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죽농(竹農, 竹儂). 대구광역시 달성 출신. 가학으로 한문과 글씨를 배웠다. 3·1운동 때는 만세운동에 참가하여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세 때 서병오(徐丙五)에게 서화를 사사하였다.
조선서화협회전에 3회 입선하고 조선미술전람회에 연 8회 입·특선하였다. 한때는 일본에도 체류하면서 그곳의 작가들과 교류하였으며, 40대 때는 경북여자고등학교에 재직하였다.
50세 때 스승이 운영하던 교남서화회(嶠南書畫會)를 물려받아 영남서화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후진을 양성하였으며, 58세 때 해동서화회를 창립하였다.
1975년 대한민국문화훈장을 받았고, 그해 재야작가로는 처음으로 국전 초대작가가 되어 심사위원에 위촉되었다. 글씨는 황산곡(黃山谷) 등을 곁들인 행서가 주류이며, 그림은 사군자가 돋보인다.