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2년(명종 2)에 건립된 것으로 현재 비는 없어졌지만 비의 탁본이 문경 김룡사(金龍寺)와 국립중앙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이지무(李之茂)가 비문을 짓고, 기준(機俊)이 전액(篆額)과 비문을 쓰고 문인인 회량(懷亮)과 처단(處端) 등이 새겼다. 자경(字徑)은 1.5cm로 행서로 되어 있다.
대감국사 탄연(坦然)의 탑비로 탄연은 휘이고 사호(賜號)는 대감, 속성은 손씨(孫氏)이며 밀양사람이다. 를 묵암(默庵)이라 하였는데 당시 필적이 가장 정묘하고 저명하였다. 그가 글씨를 쓴 「문수원중수비(文殊院重修碑)」가 남아있어 그의 출중한 글씨를 확인할 수 있다. 비에는 그의 출생에서부터 19세에 출가하고 90세에 입멸할 때까지의 행적을 비교적 상세히 기술하였다.
한편, 글씨는 왕희지(王羲之)의 필법을 잘 체득하여 쓴 것으로, 결체(結體)를 죄어놓아 엄밀하며 그 유려함과 주경한 필력의 필치는 고려시대의 매우 발전된 행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서정(書鯖)』에는 이 비문에 대하여 “성교서(聖敎序)를 모방하였다고 하겠으나 대감의 필법을 배워 이 비를 썼구나.”라고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