 당시까지의 승려행적을 모은 『동사열전(東師列傳)』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보정은 이들로부터 불교학뿐만 아니라 근대학문의 훈도를 받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보정이 『저역총보(著譯叢譜)』와 『조계고승전(曹溪高僧傳)』을 편찬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둘째, 다산 정약용의 글이 많이 실려 있다. 「대둔만일암기(大芚挽日菴記)」·「철경당게(掣鯨堂偈)」·「철우당게(鐵牛堂偈)」·「현해탑명(縣解塔銘)」·「은봉당제문(隱峰堂祭文)」·「표충사제문(表忠寺祭文)」·「선문답(禪問答)」·「고성암모연문(高聲菴募緣文)」·「만아암(挽兒菴)」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대둔만일암기」를 제외하고는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에도 실려 있지 않은 귀중한 자료이다. 뿐만 아니라 끝에는 원나라 승려인 석옥청공(石屋淸珙)의 「산거잡영」에 차운(次韻)한 다산의 시 24수가 실려 있다.
본서 가운데 「선문답」은 순암 윤종진(尹鐘軫, 1803∼1879)·초의의순·침교법훈(枕蛟法訓, ?∼1813)과 다산이 나눈 대화인데 그것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다산이 말하기를) ‘순암은 진로(塵勞)를 벗어나야 한다. 의순은 실지(實地)를 밟아야만 한다. 법훈은 깨달음의 관문(關門)을 꿰뚫어야 한다’. 순암이 묻기를 ‘무엇이 진로를 벗어나는 것입니까?’ 다산이 답하기를 ‘가을 구름에 한 조각 달’. 의순이 묻기를 ‘무엇이 실지를 밟는 것입니까?’. 다산이 답하기를 ‘날리는 꽃 제성(帝城)에 가득하도다’. 법훈이 묻기를 ‘무엇이 깨달음의 관문을 꿰뚫는 것입니까?’ 다산이 답하기를 ‘새 그림자 찬 방죽을 건너가누나’.[淳也須洒脫塵勞 詢也須踐蹋實地 訓也須超透悟關 淳問 如何是灑脫塵勞 師曰 秋雲一片月 詢問 如何是踐蹋實地 師曰 飛滿帝城 訓問 如何是超透悟關 師曰 鳥影度寒塘]”
금명보정은 전통적 방식으로 불교를 이해한 마지막 세대임과 동시에 초의의순과 다산 정약용 등으로부터 근대학문을 익힌 승려였다. 본서는 자료를 집성하려는 그의 노력의 소산이다. 본서 가운데는 정약용의 작품 등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작품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자료적 가치가 풍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