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윤문효공 신도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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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윤문효공 신도비 정측면
구례 윤문효공 신도비 정측면
서예
유적
국가유산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에 있는 조선전기에 건립된 윤효순의 신도비.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구례 윤문효공 신도비(求禮 尹文孝公 神道碑)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75년 03월 31일 지정)
소재지
전남 구례군 산동면 이평리 산91-1번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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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에 있는 조선전기에 건립된 윤효순의 신도비.
내용

197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신 높이 171㎝, 너비 91㎝, 두께 25㎝. 1519년(중종 14)에 건립되었다. 비바람에 마멸이 심하여 하반부는 판독이 어렵다.『추계유고(楸溪遺稿)』에 소개된 이 비문의 내용에 의하면, 신용개(申用漑)가 짓고 신공제(申公濟)가 썼으며 이언호(李彦浩)가 ‘尹文孝公神道碑(윤문효공신도비)’ 7자를 전액(篆額)하였다. 비음(비의 뒷면)은 1528년에 이행(李荇)이 짓고 썼다. 글씨는 조맹부(趙孟頫)의 글씨체로, 필력이 부족하고 기상도 떨어져 고려 비에 비하면 매우 낙후된 양상을 보여준다. 비음의 글씨도 마찬가지이다.

비문에는 윤효손의 휘가 효손(孝孫), 자는 유경(有慶)이고 시호(諡號)가 문효(文孝)라는 것과, 1431년(세종 13)에 출생하여 세조 때 전농주부(典農注簿)와 훈련원부정을 지내고, 성종 때 『경국대전』과 『오례의주(五禮儀注)』를 편찬하였으며, 전주부윤,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경상도 양전(量田) 순찰사를 지냈다는 사실이 쓰여 있다.

또한 연산군 때 좌참찬에 이르고 73세에 죽을 때까지의 이력과 그밖에 자손들의 계보, 그리고 그의 충효와 인품을 기리는 명문 등이 실려 있다.

참고문헌

『한국금석문대계』1(조동원, 원광대학교출판국, 1979)
『근역서화징』(오세창, 계명구락부, 1928)
집필자
선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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