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신 높이 171㎝, 너비 91㎝, 두께 25㎝. 1519년(중종 14)에 건립되었다. 비바람에 마멸이 심하여 하반부는 판독이 어렵다.『추계유고(楸溪遺稿)』에 소개된 이 비문의 내용에 의하면, 신용개(申用漑)가 짓고 신공제(申公濟)가 썼으며 이언호(李彦浩)가 ‘尹文孝公神道碑(윤문효공신도비)’ 7자를 전액(篆額)하였다. 비음(비의 뒷면)은 1528년에 이행(李荇)이 짓고 썼다. 글씨는 조맹부(趙孟頫)의 글씨체로, 필력이 부족하고 기상도 떨어져 고려 비에 비하면 매우 낙후된 양상을 보여준다. 비음의 글씨도 마찬가지이다.
비문에는 윤효손의 휘가 효손(孝孫), 자는 유경(有慶)이고 시호(諡號)가 문효(文孝)라는 것과, 1431년(세종 13)에 출생하여 세조 때 전농주부(典農注簿)와 훈련원부정을 지내고, 성종 때 『경국대전』과 『오례의주(五禮儀注)』를 편찬하였으며, 전주부윤,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경상도 양전(量田) 순찰사를 지냈다는 사실이 쓰여 있다.
또한 연산군 때 좌참찬에 이르고 73세에 죽을 때까지의 이력과 그밖에 자손들의 계보, 그리고 그의 충효와 인품을 기리는 명문 등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