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151㎝, 너비 21㎝. 1386년(우왕 12)에 건립되었다. 비의 형식은 장방형의 대석을 놓고 비신을 세운 다음 옥개석(屋蓋石)을 올려놓았다.
비신은 점판암의 것으로 마멸이 심하고 오른쪽 모서리가 상하로 길게 부식되어 떨어져나갔다. 이색(李穡)이 비문을 짓고, 승려인 혜잠(惠岑)이 각자하였으며, 글씨를 쓴 사람은 마멸로 알 수 없다.
비문에는 진각국사가 소백산에서 76세에 입적하기까지의 내용과 행적이 실려 있다. 즉, 진각국사의 휘가 천희(千熙), 호는 설산(雪山), 흥해(興海) 사람이고, 13세에 화엄반룡사(華嚴盤龍寺)의 일비(一非)를 사사하고, 여러 절을 다니며 수행하였으며, 원나라에 갔다가 귀국하여 치악산에 은거하였고, 부석사를 중수하였던 사실 등이 쓰여 있다. 그리고 공민왕이 사신을 보내 진각국사를 국사대화엄종사선교도총섭(國師大華嚴宗師禪敎都總攝)에 봉하고 이후 인장과 법의를 내렸다는 내용도 적혀 있다.
글씨는 앞면의 자경은 2.2㎝, 후면은 1.5㎝이다. 구양순(歐陽詢) 서체에 근거를 두고 있으나 고려 초기·중기의 주경(遒勁: 붓의 힘이 굳셈)하고 금석기 있는 풍모가 거의 사라진 투박한 것으로서 고려 말의 글씨가 퇴보하였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전액의 자경은 6㎝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